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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좌담회 어서 <일생성불초>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일생성불초>입니다.
<일생성불초>는 집필 연도와 수신인 등이 분명하지 않지만 1255년에 써서 도키 조닌에게 보내셨다고 전해집니다. 이 어서의 이름인 ‘일생성불’은 범부가 일생 동안에 성불한다는 뜻입니다.
이 어서에서는 일생성불의 요체인 창제행의 의의를 법리와 실천면에서 밝히셨습니다.
대성인은 먼저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일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나타내셨습니다. 다만 제목을 불러도 자기 생명 밖에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묘법이 아니며 일생성불은 이룰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정토와 예토라 해도 두 국토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우리 마음의 선악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와 중생이라고 해도 다른 존재가 아니라 깨달음과 미혹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미혹에 빠진 생명을 흐려서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암경에, 깨달음을 얻은 생명을 잘 비추는 명경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암경도 닦으면 명경이 되듯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로 게으름 없이 열심히 창제하면 지혜가 빛나는 부처의 경애를 나타낼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384쪽 3행 ~ 6행)
중생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할 때는 중생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도 닦으면 옥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일념무명의 미심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의 명경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중생이라 하고 부처라 해도 또한 마찬가지다(둘의 차이가 없다). 미혹할 때는 중생이라 하고 깨달았을 때는 부처라 한다. 예를 들어 흐려서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도 닦으면 옥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 범부의) 무명이라는 근본적인 미혹으로 뒤덮인 생명은 닦지 않은 거울과 같다. 이를 닦으면 반드시 진실한 깨달음의 지혜가 되는 명경이 된다. 깊이 신심을 일으켜 아침저녁으로 또 게으름 없이 자기 생명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을 닦는다고 한다.

[어구해설]
<무명>은 생명의 근원적인 무지, 미혹, 어리석음으로, 일체의 번뇌를 만드는 근본입니다.
<법성진여>는 ‘법성’은 만물을 꿰뚫는 근본법 그 자체이고 부처가 깨달은 본질입니다. ‘진여’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