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회장 창가학회는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사제불이'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3대 회장과 사제

창가학회의 정신은 초대회장 마키구치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하여
도다 선생님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930년 11월 18일, 마키구치 창가학회 초대회장의 저서인 《창가교육학체계》가 발간되었습니다.
판권에는 “저작자 :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발행자 : 도다 조가이(후에 조세이로 개명), 발행처 : 창가교육학회”라고 씌어있습니다.
이후, ‘창가’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된 것을 기려 이날을 창가학회 창립기념일로 정했습니다.
발족 행사나 회합도 없이 59세인 스승과 30세인 제자 단 둘만의 창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제불이의 정열과 대투쟁이 지금 크게 발전한 창가학회의 원류가 되었습니다.

11월 18일은 또 다른 하나의 의의가 있습니다. 1944년 이 날, 마키구치 선생님이 옥중에서 서거한 것입니다.
전시 중에 군부정권이 국가 신도를 국민에게 강요했지만 마키구치 선생님은 단호히 반대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 혐의로 체포되어 1년 4개월 동안 옥중투쟁 끝에 73세의 나이로 순교한 것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창립한 소카학원의 창립기념일이 11월 18일인 것도 마키구치 선생님의 유지를 계승해주기 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소카대학교의 창립기념일은 도다 선생님의 기일인 4월 2일입니다. 위의 기념일 등을 통해 선사 마키구치 선생님과 은사 도다 선생님의 정신을 계승해주었으면 하는 창립자의 깊은 생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카대학교와 소카학원 창립은 1965년 11월에 ‘소카대학교 설립 심의회’가 발족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으며, 이케다 선생님이 도다 선생님에게서 대학설립 구상을 들은 지 15년이 경과한 때였습니다.

1950년 11월, 도다 선생님이 운영하던 회사는 급여를 지불할 수 없을 만큼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 근처에 있던 대학 구내식당에서 도다 선생님과 이케다 선생님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자신이 구상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러나 감옥에서 생애를 마치셨다. 틀림없이 분하고 원통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구상의 실현을 의탁 받은 제자로서 선생님을 대신해 학교를 세우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해왔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세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자네가 나대신 그 일을 해줬으면 한다. 어떤가! 세계제일의 대학을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도다 선생님이 “세계제일의 대학으로!”라고 부탁하신 지 반세기만에 명실공히 세계적인 소카대학교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불법의 진수는 ‘사제불이’입니다.
그 정신이 3대에 걸친 회장에 의해 계승되었기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창가학회의 대발전이 있습니다.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마키구치 선생님은 1871년 6월 6일,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마키구치 가문의 양자가 되어 열세살 무렵에 홋카이도로 건너갔습니다. 고학을 하며 홋카이도심상사범학교(현재 홋카이도 교육대학)를 졸업하고, 부속소학교 교사와 사감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 상경해 1913년부터 약 20년 동안 도쿄 니시마치, 시로가네심상소학교 등 6개교에서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그 동안에 일관되게 인간생활과 교육, 학문의 관계를 사색하면서 가치창조, 민중의 행복과 사회번영에 대한 정도(正道)를 추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과로 1903년에는 ≪인생지리학(人生地理學)≫을 저술하고, 인간과 향토와 환경의 관계에 대해 선견적이고 창조적인 고찰을 전개했습니다. 또 1930년부터 5년 동안 ≪창가교육학체계≫ 전 4권을 간행했습니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의 교육 실천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행복을 위한 예리한 착상과 획기적인 제언이 담겨있습니다.
1928년, 니치렌 대성인 불법(日蓮大聖人佛法)을 만나 그 뒤, 창가교육학회를 창립해 불법의 실천으로 생활혁신운동을 전개하면서 대성인이 목표로 한 민중구제와 평화창출을 위해 진력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국가신도로써 종교와 사상을 통제하려는 군부권력과 감연히 대결함과 아울러 권력에 영합해 신앙을 버린 일련정종(日蓮正宗) 종문(宗門)을 엄하게 훈계했습니다. 1943년에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 용의로 검거되고도 조금도 신념이 흔들리는 일 없이 신교(信敎)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인권의 존중을 주장하고, 이듬해 1944년 11월 18일, 불가사의하게도 창가학회 창립일에 옥중에서 서거했습니다.

그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정신과 만인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바라는 행동은 역대 회장에게 계승되어 오늘날 세계적인 창가학회 운동으로 꽃피워 결실을 맺었습니다.

인격의 가치창조를 지향하는 창가교육의 이념과 실천은 해가 갈수록 각국에서 주목을 받아 ≪창가교육학체계≫는 영어, 포르투갈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힌디어, 구자라트어, 아삼어, 펀자브어, 우르두어, 칸나다어, 타밀어, 중국어(번체자) 등 14개 언어로 발간됐습니다.
제 2대 회장 도다 조세이 도다 선생님은 1900년 2월 11일,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한 홋카이도 아쓰타무라(현재 이시카리시 아쓰타구)에서 성장했습니다. 고학으로 교사가 되어 스무살 때 상경해 당시 독특한 교육법으로 관심을 모았던 마키구치(초대 회장) 선생님을 사사했습니다. 스물 세 살에 ‘시습학관(時習學館)’이라는 사학을 주재하고, 마키구치 선생님의 교육이념을 실천했습니다. 이 무렵에 발간한 학생용 참고서 ≪추리식지도산술(推理式指導算術)≫은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28년, 마키구치 선생님과 함께 니치렌 대성인 불법에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에는 마키구치 선생님과 함께 ‘창가교육학회’를 창립하고, 이사장으로서 마키구치 선생님을 지원해 교육개혁과 종교개혁에 힘썼지만 1943년, 군부권력의 탄압으로 투옥되었습니다. 2년 여의 옥중생활에도 신념을 관철해, 법화경(法華經)의 진수(眞髓)를 ‘부처란 생명이다’(부처는 자신의 생명이고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뜻) 하고 회득(會得)했습니다.

1945년 7월 3일, 출옥했을 때 창가교육학회는 괴멸상태였습니다. 패전으로 국토도 국민의 마음도 황폐한 가운데 학회 명칭을 ‘창가학회’라고 바꾸고 학회재건과 민중구제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51년 5월 3일, 제2대 회장에 취임한 도다 선생님은 당시 3000세대인 조직을 정리하고, 후계의 제자육성에 온 힘을 쏟으면서 7년이 못되어 생애 원업(願業)인 75만 세대를 달성하고, 1958년 4월 2일, 그 생애를 마쳤습니다.
제 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 제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은 1928년 1월 2일 일본 도쿄에서 김 양식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대였던 그는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목격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비분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형 네 명이 모두 징병되었고 맏형은 전사했습니다. 이 비극이 원점이 되어, 창가학회 회장이 된 후 평생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고, 비폭력의 대화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됩니다.

1947년, 19세의 나이에 창가학회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도다 조세이 선생님의 명확한 불법철학 강연과 그의 성실한 인격에 매료되어 창가학회에 입회했으며,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단련의 청춘시절을 보냈습니다.

1960년 5월, 32세의 나이로 스승의 뒤를 이어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창가학회는 크게 발전했고, 1975년에는 SGI 회장에 취임, 현재 192개국 1200만 회원의 평화의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도다 조세이 선생님의 구상을 이어, 창가학회 초대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의 가치창조의 교육철학을 근본으로 일본 소카학원(초·중·고·대학교)과 미국 캘리포니아에 소카대학교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학술문화교류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민주음악협회, 도쿄후지미술관, 동양철학연구소,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 이케다국제대화센터(미국),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프랑스) 등의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불교관련 서적에서부터 아동문학, 시, 수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 언어로 번역된 2,000여 점 이상의 책을 집필했으며, 또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담아내는 사진작가로도 활동해왔습니다.

평화건설자이자 교육자로서 공헌을 인정받아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관, 대학에서 'UN평화상', '국가훈장', 명예학술칭호 등의 현창을 수여 받았으며 '계관시인', '세계민중시인'의 칭호와 '세계계관시인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