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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학

 

  • [신심실천의 근본] - 신•행•학

  • 관리자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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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신・행・학
 
여기서는 우리가 니치렌대성인불법을 실천하는 데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수행인  신・행・학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자신의 생명변혁을 목표로 하는 니치렌대성인불법의 기본 수행은 ‘신・행・학’입니다. 이 중에 ‘신’은 말법의 정법인 대성인불법, 특히 그 궁극인 어본존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신’이 바로 불도수행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입니다. ‘행’은 생명을 변혁하고 개척하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학’은 가르침을 배우고 구도하는 연찬으로 올바른 신심과 실천을 위한 지침을 주어 ‘행’을 돕고 ‘신’을 보다 깊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올바른 불도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법실상초>에서는 ‘신・행・학’의 기본자세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염부제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실지어다, 기필코 기필코 신심을 강성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어서 1361쪽)
<통해: 세계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세요. 더욱 명심하여 신심을 강하게 지니고  석가불, 다보불, 시방의 제불의 수호를 받으세요. 행학의 두가지 수행에 힘쓰세요.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습니다. 나도 실천하고 남도 가르쳐 이끌어 가세요.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납니다. 힘이 있다면 일문일구라도 말하세요.>

▶ 신(信)

‘‘신’은 신수(信受)라고도 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처의 경애로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 ‘신’입니다. 법화경에는 석존의 제자 중에 지혜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도 오직 신수하는 것으로만 법화경에서 설한 법리를 체득할 수 있었다고 설합니다. 다시 말해 비유품에는 “그대 사리불마저도 역시 이 경에는 신으로써 들어갈 수 있었거늘”(법화경 197쪽)이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신득입(以信得入)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깨달은 위대한 지혜와 경애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길은 오직 이 ‘신’에 의한 방법 외에 없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불법에서 설하는 올바른 생명의 법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법의 어본불이신 니치렌대성인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 근원의 법인 남묘호렌게쿄를 어본존으로 도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대성인은 말법의 일체중생을 위해 자신의 부처의 생명을 그대로 어본존으로 도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본존을 우리가 성불의 경애를 열기 위한 유일한 연(신앙의 대상)이라고 깊이 확신하는 것이 대성인불법을 수행하는 근본이 됩니다. 어본존을 신수하여 창제에 힘쓸 때 묘법의 공력을 자신의 생명에 열어 나타내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 행(行)

‘행’은 어본존을 신수한 다음 구체적인 실천을 말합니다. 불법에서는 우리 자신의 생명 내부에 부처와 똑 같은 생명의 작용, 다시 말해 불계가 본디 엄연히 갖춰져 있다고 설합니다. 그리고 불도수행의 목적은 이처럼 자신의 생명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부처와 똑같은 생명의 작용을 나타내어 절대적 행복 경애를 얻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생명 내면에 갖춰진 힘도 그것을 현실의 인생에서 나타내고 활용하려면 구체적인 변혁과 개척작업이 필요합니다. 부처의 경애를 자신의 생명에 나타내려면 도리에 맞는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한 데 이것이 ‘행’입니다.

이 ‘행’에는 ‘자행’ ‘화타’의 양면이 있습니다. 수레의 양 바퀴처럼 어느 한쪽이 모자라거나 빠져도 수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행’은 자신이 법의 공덕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화타’는 타인에게 공덕을 받도록 하기 위해 불법을 가르치는 실천을 말합니다. 또 “말법에 들어와서 이제 니치렌이 부르는 바의 제목은 전대와는 달리 자행화타에 걸쳐 남묘호렌게쿄이며.”(어서 1022쪽)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름과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어본존의 공덕을 가르쳐 신심을 권유하는 자행화타에 걸친 실천이 대성인불법에 맞는 올바른 불도수행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행은 근행(독경, 창제)이며 화타는 홍교입니다. 또 광선유포를 위한 여러 가지 실천활동도 화타의 수행이 됩니다.

생명변혁의 실천(근행과 홍교)

‘근행’은 어본존을 향해 독경, 창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생명변혁의 구체적인 실천 중 하나입니다. 대성인은 근행을 흐린 거울을 닦는 것에 비유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유컨대 암경(暗鏡)도 닦으면 옥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일념무명의 미심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어서 384쪽) <통해: 비유하면 흐려서 사물을 비추지 못하는 거울도 닦으면 옥처럼 보인다. 우리 범부의 무명이라는 근본의 미혹에 덮인 생명은 닦지 않은 거울과 같다. 이것을 닦으면 반드시 진실한 깨달음의 지혜의 명경이 된다. 깊이 신심을 일으켜 아침 저녁으로 또 게으름 없이 자신의 생명을 닦아야 한다. 어떻게 닦으면 좋은가.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닦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거울 자체는 닦기 전이나 닦고 난 뒤에도 똑 같은 거울로 외형적인 변화는 없지만, 기능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하루하루 근행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이 단련되고 연마되어 그 작용이 크게 변혁되는 것입니다.

또 ‘홍교’에 대해 <제법실상초>에서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어서 1361쪽) 하고 말씀하십니다. 또 <자쿠니치보어서>에서는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宿緣)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어서 903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근행을 실천하여 자신만 경애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자타 함께 행복을 목표로 일문일구라도 불법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신심을 더욱 깊게 할 수 있고 아울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부처와 보살의 경애를 자신의 생명에 불러일으켜 대성인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근행과 함께 홍교의 실천이 자신의 생명변혁을 위한 큰 힘이 됩니다. 또 법화경에는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법화경 357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여래는 부처를 말함) 이 경문을 바탕으로 대성인은 “법화경을 일자일구라도 부르고 또 남에게도 이야기하는 자는 교주석존의 사자(使者)니라.”(어서 1121쪽)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는 화타행은 부처의 사자(여래의 사자)로서 부처의 행동(여래의 일)을 실천하는 가장 존귀한 행위입니다.

▶ 학(學)

‘학’은 교학 연찬이며 니치렌대성인이 가르쳐 남겨주신 ‘어서’의 배독을 근본으로 올바른 불법의 법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올바른 불법의 법리를 배움으로써 더욱 깊고 완전한 신(信)에 입각해서 올바른 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교학연찬이 없으면 자칫 불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위험성이 있으며 또 그릇된 가르침을 설하는 자에게 속임을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행학은 신심에 의해 일어난다.”라고 대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학의 근본이 신심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또 도다 제2대 회장도 “신은 이(理)를 구하고 구한 이는 신을 더욱 깊게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불법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신심을 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되풀이 되풀이해서 이 서(書)를 항상 읽게 하여 청문하십시오.”(어서 1444쪽)라고 하시며, 대성인이 쓰신 어서를 되풀이해서 배우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또 대성인에게 불법의 법리를 질문한 문하에게 그 구도심을 칭찬하셨습니다. 닛코상인도 “어서를 심간에 새기어”(어서 1618쪽)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학문이 미련(未練)하고 명문명리의 대중은 나의 말류가 될 수 없다는 것.”(어서 1618쪽)이라며 교학연찬을 강하게 권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