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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학

 

  • [니치렌대성인의 생애] - 출세의 본회와 입멸

  • 관리자

  •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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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쓰하라 법난과 출세의 본회

니치렌대성인이 미노부에 입산하신 이후 스루가 지방(지금의 시즈오카현 중앙부) 후지 방면에서는 닛코상인이 중심이 되어 절복과 홍교가 추진되어 천태종 등의 승려나 신도들이 그때까지 믿던 신앙을 버리고 대성인에게 귀의합니다. 그로 인해 지역의 천태종 사원의 박해가 시작되어 대성인에게 귀의한 사람들을 협박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합니다.

1279년 9월 21일에는 아쓰하라의 농민 신도 20명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어 가마쿠라로 연행되었습니다. 농민신도는 헤이노사에몬노조의 저택에서 고문에 가까운 취조를 받고 법화경의 신심을 버리라고 협박 당하지만 전원이 그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관철합니다. 그리하여 진시로, 야고로, 야로쿠로 등 형제 세명이 처형되고 나머지 열일곱명은 거주하던 지역에서 추방당합니다. 이 탄압을 중심으로 벌어진 법난을 ‘아쓰하라 법난’이라고 합니다.

농민 신도들의 불석신명(불도수행을 위해서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의 모습에서 대성인은 민중이 대난을 견디는 강한 신심을 확립했음을 느끼고 10월 1일에 저술하신 <성인어난사>에서 입종 이래 ‘27년’째에 ‘출세의 본회’를 이루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출세의 본회’는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1279년 10월 12일, 의의를 남기는 어본존(御本尊)을 건립하셨습니다. 아쓰하라 법난에서 민중이 불석의 강성한 신심을 나타낸 것이 바로 대성인의 대원인 광선유포 성취의 근본 요건입니다. 또 이 법난에서 대성인 문하는 이체동심(異體同心)의 신심으로 투쟁합니다. 특히 청년, 난조 도키미쓰는 동지를 지키는 등 활약했습니다.

 

▶ 입멸과 닛코상인의 계승


1282년 9월 8일, 대성인은 제자들의 권유로 온천욕 치유를 위해 9년 동안 거주하신 미노부산을 떠나 히타치 지방(지금의 이바라키현 북부와 후쿠시마현 남동부)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무사시 지방 이케가미(지금의 도쿄도 오타구)에 있는 이케가미 무네나카의 저택에 머물며 후사에 대해 명확하게 결정해주셨습니다.9월 25일에는 병환 중이었지만 문하들에게 <입정안국론>을 강의하십니다.

1282년 10월 13일, 니치렌 대성인은 이케가미 무네나카의 저택에서 61세로 존귀한 생을 마치십니다. 또 대성인은 미노부를 떠나시기 전과 입멸하시는 날에 닛코상인을 후계자로 정하고 모든 후사를 맡기셨습니다. 대성인 입멸 후, 닛코상인은 오직 홀로 대성인의 불석신명의 광선유포 정신과 행동을 계승하셨습니다. 또 광선유포의 계승자임을 자각하고 방법엄계의 정신을 관철하고 국주간효(國主諫曉)를 추진함과 동시에 어서를 말법의 성전으로 배독하며 연찬을 장려하고 행학(行學)의 이도(二道)에 힘쓰는 많은 훌륭한 제자를 배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