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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학

 

  • [니치렌대성인의 생애] - 사도유죄•미노부입산

  • 관리자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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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유죄

막부에서는 다쓰노구치 법난 후 얼마 동안 대성인에 대한 처우가 정해지지 않아 약 한달 동안 대성인은 사가미 지방의 에치(지금의 가나가와현 아쓰기시 북부)에 있는 혼마로쿠로자에몬(사도지방의 수호대)의 저택에 머뭅니다. 결국 사도유죄가 결정되고 대성인은 1271년 10월 10일, 에치를 떠나 11월 1일에 사도의 쓰카하라라는 묘지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삼매당(장례식용 집)에 머물게 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의류와 식료품마저 부족한 데다 사도의 염불자들이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혹독한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다쓰노구치법난의 탄압은 가마쿠라의 문하에게도 미쳐, 토굴에 갇히거나 추방 또는 소령을 몰수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수많은 문하가 보신과 두려움 때문에 대성인불법에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1272년 1월 16일, 17일에는 사도뿐만 아니라 호쿠리쿠, 신에쓰 등지에서 도 여러 종파의 승려 수백명이 몰려들어 대성인에게 법론을 도전했지만 대성인은 각 종파의 사의를 모조리 논파하십니다.(쓰카하라 문답)
2월에는 호조 일문에 내란이 일어나 가마쿠라와 교토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2월소동) 대성인이 다쓰노구치 법난 때 예언한 자계반역난이 불과 150일 뒤에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같은 해 초여름, 대성인의 유배지를 쓰카하라에서 이치노사와로 옮겼지만 염불자들이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위험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도유죄 동안 닛코상인은 대성인에게 상수급사(常隨給仕)하며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또 사도의 땅에서도 아부쓰보, 센니치니 부부를 비롯해 대성인에게 귀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대성인은 유배지인 사도에서 많은 중요한 어서를 저술하셨는데 특히 중요한 어서가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입니다. 1272년 2월에 저술하신 <개목초>는 니치렌대성인이 바로 법화경에 예언된 대로 실천하신 말법의 ‘법화경행자’이며, 말법의 중생을 구하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을 갖춘 말법의 어본불이라고 밝히고 있어 ‘인본존개현의 서’라고 부릅니다. 또 1273년 4월에 저술하신 <관심의 본존초>는 말법의 중생이 성불을 위해 수지해야 할 남묘호렌게쿄의 본존에 대해 설해 밝혔기에 ‘법본존개현의 서’라고 합니다.

1274년 2월, 대성인은 사면되어 3월에 사도를 떠나 가마쿠라로 돌아오십니다. 4월에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대면하신 대성인은 사법(邪法)으로 몽고조복의 기도를 하고 있는 막부를 강하게 간효함과 동시에 헤이노사에몬노조의 질문에 답하여 몽고의 내습은 반드시 연내에 일어난다고 예언하십니다.(세번째 국주간효) 이 예언대로 이 해 10월에 몽고의 대군이 규슈지방을 습격합니다.(문영의 전역) 이로써 <입정안국론>에서 예시하셨던 자계반역난과 타국침핍난의 두 난의 예언이 모두 적중합니다. 이처럼 대성인이 막부를 직접 간효하고 두 가지 난을 예언한 공적은 이번이 세번째입니다.(첫번째는 <입정안국론> 제출 때, 두번째는 다쓰노구치법난 때) 니치렌대성인은 “나에게 세번의 고명(高名)이 있노라.”(어서 287쪽) 하고 말씀하십니다.(세번의 고명)
<고명은 특히 뛰어난 ‘명예’ ‘명성’을 말함>

▶ 미노부 입산


세번째 간효도 막부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니치렌대성인은 가마쿠라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가이 지방(지금의 야마나시현)의 하키이향에 있는 미노부산으로 들어가십니다. 미노부는 닛코상인의 홍교로 대성인 문하가 된 하키이로쿠로 사네나가가 지두로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대성인은 1274년 5월에 미노부에 들어가십니다. 그러나 대성인의 미노부 입산은 결코 은거(속세에서 떨어져 조용히 사는 것)는 아니었습니다.

대성인은 미노부에서 <선시초>, <보은초>를 비롯한 수많은 어서를 집필하시고 대성인불법의 중요한 법문을 설해 밝히셨습니다. 특히 삼대비법(본문의 본존, 본문의 계단, 본문의 제목)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강의 등을 통해 미래의 광포를 짊어질 인재육성에 온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또 많은 소식문(편지)을 써서 재가신도 한사람 한 사람의 신심을 격려하고 광선유포 투쟁에 힘쓰며 각자가 인생의 승리와 성불의 경애를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도하고 격려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