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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남학진 자동화 시스템 설계 전문가

신심으로 공황장애 극복! 여러 아이디어로 경쟁업체와 차별화



 



“끝까지 창제하고 기원하면서 도전했어요.  모르는 사람하고는 한마디도 못할 정도였죠…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는 공황장애라는 말도 생소할 때였죠. 보다 못한 집사람이 ‘할 것 다해봤으니, 이제 신심으로 도전해 보자’고 격려해줬죠. 저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본존 앞에서 매일 울면서 창제를 했던 게 떠오르네요.”





남학진 씨는 자동화 시스템 설계 전문가로 활약 한다.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감소와 제품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설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과 독특한 아이디어로 순수전기시운전업체로 인정받는 기업에서 책임연구원이자 기술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학진 씨.

무인자동화 시스템 전용장비 제작, 공작기계자동화 및 개조, 공장기계 재정비와 교체 등의 일을 주로 하는 이곳에서 올해로 경력 25년차를 맞은 남 씨를 만나 그가 몸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있을까요?

“전, 제가 문학소년(웃음)이 될 줄 알았어요. 책을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적성검사에서도 문과성향으로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당시 선생님이 ‘앞으로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물리도 싫어하고, 수학은 더욱 싫어했던 제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 거죠(웃음).”



-. 프로그램 설계할 때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인 설계(프로그램)는 이미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사용자 요구에 맞춘 기능을 응용해 접목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공급가격을 낮추는 게 중요하죠. 프로그램이 똑같아도 기능은 유지한 채 부품을 줄이거나 대체품을 사용하는 등 비용절감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자동화 시스템 산업에서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시간 싸움’이죠. A라는 제품을 기존 시스템에서 50초에 한 개 생산했다면, 개선된 시스템에서는 49초에 한 개 생산하는 거죠. 일반 사람들에게 1초라는 시간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자동화 생산 공정에서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일, 월, 연간 생산량을 따져보면 수천, 수만 개의 생산량 차이를 가져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동종업계 모두 시간단축을 위해 경주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남 씨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은 국내 H자동차 협력업체다. 자동차 생산공장 자동화 부분에서 엔진, 변속기 같은 고기능 파트를 담당한다.

덕분에 국내 생산라인뿐 아니라 멕시코, 중국, 인도, 체코, 슬로바키아 등 H자동차 현지공장 곳곳에 이 업체의 기술이 들어간 라인이 운영되고 있다.



-. 최근 자동차산업이 불황인데, 받는 영향은 없나요?

“실제 자동차 경기(景氣)와 동일하게 움직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신규투자가 많이 일어나고 수요도 증가하죠. 현재 세계적으로 자동차시장이 많이 위축돼 있어 불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은 업계가 전체적으로 힘든 게 사실입니다.”



-. 불황을 헤쳐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틈새시장 개척에 힘씁니다. 독특한 자동화 시스템 개발이나 기존 자동화 시스템에 아이디어를 더해 변화를 주는 거죠. 설계를 바꾸거나 부품 부피를 줄여 장비가 차지하는 면적을 줄이기도 합니다. 제작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 성능은 유지하면서 단가를 낮춰 가성비를 올리는 등 경쟁업체와 차별화 전략을 취합니다.”



막힘 없이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는 남학진 씨. 그 역시 사회진출 초창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1996년, 남 씨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H’그룹에 입사해 공작기계사업본부로 배치됐다. 입사 동기들과 다르게 남 씨는 전공을 살리는 부서에 배치받아 기쁨은 배가 됐다. 해외출장도 자주 가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 같던 남 씨 앞길에 금방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98년 IMF금융위기 한파가 닥치면서 회사 밖으로 내몰렸고, 입사 3년차에 강제퇴직을 당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고 괴로웠어요. 입사한 지 이제 3년차인데, 위에 선배들도 있고 동기들도 있는데 ‘왜 나일까?’ 하는 심정이 강했어요. 뭐랄까 패배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 심기일전해 입사한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들었어요.

“퇴직 후 실의에 빠져 있다,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죠. 그러고는 한 중소기업에 들어가게 됐는데, 당시 그 회사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공작기계가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여러 기계를 만질 기회가 생긴 거죠. 드문 일이었어요. 회사가 24시간 풀로 가동됐습니다. 365일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현장에 묻혀 살았어요. 그때 정말 많이 경험하고 배웠죠.”



남 씨에겐 그곳에서 일한 2년이 ‘황금의 시간’ 이었다. 다양한 장비를 다루면서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가 됐고, 기름때 묻혀가면서 배우고 경험한 게 성장 밑거름이 됐다. 그리고 그 시간이 신심(信心)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도 됐다.



-. 당시 공황장애로 고생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겨냈나요?

“신심 덕분이죠. 끝까지 창제하고 기원하면서 도전했어요. 모르는 사람하고는 한마디도 못할 정도였죠.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창제하며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에 나온 적도 많았습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는 공황장애라는 말도 생소할 때였죠. 보다 못한 집사람이 ‘할 것 다해봤으니, 이제 신심으로 도전해 보자’고 격려해줬죠. 저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본존 앞에서 매일 울면서 창제를 했던 게 떠오르네요.”



-. 학회활동에도 어려움이 나왔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공황장애로 7년을 고생했어요. 그동안 앞서 말한 일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제가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을 아는 학회원은 몇명 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하려고 엄청 노력했죠. 제가 병에 지면 신심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 같아 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부와 대화도 정말 태연하게 하려고 애썼어요. 그러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면 허벅지를 꼬집고, 이를 악물고, 그래도 안되면 항상 갖고 다니던 수지침을 이용해 손가락 끝을 콕콕 찍어 누르며 버텼어요. 어떨 때는 너무 심해 남자부 등에 업혀 집에 갈 때도 있었죠.”



남학진 씨가 나중에 다 이겨내고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니, “정말 몰랐다”며 놀라는 회원들이 많았다고. 이제는 자신의 경험을 주변 청년들과 나눈다.

그는 요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청년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체험을 전하고 “신심으로 극복해보자!”는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용기를 주려고 애쓰고 있다.

끝으로 포부를 물었다. 남 씨는 주저 없이 지금 다니는 회사 성장을 위해 더욱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5년 동안 이 회사에 다니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어요. 고마운 곳이죠. 또,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현재는 자동차 관련 자동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우리 물건(공작기계)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문수권 지역장






조성연(syjo@) | 화광신문 : 20/02/21 13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