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도명옥 변호사

남들처럼 아닌 ‘나답게’ 이제는 결코 ‘지지 않는 청춘’으로!



 



“‘저 사람이 학회원이래. 학회는 굉장한 곳이구나’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리더로 성장하겠습니다. 또 불법을 실천하는 법률가로서

사람들을 행복한 경애로 이끌고 더 안온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명에도 온 힘을 다해, 저의 존재로 신심과 학회 그리고 스승의 위대함을 증명하겠습니다.”



 





‘불법즉사회’를 실천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서원의 길에서 나날이 전진, 또 전진하는 도명옥 씨.



‘147’ ‘805’ ‘1008’. 의미 없어 보이는 숫자들이다. 여기에 사연을 조금 더해 보자. ‘147’은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실패를 거듭한 횟수이고, ‘805’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성공하기까지 실패한 횟수이며, ‘1008’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만든 커넬 샌더스가 창업에 성공하기까지 거절당한 횟수이다. 이들은 각각 ‘148’번의 노력, ‘806’번의 도전, ‘1009’번의 일어서기가 있었기에 ‘꿈’을 이룬 것이다. 그에 비추어 본다면, 성공이란 실패 횟수보다 일어선 횟수가 한 번 더 많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6’번의 불합격과 ‘10’년의 도전 사이에서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 꿈을 쟁취한 이가 있다. 변호사 도명옥 씨를 만나 꿈을 향한 기록과, 새로운 꿈을 향한 목록을 들었다.



-.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 정확히 1년이라고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특히 첫 출근날을 못 잊죠.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생신이기도 한 1월 2일이거든요. 2년차인 지금은 보험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며, 착실히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 변호사가 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파란만장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어릴 적 ‘꿈’부터 이야기해 주시죠.

“꿈이 계속 바뀌었어요. 아니, 명확한 꿈이란 것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미술학원에 다닐 때에는 화가를, 한의학 관련 드라마가 유행할 때는 한의사가 꿈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도 모른 채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으로 꿈을 바꾸었던 것 같아요.”



-. 진로를 두고 숱하게 갈팡질팡했지만, 결국 법학으로 전공을 정하셨군요.

“법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진로였습니다. 사실 대학도 당시 유행하던 생명공학으로 준비했다가, 그해 유독 경쟁률이 급상승하면서 떨어졌어요. 그렇게 재수 끝에 우연히 들어간 곳이 법대였고요.”



이렇다 할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단다. 목적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처럼’이 기준이 되어 버렸다는 도 씨. 남들 따라 사법시험(司法試驗)을 준비했고, 남들처럼 ‘변호사’라는 꿈도 정했다. 하지만 무늬만 고시생이었다고. 당연히 사법시험에는 번번이 낙방했다.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간절하지 않으니 낙방에 대한 충격과 실망도 없었고, 결단을 내릴 만큼의 감정 동요도 없었던 거죠. 하지만 시험을 네 번이나 떨어지자, 위로와 격려를 해주던 주변 사람들이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설사 시험을 포기하더라도, 그 이유가 시험의 실패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과 함께요. 그 오기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했습니다.”



-. 그런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죠.(웃음)

“네(웃음). 모교이기도 하고, 합격 조건도 갖췄던 터라 쉽게 생각했었거든요. 당연한 결과였죠.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는 것처럼 준비해서 변호사가 될 거 같으면 엄마도 변호사 하겠다. 그렇게 해서 뭐가 되겠니?’

언제나 믿어주며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던 어머니의 엄애(嚴愛)의 한 마디였다. 일순, 딸의 승리와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어머니의 기나긴 기원과 절실한 마음이 생명까지 닿았다고.



“그제야 주변이 보였습니다. 다들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제대로 도전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자신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곤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변호사가 되자고’요.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간절한 ‘목표’가 생긴 거죠.”



-. ‘목표가 없던 도전’과 ‘목표가 있는 도전’이 차이가 있던가요?

“확실히요. 우선 목표가 생기니,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나아가 그 계획에 맞춰 노력하는 저로 점차 바뀌었습니다. 더욱이 그 도전 과정이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일 년 동안 입시 준비와 학회 활동에 후회 없이 도전했고, 이듬해에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또 그 도전으로 병행에 지지 않을 때,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숙사에서도 근행창제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았고, 지구리더로서 현장활동과 좌담회만큼은 물러섬 없이 도전했습니다. 변호사 시험 준비 막바지에는 초를 다투는 도전을 이어가야 했지만, 학회 회합만큼은 빠지지 않았고요.”



-. 그 과정에서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가장 값진 가르침도 얻으셨다고요.

“어릴 적부터 이케다 선생님의 스피치로 많은 희망과 용기를 얻곤 했지만, ‘사제(師弟) 원점’은 늘 어려운 숙제와 같았습니다. 그러던 2015년, 이케다 선생님 창가학회 3대 회장 취임 55주년을 축하하는 ‘청년평화페스티벌’에 무궁화반으로서 출동했을 때의 일인데요.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하고 모였음에, 음지에서의 노고를 최고로 긍지로 여김에, 또 그 많은 청년이 ‘사제보은’의 마음 하나만을 품고 도전함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스승께 보은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고, ‘반드시 사회에서 인정받아 학회와 스승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도 사제라는 원점과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목적, 즉 사명(使命)이 생긴 거죠.”



-. ‘변호사 시험’ 합격은 적확한 ‘목표’와 명확한 ‘목적’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돌이켜보면, 변호사가 되기까지 숱하게 실패했습니다. 대학은 재수, 사법시험은 네 번이나 떨어졌고 로스쿨마저 두 번의 도전 만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런 제가 무엇인가 한 번에 합격한 것은 ‘변호사 시험’이 처음입니다. 아마 신심(信心)이 아니었다면, 또 이케다 선생님의 ‘지지 않는 것이 승리’라는 격려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신뢰를 주는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라고요.

“지난해 2월, 회사의 도산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의 ‘체당금’ 소송 건이있었는데요. 50명에 가까운 근로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더 깊이 기원하고 더 철저히 재판을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승소해 연말에 따뜻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앞으로도 학회에서 배운 사상과 철학을 사회 곳곳에서 펼쳐가는 변호사로서 전진하고 싶습니다.”

 

-. 하나의 꿈이 실현된 지금, 도명옥 씨의 새로운 꿈이 궁금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활약하는 것입니다. 우선 ‘저 사람이 학회원이래. 학회는 굉장한 곳이구나’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리더로 성장하겠습니다. 또 불법을 실천하는 법률가로서 사람들을 행복한 경애로 이끌고 더 안온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명에도 온 힘을 다해, 저의 존재로 신심과 학회 그리고 스승의 위대함을 증명하겠습니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명옥 씨의 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도명옥 씨에게 ‘실패’란 ‘지지 않는 청춘’의 이명(異名)일 테니.



·관악권 女지구리더





전다혜(dhjeon@) | 화광신문 : 20/01/17 13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