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노경록 치과의사

‘질병’ ‘사람’ ‘사회’ 모두를 고치는 의사 향해 ‘전진 또 전진’!



 



“물론 하다 보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창제’입니다.

창제를 통해 내가 치과 의사로서 추구하는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며 문제를 기원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행했을 때 잘 해결이 되곤 합니다.”



 





“다른 병원은 선생님이 무서워 못 간다고 하는 아이가 여기는 먼저 가자고 해요.” 상황에 맞는 정확한 진단은 기본,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진료로 ‘다시 오고 싶은 치과’를 만들고 있는 노경록 씨.



“선생님이 꼼꼼하게 잘 봐주셔서 먼 거리지만 4년 넘게 이 병원만 다니고 있습니다” “이득을 취하기보다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보통 ‘치과’라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라 치료를 받지 않음에도 긴장된다. 하지만 병원 대기실에 들어선 순간 여태 보았던 치과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이도 어른도 편안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근무하는 직원들과 밝게 인사를 나눈다. 치과를 무섭게 느끼지 않도록, 밝고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며 직원과 환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치과의사 노경록 씨를 만났다.



-. 짧은 시간이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바라본 이곳의 분위기가 굉장히 색달랐습니다. 누구도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가요(웃음). 주로 가족들이 함께 병원을 방문하고, 한 번 오셨던 분들은 몇 년째 꾸준히 오고 계시기에 병원을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근무하는 모습을 보면 치과의사가 천직인 것 같습니다.

“뭔가 큰 뜻이 있어서 치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부모님은 다른 진로를 권하셨어요. 저도 그게 좋으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치과의사에 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이 내 꿈을 응원해줬는데, 누구보다 당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제 결정을 지지해주신 것이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노경록 씨는 ‘의사로서의 삶은 단순히 개인적인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다’라고 말해준 남자부 선배 덕분에 ‘의사’라는 직업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만들 수 있는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 아무래도 의과 공부와 신심(信心)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예과 2년 동안은 학업과 사명의 병행에 최대로 도전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신심과 멀어졌습니다. 함께 좌담회에 가자는 어머니의 연락도, 미래부 시절 함께 문화회관에 다녔던 친구의 연락도 모두 받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쌓아둔 복운이 있으니까’ ‘부모님이 기원해주고 계시니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 그러던 중 군의관으로 복무하게 됐군요.

“인턴 근무를 시작할 무렵 멋모르고 서명했던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서’가 알고 보니 ‘군의관’으로 병역을 이행하겠다는 내용임을 알게 됐습니다. 3년여 간의 복무를 마무리할 즈음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면접을 보면 대우가 좋지 않았고요. 그래서 병원에 들어가지 말고 개원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 준비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개원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의 병원에서 일해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곳에서 진료하는 것과 병원 운영에 대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호기롭게 개원했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다시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던 찰나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그만두기 시작, 결국 상담실장과 저만 병원에 남게 됐어요.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 재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터닝포인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다 내려놓고 싶었던 그 날, 때마침 어머니가 보내주신 문자를 받고 참석한 ‘좌담회’가 저의 터닝포인트였습니다. 10여 년 만에 참석한 좌담회는 늘 변함없이 따뜻했어요. 그리고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신심을 처음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근행창제를 실천하고, 좌담회에 참석하고 연찬에 도전하며 어려움을 극복해갔다는 노경록 씨. 누군가가 바뀌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병원과 가정에서 인간혁명에 도전했다.



-. 전과는 다른 마음이 환자에게도 전해졌을 것 같습니다.

“신심을 다시 시작한 후 ‘내가 있는 이곳에서 성과를 내면서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정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니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때마침 화광신문에 게재된 한 소아치과 전문의의 인터뷰를 읽고 환자를 대하는 마음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그 마음을 실천해보고자 ‘Tell, Show, Do’를 어린 환자들에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 ‘Tell, Show, Do’가 무엇인가요?

“치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치료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먼저 치료 기기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Tell), 바람이 어떻게 나오는지, 윙윙 소리가 왜 나는지 등을 보여주고(Show) 어떻게 치료할 지를 보여주는 것(Do)입니다. 아이들이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거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단어는 하나도 쓰지 않고 진료했어요. 그렇게 노력해가니 환자가 늘어나고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도 찾아오시는 등 병원도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 생각보다 세심한 치료과정에 많은 분이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 진료를 하며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침저녁에 기원을 할 때 가장 먼저 기원하는 것이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입니다. 진료할 때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손이 떨릴 수 있고, 판단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는데, 적어도 제가 진료를 볼 때는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진료를 정확하게,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실수하지 않고 아픈 분들이 안 아프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하다 보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창제’입니다. 창제를 통해 내가 치과의사로서 추구하는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며 문제를 기원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행했을 때 잘 해결이 되곤 합니다.”



-. 그럼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단기적으로는 ‘통합치과전문의’를 취득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스무 살 무렵 남자부 선배가 말해준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 그리고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小醫)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中醫)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大醫)라 한다”는 말처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노경록 씨. 꿈을 향한 그의 전진은 지금부터다.



·주안권 지부남자부장



강혜진(hjkang@) | 화광신문 : 20/01/10 13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