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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현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100세 시대’ 건강한 삶 위해 질병 극복 연구에 매진



 



“신심으로 승부하자고 정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입사해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창제를 했어요. 마침내 2014년에 연구 결과가 나오며 졸업도 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도 합격하는 공덕을 받았어요. 그동안 고민했던 병역과 졸업, 취업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있었죠. 이때 마음을 정하고 도전하는 기원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자신에게 놓인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연구원으로서 결과를 만들어낸 이현범 씨.



과학 발전은 수명연장이라는 인류의 꿈을 가능하게 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에 태어난 사람의 기대 수명은 평균 62.3세인데 반해, 2018년은 82.7세로 높아졌다. 기대 수명이 상승한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의학 발전으로 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사실도 중요한 원인으로 손꼽는다. 수명연장 시대를 맞이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질병 극복 연구에 매진하는 이현범 씨를 만났다.



-.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건강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기에 질병을 발견할 수만 있으면 모든 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병의 원리를 규명하고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또, 약물의 효능과 독성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항암제를 예로 들어 말해볼게요. 항암제는 독한 성분으로 인해 계속 투여하면 몸 안에서 내성이 생기고,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항암제의 효능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원리나 구조를 명확하게 알아내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겠죠. 또,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개개인에 맞춘 약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현범 씨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분자인식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저명한 학자들이 모인 곳으로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보이며 소위 날고 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현범 씨는 다른 이들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이 씨가 시련의 산을 하나씩 넘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신심(信心)으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몸에 익힌 덕분이다.



-. 아버지의 잦은 파견 근무로 오랜 기간 해외에서 거주하셨다고요.

“저는 초등학교를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중·고등학교를 말레이시아에서 지냈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싶으면 다른 나라로 떠났죠. 특히, 친구들과 친해질 때쯤 헤어지는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면 다양한 경험을 한 덕분에 적응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웃음)”



-.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영국이나 호주로 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당시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해 선생님에게 불려가기 일쑤였고, 월세도 여러 번 밀릴 정도로 힘들었어요. 어머니는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죠. 하는 수 없이 유학의 꿈을 접고 말레이시아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그때 선배 간부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제 사정을 말했죠. 조용히 듣던 선배 간부는 “왜 안 되는 상황만 생각하며 걱정만 하고 있나. 인생의 주체는 자기자신이다. 지금부터 도전하자. 기원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격려해줬어요. 선배 간부의 말에 끌려 스스로 창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원문에 이루고 싶은 것을 세세하게 적었어요.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진지하게 기원하자 용기가 솟아났고 학업은 물론 학회활동에 열심히 도전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목표로 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편입이 가능하다는 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그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며, 처음으로 신심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 원하는 대학에입학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미국으로 간 날, 감사한 마음에 바로 문화회관을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선배 간부와 대화하며 화랑반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회활동에 열심히 도전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회원님들도 저를 가족처럼 챙겨주셨어요. 회합이 끝나면 식사도 차려주시고, 집에 돌아가서 먹을 수 있도록 음식도 준비해주셨어요.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는 회원님들 덕분에 힘든 유학생활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 공부와 학회활동의 병행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머리로 생각하면 친구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했어요. 물리적으로 따져봐도 제게는 항상 시간이 부족했으니까요. 공부와 아르바이트, 학회 활동까지 세 가지를 병행했습니다. 어느 날 화랑반 출동이 있었는데, 그 다음 날이 시험이었어요. 잠시 고민했지만 화랑반 출동을 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상쾌하게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고, 시험도 최고의 결과를 받을 수 있었어요.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약 출동하지 않고 공부했다면 과연 성적이 잘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심으로 도전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시카고 일리노이공과대학교를 졸업한 이현범 씨는 미국의 명문 노스웨스턴대학교에 진학해 석사·박사과정을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이 씨는 당시 훌륭한 실력에 덕망 높은 교수 밑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 해외에서 계속 연구하는 길도 있었는데 굳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나요.

“입대를 해야 했어요. 병역을 기피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그냥 군대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모로 불이익이 많기에 병역특례를 알아봤어요. 그런데 하필 당시 ‘대기업 전문연구요원’ 복무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지원자가 공기업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몰렸죠. 저도 2013년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설상가상으로 연구 결과도 나오지 않아 졸업도 미뤄졌죠.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 취업과 병역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면증이 왔어요. 그때 신심으로 승리하자고 정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입사해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창제를 했어요. 마침내 2014년에 연구 결과가 나오며 졸업도 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도 합격하는 공덕을 받았어요. 그동안 고민했던 병역과 졸업, 취업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죠. 이때 마음을 정하고 도전하는 기원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 꿈에 그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어땠나요.

“최고의 석학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주눅이 들었어요.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제가 정말 초라해 보였죠. 그때 아내가 “불법은 ‘자체현조’를 설합니다. 자신의 체를, 본래 자신을 현현시킨다, 나타내어 빛낸다, 그리고 주위를 비춘다, 이것이 최고의 ‘개성’이자 ‘독창성’입니다”라는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 스피치가 적힌 엽서를 줬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빛을 내면 된다고 격려해줬는데 큰 힘이 됐어요. 덕분에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었죠.”



이현범 씨는 항상 ‘감사’의 두 글자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 성실한 행동과 인품을 주위에서 인정받으며 2015년에 ‘올해의 우수 안전 관리 사원’으로 뽑힐 수 있었고, 2016년에는 병역 의무를 마치기 전에 선임연구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오로지 신심 근본으로 도전해 전부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현범 씨. 지역남자부장이자 보성회 반장으로서 소속 내 남자부원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신심의 확신을 전하며 지용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연구원으로서 목표로 삼고 있는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남자부로서의 생활이 앞으로 약 5년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사명도 완수하고, 제가 하는 연구 분야의 기반도 완벽하게 구축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혜택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하겠습니다.”



· 종암권 지역남자부장 



김대현(kimdh@) | 화광신문 : 20/01/01 13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