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박준화 주나밴드

여수 밤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소리의 연금술사



“제 노래를 들으시고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갔다’ ‘아버님이 팬이세요.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노래를 들으니 힘이 납니다’ 등, 감사를 전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으세요. 그런데 신기하죠, 제가 더 힐링 되는 느낌이니-. 그래서 더보람을 찾나 봅니다.”





 



 





 







“노래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박준화 씨. 그의 노랫소리가 여수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인다.







2012년, 밴드 ‘버스커 버스커’가 발매한 1집 앨범 수록곡 ‘여수 밤바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노래의 인기는 배경이 된 여수의 밤바다 풍경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다. 이는 사람들 발걸음이 여수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됐다.



볼거리 많고 먹을거리 그득한 여수 밤바다를 무대로 버스킹(거리공연) 하는 ‘주나밴드’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은 여수를 찾은 이들에게 노래로 즐거움을 주며 지역명물로 자리잡았다. 주나밴드는 싱어 박준화, 드러머 한정노로 구성된 2인조 밴드다. 매주 금, 토, 일 여수낭만포차거리(전남 여수시 중앙동) 하멜등대 근처에서 저녁 8시 30분부터 약 2시간 가까이 버스킹을 한다. 가을 정취가 더해가는 때, 여수를 찾아 버스킹을 막 끝낸 주나밴드의 싱어 박준화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주나밴드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래 보였나요?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들이 덜 모인 것 같은데--(웃음). 우리 주나밴드 노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건 감사한 일입니다. 이곳 여수 밤바다를 찾는 대다수 사람은 외지인(관광객)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노래하고, 여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래로 지역을 알린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있습니다.







-.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이 크게 다가오네요.



몇 년 새 여수를 찾는 관광객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원래 좋았던 여수의 풍광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여수 밤바다’가 더해진 덕분이죠. 찾아온 이유야 어떻든 그분들에게 이곳 여수에서도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음악계 선·후배와 함께 ‘길거리예술공동체’를 설립해서 우리 여수 색채가 가미된 예술무대를 자주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죠. 간혹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지역예술발전에 한 팔 거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축제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끔 공연을 하다 보면 흥에 겨워 ‘막춤’을 시전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심심찮게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분이 왜 저러지?’(웃음)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지만, 제 노래에 감흥이 일어 그런 거니 더 신나게 기타 치고 노래 불러 줍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고 따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 가장 많은 신청곡은 아무래도 ‘그거’겠죠?



네, 맞습니다(웃음). ‘여수 밤바다!’ 여기 오시는 분들 첫 번째 목표가 여수 밤바다를 보는 것이고, 낭만포차에서 맛있는 안주에 한잔 꺾는 게 다음이거든요. 거리에서 우리처럼 버스킹 하는 뮤지션을 보면서 은근히 ‘여수 밤바다 노래도 좀 불러 줬으면’하는 생각이 다 보입니다. 한번은 신청해준 대로 다 불렀는데, ‘여수 밤바다’만 4번이었어요!(웃음)







사람들은 자신의 신청곡이 불리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함께 온 일행에게 자랑스럽게 “내가 신청한 거야!”라며 어깨를 추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사람은 박준화 씨였다.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 역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높았던 건 ‘사업 실패’라는 산이었다.







-. 예전에 라이브카페를 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요.



주위에서 점점 제 노래와 연주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용기가 생겼죠. 그래서 평소 해보고 싶던 라이브카페 문을 열었어요. 창업자금이 부족해서 일수(사채) 빚을 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안되더라고요. 결국, 빚하고 이자만 남아버렸죠. 매일 걸려오는 독촉전화와 겁박, 위협 등, 날마다 지옥 같았어요. 저는 “팔려갔다”는 표현을 쓰는데, 결국은 일수 업자가 지정해 준 업소에 가서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빚을 갚을 수 있었죠. 정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준화 씨는 그 와중에도 한국SGI 문화회관에서 문화행사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발길을 회관으로 돌렸다. 그리고 회관 강당의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며 노래했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좋아해 주는 회원들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고, ‘지금의 어려움을 신심(信心)으로 이겨 보자!’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결국, 1년 만에 빚을 다 갚고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았던 그에게 있어 신심은, 항상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는 동반자가 돼 주었다. 준화 씨 역시 “지치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신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 버스킹이나 학회행사 할 때 본인이 더 큰 격려와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당연하죠. 사람들에게 노래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건 맞아요. 제 노래를 들으시고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갔다” “아버님이 팬이세요.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노래를 들으니 힘이 납니다” 등, 감사를 전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으세요. 그런데 신기하죠, 제가 더 힐링 되는 느낌이니-. 그래서 더 보람을 찾나 봅니다.



사실 가수 ‘박준화’ 하면 한국SGI가 주최한 ‘이웃과 함께하는 행복음악회’(이하 행복음악회)에서 ‘빗속의 여인’을 열창하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박 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행복음악회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노래로 이웃에게 즐거움을 선물해왔다.







-. 행복음악회에서 ‘빗속의 여인’ ‘보고 싶다’를 노래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행복음악회에 게스트로 함께할 때가 한동안 느슨했던 신심을 새롭게 재정립하고 다져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회원에게 노래로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노래로 광포 하고 싶습니다’라고 기원을 많이 했어요.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하는데, 처음에는 제가 즐거움을 선물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그분들의 환한 미소와 박수에 더 많은 격려를 받았어요.







-. 학회활동을 통해서 얻은 힘이 음악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나 보네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신심은 나를 지탱해주는 큰 기둥 중 하나입니다. 신심을 하지 않았다면 인생 자체가 ‘지옥’이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신심입니다.







-. 그동안 쌓아온 음악적 역량을, 학회 미래부 성장을 위해 쓰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차대 우리 학회를 책임질 후계 육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수권 소년소녀부를 대상으로 밴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신심과 음악의 즐거움을 밴드 활동으로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의견을 내고 실무적인 내용을 조율하면서 준비해 왔습니다. 내년 5월, 여수권 회원에게 첫선을 보이자는 목표입니다.







박준화 씨가 신심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진지함 그 자체였다. 실용음악학원 문을 열 때도, 버스킹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버스킹 장소 섭외로 여수시와 마찰이 있었을 때도 언제나 진지한 창제와 기원으로 길을 열어왔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덧 ‘될 때까지 기원한다’는 나름의 모토를 만들 수 있었다고. 이런 준화 씨가 앞으로 열어갈 길이 사뭇 궁금해진다. “노래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라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주나밴드가 여수를 넘어서 전국을 강타하길 응원한다.







· 여수권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