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현규 컴퓨터그래픽 아티스트

기발한 상상력으로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CG 아티스트



 



“내년에는 SF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창 작업 중인데 꽤 욕심 나는 작품이에요. 흔들림 없는 꾸준한 신심으로 사회에서 실력을 갖춘 한 사람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광선유포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영화 속 한 장면도 허투루 하지 않고 기발한 상상력과 열정을 쏟아붓는 컴퓨터그래픽 아티스트 이현규 씨.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에게 여전히 설레는 순간이다.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온 사람들로 세상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저 영화나 TV의 한 장면일 뿐이지만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몰입감은 이미 최고조다. 이 장면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CG(Computer Graphics)가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상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 아티스트로 활약하며 영화를 영화답게, 아니 어쩌면 더욱 리얼하게 만들고 있는 이현규 씨. 생각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 하는 작품 구석구석까지 스며 있는 CG 효과에 대해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가 영화만큼이나 꽤 흥미로웠다.



-. 상상 속에만 있던 장면들도 CG를 통해 영상으로 ‘뚝딱’ 구현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처리로 제작되는 모든 기술을 통틀어 CG라고 할 수 있어요. CG로 웬만한 건 다 실현 가능해요.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90% 이상이 CG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어요. 굉장한 거죠. 그런 차원에서 CG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최근 개봉했던 유명 영화를 작업했다고요.

“흥행작 위주로 말씀 드리면(웃음), ‘안시성’ ‘밀정’ ‘부산행’ 그리고 최근 인기몰이를 했던 ‘엑시트’ 등을 작업했어요. 또 영화관에서 전방 스크린뿐 아니라 좌우 벽면을 동시에 스크린으로 활용해 상영하는 ‘스크린X’ 작업도 하고 있는데, ‘앤트맨2’와 ‘포켓몬스터’ 작품 등을 함께 했어요.”



-. CG 작업자는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평가될 정도라고요.

“맞습니다. 공학과 예체능이 어우러져 있거든요. 기술만 갖추었다고 잘 할 수 있는 작업이 결코 아닙니다. 신입 직원일 때만 해도 기술이 부족해 기술 익히기에 급급했는데 직접 일에 뛰어들고 보니 기술만큼이나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 공간과 조명, 움직임에 따른 빛의 굴절, 피부 질감 등을 고려해 실제처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동시에 필요한 일이죠. 이 부분에서 조금만 어색해도 관객들이 ‘뭐야? CG야? 튀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국내외의 계속 발전하는 CG 기술과 트렌드를 뒤쳐지지 않게 익히는 것도 중요해서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죠.”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영화 한 컷이 완성되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또 감독뿐 아니라 작업자들 사이의 소통은 필수다. CG 아티스트로 벌써 10년차인 이 씨. 이제는 ‘베테랑’이라 불릴 만큼의 실력과 경력을 갖춘 그는 올해 3D파트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CG 아티스트라는 꿈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채 이 씨 마음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숙명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어릴 때 전자오락의 화면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래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어요.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큰마음을 먹고 다니던 대학을 중퇴했어요. ‘일하면서 번 돈으로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어요. 돈부터 벌어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뛰어들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에 ‘CG 아티스트’가 마음에 늘 맴돌았어요.”



-. 그래서결국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결단을 내렸군요.

“솔직히 말하면 ‘반드시 되겠다’는 확신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아침 9시에 강남에 있는 컴퓨터그래픽학원으로 향해 수업을 듣고 곧장 아르바이트를 한 후, 재택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나면 그제서야 과제나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에 2~3시간씩 자며 치열하게 살았어요.”



어쩌면 남들보다 출발이 늦은 나이였기에 주춤할 수도 혹은 조바심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때의 행동이 무모함으로 남지 않도록 기원으로 부딪쳤고 매일의 노력으로 증명했다.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을 누구보다 알고 때때로 찾아와 격려를 보낸 건 당시 남자부 선배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 들어간 CG관련 회사는 상상했던 것 보다 고됐다. 월요일에 옷 가방을 들고 출근해 토요일이 돼야 퇴근할 만큼 매일이 야근의 연속이었지만 그에 비해 노력의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도 추석 연휴를 맞아 부모님께 선물 하나 사드릴 형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이물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CG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자고 결심도 했지만 그때 남자부 선배가 또 한 번 저의 마음을 다잡아줬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로 그때 입회카드도 다시 썼습니다(웃음). 덕분에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간절한 만큼 기원으로 도전하면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픽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였거든요.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정직원 전환 제안을 1순위로 받게 되면서 5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내 노력만으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자만했던 그동안의 저를 되돌아보며 신심(信心)을 더욱 확신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후에도 회사에 여러 번 위기가 찾아와 동료들이 하나둘 그만두는 상황이었지만 저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어요. ‘회사의 숙명도 현규 씨의 기원으로 바꿔낼 수 있어요’라는 남자부 선배의 격려를 받으며 더 솔선해서 ‘끝까지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일과 신심을 병행했습니다. 주말만큼은 남자부활동과 회합참석에 도전했고 그 덕분에 회사의 일이 잘 풀리면서 팀장으로 승진하는 공덕을 받았습니다.”



-. 마디마다 ‘신심’이 있었기에 지지 않았네요. 어린 시절 새긴 체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당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고, 어쩌면 걷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부모님과 회원님들의 절실한 기원으로 건강하게 몸을 회복했어요. 이후 몇 년이 지나서는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가 되어 병원을 찾았는데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창 사춘기이던 시절, 수술과 재활치료라는 긴 시간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기원 밖에 없다’는 부모님의 확신으로 수술과 재활치료 모두 잘 이겨내고 건강해질 수 있었어요. 어본존의 공덕으로 이렇게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상상 속 세상이 이현규 씨의 터치로 눈앞에 생생히 구현되듯, 만약 삶을 영화에 비유한다면 그가 매일 그리는 인생의 장면은 앞으로 얼마나 생생하게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이 분야가 작업자로서는 수명이 길지 않은 편이라 늘 내일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하지만 신심 근본으로 도전한 지금은 길이 많이 열렸어요. 제가 이곳에서 나아갈 역할도 제법 선명히 보이고요. 내년에는 SF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창 작업 중인데 꽤 욕심 나는 작품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SF가 정서에 잘 맞지 않지만 이번 작품이 큰 변수가 될 것 같거든요. 흔들림 없는 꾸준한 신심으로 사회에서 실력을 갖춘 한 사람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광선유포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금천권 男지구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