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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동근 농업기술센터 주무관

농민의 삶에 행복 더해주는 듬직한 청년 일꾼



 



“젊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예전보다 농업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아직까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농업과 관련된 직업은 힘들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청년들이 농업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국 농가가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농촌 발전을 위해 근면 성실하게 구슬땀을 흘려온 이동근 씨. 앞으로 이 씨의 손으로 심은 ‘행복’과 ‘희망’의 씨앗이 영글어갈 세상이 기대된다.



기계화(機械化)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저출산으로 일손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작업 능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주는 기계가 적절한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이제는 기계가 없는 분야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계가 가져다 주는 효과가 극대화된 곳은 바로 농촌이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데 기계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런 중요한 농기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다. 공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동근 씨를 만났다.



-. 주무관으로 일한다고 들었어요. 무슨 업무를 하는지 소개를 부탁합니다.

“‘농업기계 순회수리’를 담당하고 있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각 마을을 방문해서 고장난 농기계를 수리하는 일입니다. 저는 농기계 중에서 소형 기계만 수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경운기, 이앙기, 예초기 같은 것들이죠. 순회수리는 각 마을에서 수리를 원하는 날짜와 기계를 취합한 후, 일정을 정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한 달에 대략 8회 정도 갑니다. 순회수리가 없는 날은 농기계를 임대해주거나 내방수리를 도와주고 있어요. 예전에는 농번기(農繁期)에 일이 가장 많았는데, 요즘은 농업 기술이 발전해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아 항상 일이 많습니다.”



-. 고등학교 때부터 농기계를 수리하셨는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기계가 다양해지고 성능도 월등히 좋아졌어요. 지금은 작물별로 기계가 따로 있을 정도니까요. 여성들도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3~4년 전부터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와 같은 자동화 시스템이 보편화된 것이에요. 버튼 하나로 기계를 움직이고 조작할 수 있게 된 거죠.



-. 2006년부터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셨어요. 오랜 기간 동안 한곳에 있으면 권태를 느낄 때도 있을 텐데, 가장 힘이 된 순간이 있나요.

“실력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힘이 나요. 사실 이곳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실력이 없으면 못한다는 말을 듣기 쉽습니다.(웃음)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농민들에게 힘이 될 때죠. 저희는 대리점과 같이 출장업무 서비스가 없어요. 하지만 종종 기계가 고장이 나서 곤란하다며 연락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살짝 사무실을 빠져나와 수리를 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청 고마워하세요. 사실 가보면 사소한 원인으로 기계가 작동이 되지 않았던 건데, 그 사실을 모르니 손쓸 방법이 없어 막막하신 거죠. 그래서 수리를 마치고, 친절하게 고장이 난 이유와 대처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드립니다.”



-. 농업고 농기계과를 나왔는데 그때부터 이 길을 선택한 건가요.

“도중에 갈팡질팡했어요. 대학은 공업대 자동차학과로 갔거든요. 자동차가 전망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하지만 농업기계와 자동차는 시스템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다 ‘잘하는 길을 선택하자’는 마음에, 농업기계 대리점에서 대형 농기계를 수리하는 일을 했어요.

그렇지만 일이 많아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농번기가 되면 수리 의뢰가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기일을 무조건 맞춰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허다했죠. 결국 자동차 정비업소로직장을 옮겼어요. 그곳에서 1년 정도 근무했는데 조건이 너무 안 좋았어요.

그래서 평생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기원한 끝에 농업기술센터로 들어오게 됐죠.”



-. 도중에 권고사직을 당했다고요.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시작했는데 2008년에 정규직 채용을 확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물론 이곳에서도 정규직을 늘린다는 말이 나왔죠. 다만 조건이 있었는데 2년 이상의 근무 경력이 필요했어요. 당시 저는 간발의 차이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정규직이 되겠지’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그해 10월에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충격이었죠.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정말 하얘지더라고요.”



그때 이동근 씨는 신심(信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씨가 신심의 확신을 가진 시기는 중학생 때였다. 담석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수업 도중에 쓰러졌고,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어본존 앞에 앉았다. 기원하는 속에 불단문 앞에 놓여 있던 성훈이 눈에 들어왔다.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어서 1132쪽)

이 씨는 강성하게 기원했다. 어느새 통증은 사라졌고, 병원에 가니 이 씨의 몸에 있던 돌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 씨는 어려움이 나올 때마다 신심으로 이겨내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나요.

“기원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주위 사람들과 부모님께는 걱정을 끼칠 것 같아 말도 못 꺼냈죠. 진지하게 기원하는 속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짐을 싸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저를 다시 부르시더라고요. 정규직으로 계약하자면서요. 이때 신심 근본으로 도전하면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어요.”



-. 요즘 학창시절에는 열심히 안 했던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면서요.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무슨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어야 해요. 같은 기계라도 업체별로 약간씩 다른데, 그런 부분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죠. 즉,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농기계에 발맞춰 저도 배우고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농업고에 들어간 이유가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느 때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있죠.”



-. 지난 3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논산지역 남자부장의 사명을 받았어요. 공주에서 논산까지는 거리가 멀어 활동하고 귀가하면 자정을 넘길 때가 많지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취업이나 직장 문제로 괴로워하는 남자부원들에게 저의 체험을 전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는 동료들과도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불법(佛法)을 소개해주고 있어요.”



-. 꿈꾸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요.

“젊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예전보다 농업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아직까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농업과 관련된 직업은 힘들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청년들이 농업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국 농가가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묵묵하게 농민의 삶을 지탱해온 두 손과 얼굴에 흐르는 굶은 땀방울에서 이동근 씨가 걸어온 숭고한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씨의 ‘성실’과 ‘노력’으로 다져진 땅에 ‘행복’이 더해져 황금들판으로 거듭날 그 날을 꿈꾸며, 그는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다.



·백제권 지역남자부장






kimdh@(김대현) | 화광신문 : 19/09/27 13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