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정재웅 도솔주조 대표

최고의 술 빚는 비법 ‘봐라’ ‘맡아라’ ‘만져봐라’ ‘들어봐라’



 



“지금까지 70년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맛과 신뢰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맛을 지키고 싶습니다. 신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심이 깊어질수록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불법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술은 대체로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의 형태로 발전했다. 제사 지낼 때 쓰는 제주 또한 집에서 빚어 썼다. 그 때문에 집안마다 지방마다 독특한 방식의 술 담그는 법이 있었다.

1938년 처음 빚은 술 한 단지가 삼대(三代)로 이어진 도솔주조도 마찬가지다. 대대로 내려오는 제주를 만들어 판매한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또 아들로 삼대가 전통을 지키며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대대로 이어지는 깊은 술맛은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각종 매스컴에도 소개됐다. 70년 세월이 술과 함께 향긋하게 익어가는 도솔주조에서 정재웅 대표를 만났다.



-. 어렸을 적부터 양조장이 놀이터였다고요.

“‘술도가’에서 자라난 제게 양조장은 집이자 놀이터나 다름없었어요. 성인이 되고 직장에 다녔는데 할머니 적부터 지켜온 양조장을 두고 고민이 깊었어요. 그러다 2004년 가업을 잇기로 한 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할머니가 만든 ‘대마 막걸리’를 뛰어넘는 ‘찰보리쌀 막걸리’를 개발해 세상에 내놓았어요. 깊은 맛은 살리되 목 넘김이 걸쭉하며 구수한 맛을 더했죠. 맛과 품질에 개성까지 뚜렷하니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 맛의 비법이 있다면요.

“기본 재료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요. 막걸리는 쌀의 품질이 중요해요. 여기, 갓 찐 쌀을 한번 씹어 보세요. 단맛이 배어나죠? 고창은 쌀이 참 맛있고, 물도 좋아요. 최고급 쌀로만 밥을 짓고, 발효 온도를 섬세하게 신경 쓰고, 잡균이 섞이지 않도록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잡균의 침입을 막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할머니에게 종손인 제가 얼마나 귀엽기만 했겠어요. 말썽을 피워도 귀여운 손자, 장난을 쳐도 귀여운 손자였죠. 그러나 ‘누룩 방’ 근처에만 가면 할머니는 굉장히 엄하셨어요. ‘잡균이 들어갈 수 있다’고. 절대 갈 수 없는 지역이었죠. 제가 아홉살 때, 술래잡기를 하다가 누룩 방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때 할머니가 얼마나 혼내고, 욕을 하셨는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한 달 장사는 이미 끝났다고 말씀하시며, 누룩 방에 있던 술 빚는 기구를 전부 다 햇빛에 말리고, 청소하고, 살균처리를 하셨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아찔합니다. 아마 평생 울 것을 그때 다 울었던 것 같아요.(웃음)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됐어요. 할머니의 비법은 바로 누룩을 만들 때 잡균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위생이었어요. 누룩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위생 처리가 술맛의 깊이를 달라지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어요.”



-. 술 익는 소리가 들리신다고요.

“요즘 양조장이 기계화됐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정성이죠. 술 빚는 기술을 배울 때, 할머니와 아버지는 네 가지를 강조했어요. ‘봐라’ ‘맡아라’ ‘만져봐라’ ‘들어봐라’였어요. ‘봐라’는 밥의 차진 정도와 윤기를 눈으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보는 것만으로도 시작을 알 수 있거든요. ‘맡아라’는 술이 익을 때 나는 냄새만으로도 당도를 알 수 있거든요. ‘만져봐라’는 숙성시킬 때, 나오는 온도가 있습니다. 요즘은 온도계가 알아서 맞추어주지만, 손으로 술 항아리를 만져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15년 동안 배우며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들어봐라’는 도저히 알 수 없었어요. 얼마나 익고, 맛을 내는지 소리만으로는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5년 전부터, 그 소리가 들리더군요. 숙성 과정과 판매 순간까지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결과 매뉴얼과 기계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막걸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장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비법으로 ‘도솔주조’만의 막걸리 향과 맛이 완성된다. 명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비법이 영롱한 술 속에 고스란하다.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가 수영을 해도 괜찮을 만큼 커다란 은색 통을 휘저으며 위 네 가지 당부를 가슴으로 되새기는 정 씨. 막 발효를 시작한 원액의 싱그러운 향기, 날짜별로 숙성되어 가는 막걸리 앞에서 그의 오감은 쉴 틈이 없다.



-. 막걸리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 있나요.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는 뜻의 이름이에요. 이름대로 가볍고 하찮은 취급도 받지만(웃음) 오랜 세월 우리네 시름을 달래준 고마운 술입니다. 술은 약도 되고 독도 됩니다. 어느 경우 선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낳을 때도 있습니다. 사윗감을 시험하려면 술을 먹여보라는 풍습도 술을 마시면 그 사람의 감춰진 속내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잘 배워야 하죠. 그러기에 술은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정성을 다한 술은 향과 맛이 독특합니다. 입안에 퍼지는 향기와 목을 넘기면서 느끼는 맛을 음미할 수 있을 때 술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저는 지금도 막걸리 한 잔을 네 번을 꺾어 마십니다. 좋은 술은 이슬방울만큼만 혀를 적셔도 맛과 감동을 줄 수 있어요.”



-. 신심을 시작하고, 술맛이 깊어졌다고요.

“10년 전, 아내의 권유로 신심(信心)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식도암으로 인해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정말 열심히 창제를 했습니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신심을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던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 계시는 모습을 볼 때면 불법(佛法)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 술을 빚는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입회하기 전에는 ‘늘 하던 일’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만’이라는 안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학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비법과 저의 정성이 깃든 막걸리가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 술이 전혀 달지가 않아요.

“고유의 막걸리는 사실, 단맛이 강하지 않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시중에 파는 막걸리에 단맛이 강해졌어요. 저는 그게 너무 아쉬워요. 단맛이 강해지면서 술 빚는 정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신심을 하고 있고, 인생의 스승이 있기에 정성을 다해 고유의 맛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맛을 감추면 언젠가는 한계가 드러납니다. 신심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잘 하는 것 같아도, 기본에 철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고집과 같은 생각이 적중해 판매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공장을 더 큰 곳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양조장 2층을 지역 거점으로 제공하며 불법을 확신하는 마음도 깊어졌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겁니다.”



-. 앞으로의 목표는요.

“열악한 환경과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전통 술이 많이 사라지는 요즘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지금까지 70년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맛과 신뢰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맛을 지키고 싶습니다. 신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심이 깊어질수록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불법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제가 발심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스피치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할머니로부터 술 빚는 법을 배웠고, 세상일에 좌절하고 길을 찾지 못할 때 인생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정성을 다해 만든 술의 맛과 향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때까지, 오늘도 술 익는 소리를 숨죽여 들으며 구슬땀을 흘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읍권 장년부원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9/09/06 13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