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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손웅기 농부

열정 넘치는 청년 농부의 구슬땀이 새로운 농촌 일군다



“‘가족이 먹는 양식’이라는 신념을 관철해 질 좋고 자연친화적인 작물을 제공하는 농업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반드시 불법을 알려줘서 청년 10만 국사의 일원으로서 광포를 위해 함께 활약하고 싶어요.”



 







땅과 하늘을 벗삼아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소중한 생명을 기르는 농부 손웅기(오른쪽) 씨.



농촌에 청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농촌에 사람이 없다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청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있다. 도시의 극심한 경쟁 사회에 지친 청년들이 농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귀농했다는 청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손웅기 씨도 지난 10여 년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자연과 순응하며 걸어가고 있는 농부의 삶을 들여다봤다.



-. 학생이란 신분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서울로 향하는 티켓을 구매하셨다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친척이 서울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며 권유했어요. 미용실에서 잡일부터 시작했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미용 기술은 배우지 못했어요.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정리하고 나왔죠. 그 후 식당에서 몇 년간 일했어요. 사투리 때문에 오해가 생겨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생겼죠.”



이 씨가 생각한 도시는 꿈과 희망이 넘치고, 숨은 기회가 많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현실은 아주 달랐다. 달콤한 유혹과 기대는 사라지고, 차가운 시선이 이 씨를 맞이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속에 허송세월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할머니가 건강 문제로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연락이 왔어요. 아무래도 할머니는 농사하시기에 연세가 많았죠. 또, 저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죠. 농촌에서 제가 좋아하는 동물들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살고 싶었어요.”



-. 어린 시절에 농사해본 경험은 있었나요.

“옛날에는 농번기가 되면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주민이 서로서로 도와줬어요. 농업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으니 일손이 많이 필요했죠. 예를 들어 모내기할 때도 전부 수작업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줄을 들고 밭 양쪽 끝에 서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가 일일이 손으로 심었어요. 저도 학창시절에 농사짓는 걸 도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농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서울로 올라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 귀농 생활은 어땠나요.

“처음은 작게 시작했어요. 약 500평 정도였죠. 그러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동네 주민들이 신뢰하기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안 보는 것 같아 보여도 다 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저를 불러 소유하고 있던 밭을 부탁하더라고요. ‘임대’ 해주신 거죠.(웃음) 그런 분들이 한분 한분 늘어났어요. 다른 사람에게 밭을 맡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농사는 일 년 사업이니까요. 그래서 제초작업이나 논의 상태 등 작은 부분에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곤 합니다. 동네 어른들은 저를 믿고 밭을 맡겼고, 지금은 약 7000평이 넘는 땅에 농사를 짓고 있어요. 처음보다 약 15배 정도 늘어났죠.”



-. 농사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말이 있다면서요.

“땅은 노력한 만큼 나온다는 말이에요. 매일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작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나중에 결과가 크게 달라져요. 예를 들면 고추를 키울 때 얼룩덜룩하게 무늬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병들기 시작했다는징조에요. 근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면 나중에 밭 전체로 퍼져서 전부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이처럼 평소 사소한 부분에서의 노력이 금방 눈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나중에 결과로 나와요. 그래서 할 일이 없을 때도 매일 밭을 둘러보며 이상이 없는지,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고 행동했어요.”



-.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동네 어른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저는 나이가 젊으니까 새로운 기술이나 방식을 접목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동네 어른들은 기존에 해왔던 방법이 최고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새로운 방법으로 하다가 망하면 그해 농사는 끝나니까요. 한마디로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죠. 처음에는 완강하게 저의 주장을 이야기했어요. 여러 번 부딪혔죠. 의견을 밀어붙인 적도 있어요. 하지만 크게 실패했죠. 서리태콩을 심었는데 열매가 맺지 않은 거예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동네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존경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내려놓은 거죠.(웃음)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먼저 옛것으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귀농 생활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가 있다면.

“인내하는 자세를 배웠어요. 구체적으로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이죠. 특히,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대책이 없죠. 그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최대한 고뇌하고 노력하며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죠.”



-. 요즘 뜨고 있는 귀농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위에서 귀농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웃음) 요즘 언론에서 좋은 점만 부각하고 있는데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합니다. 농촌 생활이 좋은 점도 많지만 도시에서 겪을 수 없는 문제들도 많이 나와요. 그러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 신심(信心) 덕분에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농사에 임할 수 있다고요.

“농사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항상 바빠요. 조금도 쉴 틈이 없죠. 그래도 시간을 쪼개서 학회 활동에 도전하고 있어요.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회관도 매일 가려고 노력합니다. 남자부 창제회가 있으면 멤버를 수송해서 가죠. 회합이나 좌담회를 다녀오면 새로운 힘이 나요. 멤버들과 서로 격려하고 창제를 하는 속에 나약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더라고요. 사실 같은 자리에서 한 가지 일만 계속하면 사람이 나태해지잖아요. 저는 학회 활동을 하면서 매일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을 불태우고 있죠.”



-. 농부 손웅기 씨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궈가는 미래는 무엇인가요.

“사회적으로는 농사 면적을 지금보다 더욱 크게 확장시켜 성공한 ‘대농’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이 먹는 양식’이라는 신념을 관철해 질 좋고 자연친화적인 작물을 제공하는 농업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반드시 불법(佛法)을 알려줘서 ‘10만 청년 육성’의 일원으로서 광포를 위해 함께 활약하고 싶어요.”



하늘과 땅을 벗삼아 지역사회와 미래를 위해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농부 손웅기 씨. 그가 빚어내는 생명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회를 극복하고, 주변 환경과 자연을 소중히 하는 인간성 풍부한 사회로 나아가는 거름이 되고 있다.



·전주권 男지구리더



김대현(kimdh@) | 화광신문 : 19/06/14 13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