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서성환 페인트 판매점 대표

오늘 하루도 희망과 행복의 붓질로 반짝반짝 빛난다



 



시간 앞에서 건물의 옷은 점점 허름해진다. 변하고 상하고 흐릿해진다. 강남이나 여의도에서 위용을 뽐내던 빌딩도 시간 앞에서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새로 지은 건물에 옷을 입히고, 오래된 외벽을 다시 보존해 생명의 시간을 연장하는 작업 ‘도장(塗裝)’. 전남 목포시에 있는 페인트 판매점 ‘영진페인트’를 42년간 운영하며 도장업도 하고 있는 서성환(73) 씨. 그의 손을 거치면 허름했던 빌딩이 새것처럼, 거리의 어두웠던 곳도 환하게 바뀐다.



“젊었을 때, 왜 그렇게 페인트 냄새가 싫었는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일을 시작한 지 15년쯤 지나서 지인의 권유로 입회하고 변화가 생겼어요. 일하기 싫어 늘 ‘불만’ ‘푸념’ ‘술’을 달고 살았는데, 마음이 확 바뀌더라고요. 마음이 바뀌니 지독했던 냄새가 향수로 느껴지더라고요.”





오로지 신용을 바탕으로 42년간 페인트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성환 씨.



─. 두 가지 일(판매점 운영, 도장)을 다하려면 힘드시겠어요.

“사람들이 그래요. 이제는 판매점에 앉아서 페인트만 팔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요. 판매점에만 앉아 있으면 몸이 간질간질해서 어디가 아픈 것 같더라고요. 대부분 대량으로 구매하는 손님들이기 때문에 미리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그래서 도장을 하러 갈 때면 아내에게 맡기곤 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도장을 하며 생기는 장점이 더 많아요. 페인트의 유행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 수 있고, 구매자가 필요한 물건이 뭔지를 잘 아니까 합리적으로 물건을 가게에 둘 수 있거든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 판매점을 찾는 손님 중에 누구도 값을 깎지 않네요.

“여긴 단골들만 찾아와요. 저희 판매점은 ‘꼭 필요한데, 아무 데서나 팔지 않는 페인트’가 많아요. 또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에요. 혹시나 찾는 물건이 없어도 한 시간 안에 구해 줄 수 있으니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출도 목포에서 손으로 꼽힐 만큼 잘되고 있어요. 하루이틀 본 사이가 아니니까, 값을 깎아달라는 말은 안 하죠.”(웃음)



─. IMF 외환위기 때 가장 매출이 높았다고요.

“50여 개가 넘던 목포의 페인트 판매점들이 줄지어 문을 닫았던 IMF 때도 저희 판매점은 매출 최고를 기록했어요. 그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한 번에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사실 대단지 아파트 공사에 납품하게 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대부분 어음이 많았어요. 아무리 대형 건설사라 해도 현금으로 결제되지 않으면 절대 거래하지 않았어요. 대량으로 판매해 당장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현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전부 다 빚이 되는 거잖아요. 두 번째로는 신용입니다. 저는 판매점을 시작한 1977년부터 ‘아, 저 판매점은 절대 물건을 속이지 않는다’ ‘물건값이 합리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최고의 제품만 취급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가 그 어려웠던 시기를 누구보다 슬기롭게 극복했던 이유였습니다.”



─. 페인트 종류도 참 다양하네요.

“여기 보시면 젯소, 수성페인트, 유성페인트, 고형페인트, 바니쉬, 스테인, 광택제 등이 있어요. 이렇게 페인트 종류는 다양하지만 바르는 표면에 따라서 쓰임새가 달라요. 페인트는 크게 수성페인트와 유성페인트로 나뉘어요. 그 정도는 일반인들도 아실 것 같은데요. 가정에서 많이 쓰는 유성페인트는 시너와 희석해서 쓰죠. 목제 가구나 창문, 철제 대문, 철제 소품 등 목재 및 철재 마감 도장용으로 사용합니다.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요즘은 무독성, 무향 제품들도 많아져 사용하기 용이합니다. 그리고 수성페인트는 건물 외벽이나 콘크리트,시멘트벽, 벽지 등에 주로 쓰이는데요, 대부분 흰색이라 원하는 색을 내려면 수성 도색제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요. 붓질하기가 편해서 바르기는 쉽지만, 광택이 없고 빨리 마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는 판매점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도장 일을 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건물 계단 외벽을 도장하는 현장이었다. 새로운 색을 입히는 그의 도장 솜씨를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꼼꼼히, 구석구석 오가는 롤러에는 그만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 언제부터 도장을 하셨나요.

“군 제대 하고 바로 이 일을 했죠. 그때만 해도 이렇게 좋은 페인트도 없었어요. 믿지 않겠지만, 풀을 만들어서 연탄가루나 숯가루를 넣어서 색을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도장을 했지’ 하며 헛웃음이 나온다니까요. 물론 당시 페인트가 있긴 했지만 돈 좀 있는 사람들이나 썼지, 저 같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죠. 좀 살만한 1970년 말에 들어서야 페인트를 썼던 것 같아요. 도장 방법도 처음에는 붓으로 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롤러, 스프레이 도장으로 개발됐고, 요즘은 정전도장이나 플로코터 도장도 생겼어요.”



─. 고층빌딩은 도장하기 위험하겠어요.

“오히려 허리에 줄을 묶고 고층에서 작업하는 게 더 안전합니다. 아마 높은 곳이라서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워낙 안전장치가 잘 되어서 큰 문제는 없어요. 오히려 사다리를 타고 작업하는 게 더 위험해요. 사다리라는 게 20m가 넘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게 정말 위험하죠. 밑에서 사다리를 잡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위험한 것은 달라지지 않아요. 최소의 안전일 뿐이죠. 줄타기에는 조금 낮고, 애매한 높이에서는 사다리를 이용해요. 5년 전인가. 허리에 찬 페인트에 걸려 15m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질 뻔한 일도 있었고, 최근에는 건물 외벽 옥상에서 작업하다가 롤러가 닿지 않은 곳에 무리하게 닿으려다가 사다리가 넘어질 뻔한 일 등 다사다난했죠. 그때마다 불가사의하게 사고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이 모든 게 신심(信心)의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 꼼꼼한 성격이어서 일이 적성에 맞으셨겠는데요.

“젊었을 때, 왜 그렇게 페인트 냄새가 싫었는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몸에 밴 페인트 냄새와 시너 냄새가 정말 넌더리났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다른 일을 찾아 도망갔다가 돌아와도 이 일을 하는 거에요.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웃음) 아무리 페인트와 거리를 두려고 해도, 결국 굳은살 깊게 박인 손에 페인트 붓이 들려져 있더라고요. 일을 시작한 지 15년쯤 지나서 지인의 권유로 한국SGI에 입회하고 변화가 생겼어요. 일하기 싫어 늘 ‘불만’ ‘푸념’ ‘술’을 달고 살았는데,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지금 현실이 지옥이 아니라, 불도수행의 장소라는 것을 깨달으니 무엇이든 즐거웠어요. 마음이 바뀌니 지독했던 냄새가 향수로 느껴지더라고요. 또 저를 찾는 손님에게 더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었어요.”



─. 포교도 많이 하신다고요.

“제 아들이 서울에서 큰 횟집을 10년 정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생선 냄새가 너무 싫다는 거예요. 딱 내 젊은 시절 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인생 선배로서 ‘네가 하는 일에 의심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천직으로 받아들이면 순탄하게 너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들을 포교했어요.

요즘은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이나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온 청년에게 열심히 하종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3명 정도 반응이 좋아서 올해 3월까지 꼭 포교할 겁니다.”



청년 못지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서성환 씨. 한번 맡은 일을 끝까지 해가는 우직함.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고집. 오늘도 그의 능력과 인내가 전남 목포시의 어느 한 곳에서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유달권 지구부장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9/01/11 12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