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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신원선 ㈜대림코퍼레이션 서비스마케팅

어떤 어둠에도 태양같은 빛을 비추며 세계를 무대로 달리는 청춘



 



“대학원에서는 모든 과목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에 더 치열하게 버텨야 했는데 이케다 선생님의 격려에 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어요. 그 결과 한국인 최초로 상하이해사大 공학 석사 학위 취득, 졸업 전 영국계 회사인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스승이 있기에 청춘의 길을 단단하게 개척하고 있다는 신원선 씨. 15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입사한 지금의 무대에서 눈부시게 활약 중이다.



“세계는 청년의 무대입니다.”(이케다 선생님)

신원선 씨가 세계라는 무대로 꿈을 키울 수 있었던 한 마디다. 건반을 하나씩 충분히 꾹꾹 눌러가며 음악을 완성하듯, 신 씨는 그때부터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디며 청춘의 길을 열었다. 그 걸음걸음마다 참으로 요란해 꽤나 버거웠을 법도 한데 신 씨에게는 ‘신심(信心)’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8년간의 중국 유학을 거쳐 현재 내로라하는 국내 종합무역상사에서 서비스마케팅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를 만나 두툼히 쌓인 청춘의 이야기를 펼쳤다.



─. 올해 1월로 정확히 입사 1년째네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입사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물류와 선박사업 등과 관련한 해외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수익성을 만들어낼 방법을 강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웹툰 ‘미생’의 배경도 무역상사였죠. 하루하루가 참 분주할 것 같은데요.

“네. 처음에는 선박사업부에서 일했는데 화물을 실은 배가 도착지까지 운항하도록 선장 그리고 화주(貨主)와 연결하는 역할이었어요. 배가 운항하는 데 주말이 있나요. 새벽이고 주말이고 몇천 통의 메일을 확인하고 소통하죠. 직원들끼리 농담처럼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요. 해운산업은 우리 생활에 아주 중요하게 스며들어 있어요.”



─. 중국 유학 시절을 묻지 않을 수 없겠네요.

“어릴 때부터 이케다(池田) 선생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세계 광포’라는 꿈을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었어요. 물류 관리를 전공으로 선택했는데 물류분야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 수 없는 분야거든요. 해운과 물류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로 손꼽히는 다롄해사대학교를 목표로 중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미리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직접 가보니 꼭 입학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어요.”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마음껏 공부할 수 없는 형편도 문제였지만 굳이 타국에서 홀로 힘들게 공부해야 하느냐는 부모님의 우려가 신 씨를 붙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중국에서의 생활.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신 씨가 마주한 건 언어의 장벽이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갔으니까요. 입학시험에 통과하더라도 HSK라는 중국어 시험 점수가 있어야 했는데 저는 점수가 미달이라 꼴찌로 간신히 들어갔어요. 전공 교과서 한 장을 번역하기까지 3시간이 꼬박 걸렸는데 현지 학생들과의 실력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앉아서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에 염증이 생긴 적도 있어요.”





대학원 졸업을 축하하며 외국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신원선(앞줄 오른쪽 셋째) 씨.



─.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권 학생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겠어요.

“중국에서의 생활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만 하는 친구들과 달리 저는 늘 학비를 마련하는 것부터 모든 게 도전이었으니까요. 거기다 인종차별로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 당하기도 하고 ‘작고 힘없는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라며 차별하는 교수들도 종종 있었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결코 후회하진 않았지만 중국에서의 매일이 괴로웠어요. 그럴 때마다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 이케다 선생님 서적과 한국에서 날아오는 화광신문이었어요. 미래부 시절부터 격려해준 여자부 선배와도 연락하곤 했는데, ‘원선 씨를 괴롭히는 친구들도, 일부러 낙제 점수를 줬던 교수님도 모두 부처의 생명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분들의 행복을 매일 기원해주세요’라는 말이 그때는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웃음) 하지만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원하자고 정했어요. 어머니께서 창제 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보내주셨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기숙사에서 늘 창제하곤 했어요.”



신 씨는 이케다 선생님의 올바른 사상과 철학, 생명의 소중함을 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외국어 공부에 더욱 힘을 쏟았고 교수님께도 인정받는 학생이 되고자 전공 공부도 놓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외국인 친구 10명을 포교하며 진정한 우정의 연대를 넓혔고, 낮은 성적으로 들어간 대학을 수석으로 당당히 졸업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2010년에는 다롄해사대학교에서 중일우호와 세계평화를 위해 공헌한 이케다 선생님께 명예교수 칭호를 수여하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맞이하며 잊지 못할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 고된 학업을 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요.

“관련 분야를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에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원 입학 준비도 병행했어요. 교수님의 도움으로 상하이해사대학교에 학비부터 기숙사비, 생활비까지 전액 지원받으며 석사 과정으로 입학했어요. 한국인 유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건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대학원에서는 모든 과목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에 더 치열하게 버텨야 했는데 ‘고통이나 슬픔이 있을수록 고뇌했던 만큼, 그 이상으로 행복해지는 거다’라는 선생님의 격려에 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어요. 그 결과 한국인 최초로 상하이해사대학교 공학 석사 학위 취득, 졸업 전 영국계 회사인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국에서 부단히 노력하다 한국으로 귀국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그동안 쌓았던 실력을 이제는 한국에서 펼치며 한국 여자부로서도 마음껏 활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신념 하나로 한국에 돌아와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죠. 입사 초반에는 거칠고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에 ‘이곳에서 과연 내 꿈을 펼칠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여성이 지닌 유연한 상상력, 상냥함, 온화함, 인간미 등이 사회에 반영되길 바란다’는 이케다 선생님 지침대로 항상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하며 업무에서도 성실하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은 ‘원선 씨는 항상 밝아서 좋다’며 회사에서 인정받고 마음껏 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는 성훈을 곱씹으며 용기의 도전을 거듭해온 신원선 씨. 어떤 어둠에도 흔들림 없이 호방하게 길을 열 수 있었던 승리의 열쇠는 신심 근본의 단단한 마음에 있었음을 아마 누구보다 가장 잘 알 테다. 이쯤 되니 세계를 무대로 유연히 펼쳐갈 지지 않는 청춘 신원선 씨의 다음 목표가 벌써 궁금해졌다.



“사실 한국에 들어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박사 과정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도전하지 못했어요. 좀 더 경력을 쌓고 꼭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교수로서 활약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21세기를 짊어질 청년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더욱더 당당하게 전진하는 여성 리더가 되겠습니다.”



·구로권 女지구리더






강혜진(hjkang@) | 화광신문 : 19/01/18 12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