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홍성원 바둑원장

오랜 슬럼프 극복…새로운 삶 향해 매순간 최선의 수를 두다



올해 제9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경상남도바둑협회 소속으로 단체전에 출전한 홍성원 씨.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묻자 ‘이케다 선생님을 마음에 품고 바둑교육으로 광선유포 하겠습니다’ 라고 결의를 전했다.











바둑으로 아이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하며, 광선유포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홍성원 씨. 그가 전하는 한 수 한 수가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한 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6년 3월, 전 세계의 이목은 인공지능과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 챔피언 이세돌 9단의 대국. 역사에 영원히 남을 세기의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바둑은 큰 이슈가 됐다.



수천 년간 한국·중국·일본에서 대중오락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둑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인류 역사상 천재라고 꼽히는 아인슈타인도, 컴퓨터를 개발한 빌게이츠도 바둑을 즐겼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즐기고 좋아하는 바둑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홍성원 씨를 만났다.







─. 바둑에서 절대 경지에 다다른 ‘신의 한 수’는 과연 존재할까요?



“사실 신의 한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바둑의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신의 한 수는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동경하고 찾으려고 하는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아무리 뛰어난 경기도 서로 완벽하게 둔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다만, 신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것은 알파고라고 생각해요.”







─.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보셨나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이세돌 9단이 이길 줄 알았거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지고 말았죠. 그 대국을 복기했는데 이세돌 9단이 기량을 전부 발휘하지 못했다 생각해요. 실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요. 알파고가 나온 덕분에 바둑의 기술이 크게 향상됐어요. 기존에는 이 상황에서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걸 알파고가 깨버린 거죠.”







─. 바둑이란 어떤 스포츠인가요.



“바둑은 전투보다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부분적인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패하면 소용없죠. 그래서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선 집중력과 인내력, 창의력이 중요합니다. 또, 바둑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 항상 최선의 수를 찾아야 해요. 혹여 상대방의 수를 순간이라도 놓치게 되면 패배로 직결됩니다. 저도 경기 도중 계속 이기고 있다가 상대의 수를 예측하지 못해 5분 만에 진 경우도 있어요.”







─. 이세돌 9단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요.



“초등학생 시절, 이세돌 9단이 바둑 도장을 직접 방문해 지도해주셨어요. 당시 몇 명만 선발해서 가르쳤는데, 운이 좋게 제가 여러 번 뽑혔어요. 그래서 이세돌 9단과 대결하며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었습니다. 물론 결과는 전부 패배했고요.(웃음)”







5살 때부터 바둑을 배운 홍성원 씨. 그는 점차 재미를 붙이며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고, 지방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마침내 홍 씨는 학원 강사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 프로기사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고 들었는데 어린 나이에 힘들지 않았나요.



“부모님과 떨어져 단체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웠어요. 하지만 바둑에서는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 괴로웠죠. 학생 시절에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기원의 연구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연구생끼리 경쟁해서 상위에 속한 선수는 프로가 되죠. 그래서 저도 한국기원에 들어가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평균적으로 한국기원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들어가는데, 저는 번번이 떨어졌어요. 전국대회에서 수 차례 입상을 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하진 않았는데, 연구생 선발전만 하면 아슬하게 떨어졌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필사적으로 준비한 끝에 연구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부터 더 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다른 친구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긴장으로 시합 때마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어요. 결국 프로기사가 되지 못했고, 나이제한으로 20살 때 한국기원에서 퇴출 당했어요.”







─. 세상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바둑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프로기사가 안 되면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죠. 한국기원에서 나왔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있다는 죄책감이 컸어요. 부모님은 ‘바둑이 아니어도 좋으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격려하셨지만 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오로지 프로기사가 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생 때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식사하는 시간 빼고 바둑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매번 아쉽게 떨어졌어요.”







─.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었네요. 그래도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회 준비나 바둑 연습으로 좌담회나 회합에 참석하지 못하는 저를 위해 소속의 지부남자부장님이 찾아와 격려해주셨어요. 그리고, 언제나 직접 손으로 쓴 엽서를 전해주셨는데 그 내용 중 ‘결의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이 바뀌면 주위도 바뀐다. 모든 것이 바뀐다. 승리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라는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스피치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2016년에도 대회에서 탈락한 홍 씨는 병역 의무를 완수하고 다시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그 해 여름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남자부와 함께 활동하며 학회 정신을 배웠다.







─. 학회활동으로 바둑을 임하는 생각이 달라졌다고요.



“신심으로 여유를 찾을 수 있었어요. 또 보성회, 화랑반 등 학회 사명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생각하는 시야도 넓어지면서 바둑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지더라고요.”







─. 올해 전국체육대회에서 바둑 단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사실 출전조차 못할 뻔했어요.(웃음) 지역마다 아마추어 바둑기사가 소속된 팀이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지 못해요. 저는 사회복무기간이었으니 팀에 들어갈 수 없었죠. 그렇지만 꼭 대회에 나가고 싶었어요. 올해 원단부터 전국체육대회 출전을 기원했거든요. 사회복무기간이 끝나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경상남도바둑협회에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찾는데 나갈 의향이 있냐고 했죠. 저는 당연히 나가겠다고 말했죠.”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3승을 거둔 홍성원 씨의 활약으로 경상남도바둑협회는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묵묵히 노력해온 결실을 거둔 순간이었다.







─. 앞으로 프로기사의 꿈은 도전하실 건가요.



“현재 바둑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수년간 학원을 운영했던 부모님의 도움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 있고, 좋아하는 바둑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프로기사의 꿈은 아직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프로기사만을 바라보진 않을 겁니다. 새로운 꿈도 생겼고요.”







홍성원 씨는 지난 10월 은사기념실 연수를 통해 세계광포를 향한 스승의 마음과 투쟁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방명록에 ‘이케다 선생님을 마음에 품고 바둑교육으로 광선유포 하겠습니다’라고 힘찬 결의를 썼다고 한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자신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가는 홍성원 씨. 앞으로 행복의 길로 향하는 홍 씨의 ‘신의 한 수’가 기대된다.







· 성남권 男지구리더











김대현(kimdh@) | 화광신문 : 18/12/14 12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