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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학

 

  • [신심실천의 근본] - 신•행•학

  • 관리자

  •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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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신·행·학(信行學)

여기서는 우리가 니치렌 대성인 불법을 실천하는 데 있어 세가지 기본인 신(信), 행(行), 학(學)을 배웁니다.

►신

신은 신수(信受)라고도 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신’이야말로 우리가 부처의 경애에 들어서기 위한 근본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석존의 제자 중에서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불린 사리불(舍利弗)도 오직 신수함으로써만 법화경에 설한 법리를 체득할 수 있었다고 설합니다. 즉 비유품(譬喩品)에는 “그대 사리불마저도 역시 이 경에는 신으로써 들어갈 수 있었거늘”(법화경 197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이를 ‘이신득입(以信得入)’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깨달은 위대한 지혜, 경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길은 오직 ‘신’에 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법에서 설하는 생명의 법리가 올바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 근원의 법인 남묘호렌게쿄를 어본존으로써 도현하셨습니다. 즉 대성인이 말법의 일체중생을 위해서 자신이 깨달은 부처의 생명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 어본존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본존을 우리가 성불의 경애를 열기 위한 유일한 연(緣,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깊이 믿는 것이 대성인 불법을 수행하는 근본이 됩니다. 어본존을 신수하여 창제에 힘쓸 때, 묘법의 공력(功力)을 자신의 생명에 개현해 성불의 경애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행

행은 어본존을 신수하고 행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말합니다.
불법에서는 우리 자신의 생명 안에 자비와 지혜가 넘치는 부처의 생명경애 즉 불계가 본디 엄연히 갖춰져 있다고 설합니다.
그리고 불도수행의 목적은 바로 이 자기자신의 생명 안에 비침된 부처의 생명경애를 현현하여 절대적 행복경애를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생명 안에 갖춰진 힘도 그것을 현실의 인생에 나타내어 작용시키려면 구체적으로 변혁하고 개척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부처의 경애를 자신의 생명에 현현하려면 도리에 맞는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한데 그것이 ‘행’입니다.
이 ‘행’에는 ‘자행’ ‘화타’의 양면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양 바퀴처럼 어느 쪽이 빠져도 수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행’은 자신이 법의 공덕을 얻기 위한 수행입니다. ‘화타’는 타인에게 공덕을 받도록 불법을 가르치는 실천을 말합니다.
또 “말법에 들어와서 이제 니치렌이 부르는 바의 제목은 전대(前代)와는 달리 자행화타에 걸쳐 남묘호렌게쿄이며”(어서 1022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법에는 자신의 성불을 목표로 하는 자행도, 사람들을 교화하는 화타도 성불의 근본법인 남묘호렌게쿄를 실천합니다.
즉 자신이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는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어본존의 공덕을 가르쳐 신심을 권하는 자행화타에 걸친 실천이 대성인 불법의 올바른 불도수행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행은 근행(독경, 창제)이고, 화타는 절복, 홍교입니다. 또 광선유포를 위한 여러가지 실천 활동도 화타의 수행이 됩니다.

생명변혁의 실천 – 근행과 홍교

‘근행’은 어본존을 향해서 독경, 창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생명변혁의 구체적인 실천 중 하나입니다.
대성인은 근행을 흐린 거울을 닦는 일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어서 384쪽) 
(통해 : 예를 들어 흐려서 사물이 비치지 않는 거울도 닦으면 마치 옥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의 〈우리 범부의〉 무명이라는 근본 미혹에 뒤덮인 생명은 닦지 않은 거울과 같다. 이를 닦으면 반드시 진실한 깨달음을 얻은 지혜로운 명경이 된다. 깊이 신심을 불러 일으켜서 밤낮으로 또한 게으름 없이 자신의 생명을 닦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닦으면 좋은가.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것, 이것을 닦는다고 한다.)
이 비유로 나타내듯이 거울 자체는 닦기 전이나 닦은 뒤에도 같은 거울이지만 그 작용은 전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나날의 근행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이 연마되어 그 작용이 크게 변혁됩니다.
또 ‘홍교’에 관해 〈제법실상초〉에서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중략)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어서 1361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쿠니치보어서(寂日房御書)〉에서는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된 사람들은 숙연(宿緣)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어서 903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근행으로 자신만의 경애변혁이 아니라 자타 함께 행복을 목표로 일문일구라도 불법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신심을 더욱 심화할 수 있는 동시에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부처와 보살의 경애를 자신의 생명에 불러 일으켜 대성인의 참된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근행과 더불어 홍교를 실천하면 자신의 생명을 변혁하는 큰 힘이 됩니다.
또 법화경에는 “남몰래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법화경 357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여래는 부처를 말함)
이 경문을 바탕으로 대성인 은 “법화경을 일자일구라도 부르고 또 남에게도 이야기하는 자는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사자(使者)니라.”(어서 1121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실천하는 화타행은 부처의 심부름꾼(여래의 심부름꾼)으로서 부처의 행동(여래〈如來〉의 사〈事〉)을 실천하는 가장 존귀한 행위입니다.

정행과 조행 - 창제가 근본, 독경은 보조

생명변혁의 구체적 실천의 한 기둥으로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근행을 합니다.나날의 근행에서는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불러, 법화경의 방편품(方便品) 제2(첫머리 산문 부분)와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16의 자아게(自我偈)를 독송합니다.
근행은 어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창제가 근본이므로 창제를 ‘정행(正行)’이라고 합니다.
또 방편품, 자아게의 독송은 ‘정행’인 제목의 공덕을 나타내려고 돕는 것이므로 ‘조행(助行)’이라고 합니다.
법화경 28품(장) 중에서도 방편품과 수량품 자아게를 독송하는 이유는 이 두 품이 만인성불을 설하는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품이기 때문입니다. 
방편품에서는 법화경의 전반인 적문(迹門)의 중심 법리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설하고 있습니다. 
수량품에서는 법화경의 후반인 본문의 중심 법리인 ‘구원실성’을 설하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수량품, 방편품을 읽으면 자연히 여품(餘品)은 읽지 않아도 갖춰지느니라.”(어서 120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행과 조행의 관계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소금과 식초가 밥이나 면의 맛을 북돋는 것처럼 방편품, 수량품을 독송하는 것은 ‘정행’인 제목의 심원한 공덕을 나타내려고 돕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조행’이라고 한다.”(취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근행할 때 방편품, 자아게를 독송하는 이유는 어본존의 공덕을 찬탄하기 위해서입니다.

►학

‘학’은 니치렌 대성인이 남기신 ‘어서’ 배독을 근본으로 올바른 불법의 법리를 배우는 교학 연찬을 말합니다.
올바른 불법 법리를 배움으로써 더 깊고 완전한 신을 확립할 수 있고 또 올바른 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학의 연찬이 없으면 자칫하면 자기 멋대로 불법을 이해해버리는 위험성이 있고 잘못된 가르침을 설하는 자에게 속아 넘어갈 우려가 있습니다.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난다’고 대성인이 말씀하시듯 교학의 근본이 신심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또 제2대 회장 도다 선생님은 “신은 이(理)를 구하고, 구한 이는 신을 깊이 다지고” 하고 말씀하시듯, 불법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신심을 깊이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되풀이 되풀이 해서 이 서(書)를 항상 읽게 하여 청문(聽聞)하십시오.”(어서 1444쪽) 등, 당신이 쓰신 어서를 되풀이해서 배우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성인에게 불법의 법리를 질문한 문하에게는 그 구도심을 칭찬하셨습니다.
닛코 상인도 “어서를 심간(心肝)에 새기어”(어서 1618쪽)라고 말씀하시고, 또 “학문이 미련(未練)하고 명문명리(名聞名利)의 대중은 나의 말류(末流)가 될 수 없다.”(어서 1618쪽) 하고 교학 연찬을 강하게 권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