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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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 대성인의 생애] - 탄생•출가•유학과 입종선언
관리자
2021-10-20
2,403
Ⅰ. 니치렌 대성인의 생애
니치렌 대성인은 한결같이 전 인류의 불행을 근절해 모든 사람에게 부처의 경애를 열게 하려는 서원(誓願)과 자비의 마음으로 묘법(妙法)을 홍통하는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을 저해하는 일체의 악을 끝까지 가책해 대난에 이은 대난을 겪은 생애이기도 했습니다.
►탄생, 출가, 유학
니치렌 대성인은 1222년 2월 16일, 아와 지방 나가사군 도조향의 가타우미(현재의 지바현 가모가와시)라는 어촌에서 탄생하셨다고 전합니다.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서민 출신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부터 아와 지방에 있는 세이초사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에 대성인은 “일본 제일의 지자(智者)가 되게 하소서”(어서 888쪽)라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부모 그리고 민중을 구하기 위해 생사(生死)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이겨내는 불법(佛法)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불법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열여섯 살 때, 세이초사의 도젠보(道善房)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였습니다.
그 무렵 “명성(明星)과도 같은 지혜(智慧)의 보주(寶珠)”(어서 888쪽)를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불법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묘법’에 관한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대성인은 가마쿠라, 교토, 나라 등 각지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히에이산에 있는 엔랴쿠사를 비롯한 여러 유명 사찰에서 많은 경전을 공부해 각 종파가 설하는 교의의 본질을 파악하셨습니다. 그 결론으로 법화경만이 모든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경전이고, 자신이 깨달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야말로 법화경의 간요(肝要)이자 만인의 고뇌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이라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를 말법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법으로써 넓힐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말법’은 석존의 불법이 구제의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말하며, 그때를 석존이 입멸하고 2000년 이후라고 했습니다. 이 설을 토대로 ‘말법에 들어선 해’를 1052년으로 추정합니다.〉
►입종선언
유학 생활로 묘법홍통의 사명과 그 방도를 확인한 대성인은, 대난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고 묘법을 홍통하는 첫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1253년 4월 28일 ‘오시(午時, 정오 무렵)’, 세이초사에서 염불 등을 파절(破折)하고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드높이 불러 말법의 민중을 구제하는 유일한 정법(正法)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입종선언(立宗宣言)’입니다.
입종이란 종지(宗旨, 중요한 교의〈敎義〉)를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서른두 살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스스로 ‘니치렌(日蓮)’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이 입종선언을 하자 염불의 강신자이자 이 지역의 지두(地頭, 경찰권과 세금 징수권 등을 행사한 막부〈幕府〉의 관리)인 도조 가게노부는 대성인이 염불종의 교의를 강하게 비판하자 크게 격분했습니다.
그로 인해 대성인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지만, 대성인은 가까스로 그 난을 모면했습니다.
그뒤, 대성인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 가마쿠라로 갔습니다. 나고에 근처(마쓰바가야쓰라고도 전해짐)에 초암을 짓고 본격적인 홍교를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가마쿠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염불종과 선종(禪宗)의 잘못을 파절하면서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넓혔습니다.
이 홍교 초기에 도키 조닌, 시조 깅고(요리모토), 이케가미 무네나카 등이 입신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한결같이 전 인류의 불행을 근절해 모든 사람에게 부처의 경애를 열게 하려는 서원(誓願)과 자비의 마음으로 묘법(妙法)을 홍통하는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을 저해하는 일체의 악을 끝까지 가책해 대난에 이은 대난을 겪은 생애이기도 했습니다.
►탄생, 출가, 유학
니치렌 대성인은 1222년 2월 16일, 아와 지방 나가사군 도조향의 가타우미(현재의 지바현 가모가와시)라는 어촌에서 탄생하셨다고 전합니다.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서민 출신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부터 아와 지방에 있는 세이초사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에 대성인은 “일본 제일의 지자(智者)가 되게 하소서”(어서 888쪽)라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부모 그리고 민중을 구하기 위해 생사(生死)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이겨내는 불법(佛法)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불법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열여섯 살 때, 세이초사의 도젠보(道善房)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였습니다.
그 무렵 “명성(明星)과도 같은 지혜(智慧)의 보주(寶珠)”(어서 888쪽)를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불법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묘법’에 관한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대성인은 가마쿠라, 교토, 나라 등 각지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히에이산에 있는 엔랴쿠사를 비롯한 여러 유명 사찰에서 많은 경전을 공부해 각 종파가 설하는 교의의 본질을 파악하셨습니다. 그 결론으로 법화경만이 모든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경전이고, 자신이 깨달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야말로 법화경의 간요(肝要)이자 만인의 고뇌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이라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를 말법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법으로써 넓힐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말법’은 석존의 불법이 구제의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말하며, 그때를 석존이 입멸하고 2000년 이후라고 했습니다. 이 설을 토대로 ‘말법에 들어선 해’를 1052년으로 추정합니다.〉
►입종선언
유학 생활로 묘법홍통의 사명과 그 방도를 확인한 대성인은, 대난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고 묘법을 홍통하는 첫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1253년 4월 28일 ‘오시(午時, 정오 무렵)’, 세이초사에서 염불 등을 파절(破折)하고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드높이 불러 말법의 민중을 구제하는 유일한 정법(正法)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입종선언(立宗宣言)’입니다.
입종이란 종지(宗旨, 중요한 교의〈敎義〉)를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서른두 살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스스로 ‘니치렌(日蓮)’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이 입종선언을 하자 염불의 강신자이자 이 지역의 지두(地頭, 경찰권과 세금 징수권 등을 행사한 막부〈幕府〉의 관리)인 도조 가게노부는 대성인이 염불종의 교의를 강하게 비판하자 크게 격분했습니다.
그로 인해 대성인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지만, 대성인은 가까스로 그 난을 모면했습니다.
그뒤, 대성인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 가마쿠라로 갔습니다. 나고에 근처(마쓰바가야쓰라고도 전해짐)에 초암을 짓고 본격적인 홍교를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가마쿠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염불종과 선종(禪宗)의 잘못을 파절하면서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넓혔습니다.
이 홍교 초기에 도키 조닌, 시조 깅고(요리모토), 이케가미 무네나카 등이 입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