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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권오학·김경미 도예가

도자악기로 한국의 미 전하는 도예가 부부



 



“손에서 흙을 놓지 못하는 일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언제나 즐겁고 설렙니다.

흙을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바쁜 일상을 벗어나 흙을 빚으며 힐링할 수 있는

도예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흙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이 도자를

보며 삶의 뿌리를 찾길 소망합니다.”






무거운 흙의 냄새를 인생의 자양분 삼아 함께 걸어온 도예의 길 30여 년. 도자에 담긴 이야기는 권오학(가운데)·김경미(오른쪽) 부부의 인생과 닮아있다.



두 손끝으로 빚어낸 도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맑으면서도 깊이 있는 도자는 마치 도예가의 인생을 가만히 품어낸 듯하다.

도자기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이천도자예술촌. 이곳에서 30여 년 가마 앞을 지키며 도예의 길을 걷고 있는 도예가 권오학·김경미 부부를 만났다.



-. 상상했던 도자기가 아니라서 놀랐습니다.

“도자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죠. 한국의 민화(民畵)를 입체감을 살려 새겨넣었는데 돌리며 감상하면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여요. 흙을 여러 겹 덧댄 ‘덧붙임 기법’이라고 하죠. 몇 년 전 개발해 특허를 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아요. 도자에 대한 노하우가 없으면 이렇게 구워내기 힘듭니다. 숱한 실패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죠. 공자는 ‘자연은 말 없는 말을 한다’고 했는데 도자 역시도 우리네 삶이 들어 있어요.”



-. 도자로 만든 악기도 눈에 띄네요.

“이것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지요? 지인의 권유로 2000년 즈음부터 도자로 악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도자로 만든 장구가 고려시대에 있었더군요. 그 시대의 장구 진품이 발굴되면서 저희 장구 제작 과정이 TV에 소개되기도 했고 고려청자 장구를 직접 재현해 ‘진품명품’에 소개되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연이 되어서 10여 년째 ‘진품명품’에 상품으로 협찬하고 있습니다. 실제 크기와 똑같이 만든 것부터 작은 크기까지 아주 다양해요. 울림통이 도자라 소리도 더 좋아요. 이렇게 도자악기를 만드는 곳은 저희 집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특별하죠.”



도자를 만드는 것 자체가 흙을 고르고 배합하는 것부터 참 까다로운 일인데 악기 모양의 도자는 더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남편 권 씨가 물레를 차며 도자를 빚어내면 가야금 줄, 장구 조임줄 등을 연결하는 작업은 아내 김 씨 몫이다.

2007년에는 ‘제8회 경기도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도자 장구로 대상을, 2008년에는 ‘제2회 이천도자기 공모전’에서 도자 가야금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공모전과 대회에서 입상, 다수의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등 도예가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부의 정성을 담아 탄생한 도자악기는 한국전통을 알리는 선물로 단연 인기만점이다. 이들의 작품은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고 여러 기업체에서도 제작 요청이 들어오는 등 입소문을 타며, 해외로도 많이 팔리고 있다.



“언제는 장구 선물을 받은 ‘뿌리패예술단’의 초대로 눈앞에서 국악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저희가 만든 장구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소리도 맑고 좋았어요. 한눈 팔지 않고 도자만 만들어온 보람을 많이 느꼈죠.”



-. 두 분은 도자기로 맺은 인연이라고요.

“시아버님이 도예가셨어요. 어린 시절 남편의 놀이터는 언제나 작업장이었죠. 그때부터 어깨너머로 공예를 배웠고 자연히 그 길을 이어왔어요. 도자기에 원래 관심이 많던 저는 서울과 이천을 오가며 도자공예를 배웠는데 그때 남편을 만났죠.(웃음)”



-. 부부의 손길이 ‘함께’ 닿은 작품이라 더 의미 있네요.

“오랜 세월 작품을 만들다 보니 다른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의견을 주고받아요. 그렇게 탄생한 게 ‘덧붙임 기법’을 활용한 도자였죠. 저희 부부가 추구하는 도자로서 가져야 할 미덕과 콘셉트는 ‘한국 전통을 살린 도자’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다양한 도자를 눈여겨봐 주는 분들이 있는 게 기뻐요. 생활자기를 구매하러 전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다양한 전시작품에 매료되어 ‘다른 전시장의 도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며 좋은 의견을 주기도 하고, 구입하고 싶다며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분도 꽤 있습니다.”



-.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고요.

“처음부터 악기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생활자기만 만들었죠. 당시 도자기 경기는 좋았지만 워낙 장인이 많아 아무리 해도 힘만 들고 돈은 모이지 않더라고요. 당연히 생활이 기울었습니다. 남들이 2~3개 디자인을 만들 때 남편은 10개가 넘는 디자인을 만들었어요. 자연히 불량률도 높았죠.”



경제적으로 힘들던 그때,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과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남편 권 씨가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은 것. 그대로 둔다면 점점 척추가 굳어지는 병이었다. 앉아서 물레를 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통이 심할 땐 한 발을 앞으로 내딛기도 벅찼다. 대를 이어온 공예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도자를 만들지 않고는 생활을 지탱하기가 어려웠기에 이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때 이들을 잡아준 건 ‘신심(信心)’이었다.



-. 발상을 전환한 게 ‘신의 한 수’였네요.

“똑같은 생활자기를 만들어서는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때 지인의 권유로 장구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당장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방방곡곡 우리 장구가 널리 알려지도록 기원한 그대로 우연한 기회에 TV 출연도 하게 되면서 점점 경제가 풀리기 시작했어요. 부자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무작정 공장을 찾으러 다닌 적도, 장구에 필요한 가죽을 잔뜩 사뒀다가 장마철 곰팡이로 다 버려야 했던 적도 있어요.”



남편 권 씨는 이렇게 덧붙인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어떻게라도 움직이려고 애쓴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가마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힘들었기에 힘듦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무너지지 말자고 거푸거푸 다짐하며 걸어온 도예의 길은 어느새 세계로 이어지며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권 씨가 그랬듯 첫째 권혁재(이천권 男그룹장) 씨는 도예가를 꿈꾸며 도예고등학교를 졸업, 부모님의 길을 잇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고, 둘째 권혁준(이천권 男그룹장) 씨도 운영을 돕고 있다. 전통을 살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알리기까지 고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에 대를 잇겠다는 아들이 마음이 쓰이면서도 대견하다고.





도자로 만든 장구와 가야금. 부부 만의 차별화된 대표 작품이다.



-. 지금도 가마를 열 때면 설레나요.

“손에서 흙을 놓지 못하는 일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언제나 즐겁고 설렙니다. 흙을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바쁜 일상을 벗어나 흙을 빚으며 힐링할 수 있는 도예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흙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이 도자를 보며 삶의 뿌리를 찾길 소망합니다. 전통 도자를 맥으로 한 작품을 꾸준히 연구해 아들에게 잘 물려주고 싶어요.”



흙이 잔뜩 밴 부부의 두 손은 도자와 함께 묵묵히 걸어온 세월이 담겨있다. 그 세월의 가치에 행복을 더해 빚어낼 작품을 위해 권 씨 부부의 물레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이천권 장년부원 ·지구부인부장






강혜진(hjkang@) | 화광신문 : 19/07/05 13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