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정희 음악교사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행복한 학교 만들고 싶어요!”



 



“교사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 모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라는 점을 확신합니다.

아이들 개개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장점을 발견해 재능을 발굴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더 가치있고 행복한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열악’한 예체능 교육 환경을 ‘열정’으로 바꿔 나가는 이정희 씨. 그가 진행하는 음악 수업은 언제나 자진모리 장단 만큼이나 신명난다.



“어머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이 대사를 기억하는가? 최근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을 들추는 드라마 한 편이 인기리에 종영했다. ‘교육 스릴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이처럼 입시 결과가 하나의 성적표이자 이름표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 교육계. 이 가운데서 일찌감치 신선한 반기를 들던 이가 있다. 성적보다는 개개인의 성향을, 입시보다는 꿈을 보듬는 교사, 이정희 씨를 만나 ‘창가(創價)교육 실현’이라는 사명감으로 쌓아 올린 그만의 캐슬(Castle)을 엿봤다.



―. 이름도 무서운 ‘학주’라고 들었습니다.

“‘학주(학생주임) 떴다!’ 한마디에 벌벌 떠는 시대가 있었죠. 요즘은 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명칭도 ‘생활지도교사’로 바뀐 걸요. 물론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맡는다는 사명에는 차이가 없지만, 잘못을 잡아내는 상하관계에서 잘잘못을 잡아주는 협력관계로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 ‘생활지도교사’는 가장 기피하는 보직이라 들었는데, 기꺼이 맡으셨다고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제가 하겠다고 했죠. 물론 만만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등교부터 하교까지 생활 전반에 대한 지도는 물론, 학생복지위원회와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 등을 책임지다 보면 바람 잘 날 없거든요. 그러나 저는 늘 가장 어려운 곳을 직접 찾아가시던 스승의 모습을 보고 배웠잖아요. ‘음지의 노고는 긍지’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 교사가 천직처럼 보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소년소녀부 담당을 맡았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좌담회와 부원회를 진행하며 쌓은 내공이 보통이 아닙니다. 제가 진행하는 좌담회를 보시던 부모님이 ‘너 교사하면 되겠다’고 무릎을 ‘탁’ 치셨다니까요. 이렇듯 교사로서의 30년 경력 위에 미래부 담당 경력까지 더해지니, 아이들 마음을 끌어내는 데는 도가 텄죠.”



그가 신심(信心)을 만난 건 초등학교 5학년. 병으로 남은 생을 헤아리던 어머니가 불법(佛法)으로 소생의 빛을 더할 때다. 그즈음 담당의 초대로 소년소녀부 좌담회에 초대받았고, 그곳에서 들은 학회가 ‘인간혁명의 노래’가 전환점이 됐다. 이 씨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금동아줄을 발견한 기분’이었단다. 이후 소년소녀부 담당자라는 사명감으로 교학 공부에 집중, 본인이 터득한 신심의 힘과 가치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사’라는 방향을 잡았다. 거기에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접목해 ‘음악교사’를 향한 도전을 시작.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제1기생으로 졸업하며,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잘하는 일의 출발점에 섰다.



―. 기대와 달리 첫 발령지부터 쉽지 않았다고요.

“첫 발령지가 특수학교였습니다. 지능지수가 30~50밖에 되지 않는 장애 학생을 마주해야 했는데, 스물세살의 신출내기 교사로서 꽤 버거웠죠.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하루, 일순 저와 아이들이 과거세(過去世)부터 이어진 숙연(宿緣)에 의해 만나게 됐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연(緣)이 부모와 자식 관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요. 그때 다짐했죠. ‘아이들을 절대 멸시하지 않겠다.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 안겠다’라고요. 그러자 아이들도 제 변화를 생명으로 느끼는 건지, 점차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그 변화에 힘입어 기악합주단을 꾸렸습니다. 아이들 손가락 하나하나 잡고 누르며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연습해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건 교사로서 느낀 첫 보람이자 훈장이 됐죠. 전근 발령 전까지 4년을 근무했는데요. 특수교사보다 더 아이들을 잘 돌본다는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 다음 근무지는 일반 학교였다고요. 비(非)장애 학생들은 수월하던가요?

“더 만만하지 않았죠.(웃음) 드디어 내가 배운 것을 마음껏 펼친다는 기대를 안고 갔는데, 웬걸 서울 내 꼴등 학교였습니다. 글쎄 ‘고입 연합 모의고사’ 음악 과목 서울 평균이 5점인데, 우리 학교는 2점 대인 거 있죠. 이후 학업에 관심을 끌 방안을 고민했고,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저만의 학습 계획을 세웠죠. 3학년 750명을 대상으로 과제를 주고 매주 노트를 걷어 전원에게 피드백을 줬습니다. 격려와 칭찬, 응원의 메시지도 꼭 기재해서요. 그러자 그해 9월 모의고사에서 서울시 2등이라는 기적이 뒤따르더라고요.”



―. 근무했던 학교마다 역사를 쓰셨다고요.

“제가 뭐든 ‘적당히’ 하는 성격이 못돼요.(웃음) 더욱이 교육 현장 제일선에서 창가교육을 실현한다는 사명이 있는데, 허투루 할 수 있나요. 역사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임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면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는 수업을 할까’ ‘무엇을 했을 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고민과 연구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2009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창의적체험부장’ 역임 시, ‘제자사랑! 학습 멘토링’이라는 프로그램을 연구·개발, 기초학력 부진 학생 비율을 11%에서 1%대로 감소시키며, 교육청에서 우수 사례로도 발표됐다. 2012년에는 이 씨가 구상한 ‘7클래스(Class) 7컬러(Color), 레인보우 갈라 뮤지컬’ 사업이 실현됐다. 3학년 7개 학급을 대상으로 학급별 뮤지컬을 기획해 큰 호응을 얻으며 공중파 뉴스에 모범 사례로 소개가 됐다고. 이외에도 ‘학급 뮤지컬 발표회’ ‘자유학기제 음악발표회’ 등 국·영·수 중심의 교육 분위기 속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활성화하는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꿈을 찾아가는 학생들도 늘어났다고.



―. 이쯤 되니 인생 교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가지 확신하는 건 아이들 모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人材)’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 개개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장점을 발견해 재능을 발굴하는 거 아닐까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더 가치있고 행복한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 2017년은 유독 더 특별한 해라고요.

“당시 두 자녀의 대학 입시와 개인적인 연구발표, 또 조직 활성화 등 도전 과제가 많았어요. 모두 승리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지만, 신심이 있었기에 무엇 하나 물러서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음악 시간에 진행했던 진로 교육 실천 사례 연구가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에서 개최한 ‘실천사례연구발표회’ 보고에서 유일한 1등급을 받을 수 있었고, 두 딸도 원하던 학교에 합격함과 동시에 이듬해 조직 내 지구 분할까지 이룰 수 있었습니다.”



―. 명예퇴직하는 교사가 늘어나는 현실이지만, ‘정년까지 아직 10년이나 남았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사실 그 분위기 속에서 저도 명퇴를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기원 끝에 정년까지 물러섬 없이 도전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정하며,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저만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교권이 추락하며 교사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겨나는 요즘인데요.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학생들도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에 연륜이 쌓인 선배 교사로서 후배 교사들이 즐겁게 자아실현 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연구해, 학교라는 공동체에 있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끔 기여하겠습니다.”

·서초권 지부副부인부장






전다혜(dhjeon@) | 화광신문 : 19/03/22 12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