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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김영달 수제 왕만두 전문점 운영

“이건 만두혁명!” 40여 년 진심과 정성으로 빚은 ‘진짜의 맛’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만두 좀 먹어봤다’는 분들이 찾아 주세요. 그러면 꼭 맛 평가나 조언을 해주곤 하는데요.

-제 경애가 넓어지니 한마디 한마디가 감사하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는 ‘모두가 맛 스승’ 이라는 마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손님 들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죠.”





값어치 있는 만두를 만들고 싶다는 김영달(오른쪽) 씨. 만두피와 속처럼 찰떡궁합을 이루는 아내 고재윤(춘천권 지구副부인부장) 씨와 오늘도 쫀득한 행복을 빚는다.



서기 1422년. ‘세종실록(世宗實錄)’ 4년 기록에, 태조의 제사를 지내던 세종대왕이 명한다. ‘이것’은 참석자에게 대접하지 말라고. 이렇게도 기록한다.

“‘이것’은 비싸고 귀한 음식이니 제사 지낼 때나 특별히 만들어야 한다.”

더 거슬러 가보자. 서기 1343년, 고려 충혜왕 4년 때의 일이다. 그해 10월 어떤 자가 궁궐 주방에 침입해 ‘이것’을 훔쳤고, 사실을 알게 된 충혜왕은 도적질한 그자에게 죽음을 명했다는데.





사대부(士大夫)도 함부로 먹지 못했다는 귀한 음식. 바로 만두다. 그랬던 만두가 세월이 지나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찾는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만두가 품은 정성이 변한 것은 아니라는데. ‘세 가지 보물을 담은 음식’이라는 고대의 표현 그대로 만두에 노력과 건강, 그리고 꿈까지 담은 이가 있다. 춘천시에서 ‘王만두’ 간판을 40여 년 내걸고, 인생을 빚어 온 김영달 씨와 맛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 맛보니, 닭갈비는 생각이 안 날 만도 하네요.

“춘천엔 닭갈비만 유명한 줄 아셨죠? 우리 만두도 꽤 유명합니다.(웃음)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어 본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꼭 잊지 않고 다시 찾더라고요. 그 덕에 춘천과 강원도 일대는 물론, 수도권에서 일부러 방문하는 고객도 꽤 되고요.”



 



괜한 너스레가 아니다. 취재차 방문한 11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가게 안이 손님들의 온기로 채워진다. 머지않아 33m²(10평) 정도의 작은 가게가 금세 차고, 여기저기서 주문 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여기 쫄면 2개에 찐만두 두 판이요.”

“찐만두 두 판, 튀김만두 두 판 주세요.”

특이점이 있다. 각 식사메뉴 하나에 만두 한 판을 시키는 것과 달리, 기본 식사 외에도 만두 ‘1인 1판’이 시작이다. 이후 추가 주문은 당연지사, 어떤 이는 홀로 여덟 판까지 해치운다고. 그뿐 아니라 포털사이트에도 ‘만두 때문에 춘천을 다시 가고 싶을 지경’ ‘40년 동안 맛본 세계 만두 중 최고로 맛있는 집’ ‘내게 춘천 최고의 맛집은 왕만두’ ‘미식 토크쇼 프로그램은 이런 곳을 소개하라!’ 등 후기가 끊이지 않는다.



 



―. 오시는 분마다 ‘인생 만두’라는 극찬을 하시던데요. 특별한 비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식상하겠지만, 개운하고 담백한 맛을 내려고 노력하는 거 외에 이렇다 할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고집하는 건 있어요. 만두피와 소는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는 것과 최상품의 국내산 재료만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만두는 주문이 들어오는 그때그때 삶는 것입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노력이 정성으로 모여 특별한 맛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 춘천에선 ‘王만두’가 첫 만두 전문점이라고요.

“1979년, 누님이 춘천시청 앞에 ‘王만두’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만두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춘천엔 없었죠. 간장 종지를 건네면, ‘이게 뭐냐’는 물음이 돌아올 정도로 만두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대박’을 쳤고요. 당시 춘천에서 안 먹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 호기심으로 찾은 손님을 단골로 만들기까지 남모를 고투도 많았겠네요.

“만두 빚는 걸 어깨너머로배울 때도, 저만의 맛을 찾기 위해 플라스틱 통 30개에 만두소를 버무릴 때도, 이후 누님으로부터 가게를 일임 받은 때도 쉽지만은 않았죠. 아니 순간순간이 포기하고 싶은 무명(無明)과의 다툼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고객들이 건네는 ‘맛있다’는 인사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고요. 그 고투의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건강하고 맛있는 만두를 제공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 그 노력과 긴 세월만큼이나 잊지 못할 고객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게와 역사를 함께한 단골 한분 한분이 생각나는데요. 만둣국을 거의 다 먹고선, 머리카락을 뽑아 넣더니 새로운 만둣국을 달라고 하는 청년도 떠오르고요.(웃음) 만두 때문에 수원에서 출발하니, 제발 가게 문을 닫지 마라는 애원의 전화를 준 손님도 생각이 나네요. 아, 그것보다 ‘王만두’의 영원한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83년 5월, 상하이로 향하던 중국 민항 여객기가 춘천에 불시착했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인 탑승객 100여 명이 춘천에서 하루 머물게 됐지만, 긴장감이 감돌던 한중(韓中) 관계 영향으로 식사를 거절하는 사태가 뒤따른다. 그때, 화교협회장이 기지를 발휘해 주문한 음식이 김 씨네 ‘王만두’였다고. 그렇게 새벽부터 만두 80인분을 만들어 숙소로 배달 간 기억이 생생하다는 그. 다행히 따끈한 만두에 중국인들의 얼어붙은 빗장이 풀렸고, 이 사건은 이후 한중수교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이 일화는 당시 유명 일간지의 칼럼과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에도 소개가 됐다.



“후일담입니다만, 수년 후에 전화를 받았어요. 1983년에 춘천에 머물렀던 승객 한 명이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간 후 공무원이 된 이분이 춘천시와 교류를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상황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시 먹었던 만두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만두를 한 번 더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데,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누군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했다는 감사함 때문에요.”



 



―. 신심 덕분에 만두에도 변화가 생겼다면서요.

“쉽게 말해 ‘만두혁명’이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던 제가, 신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타인의 목소리도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만두를 만드는데도 아내와 손님들의 조언을 조금씩 반영했는데요. 확실히 맛이 더 풍부해지더라고요. 그 덕에 지금도 ‘누가 먹어도 맛있는 만두’의 맛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중이고요.”



 



―. 그 과정에서 ‘맛’ 스승도 만나셨다고요.

“손님들입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만두 좀 먹어봤다’는 분들이 찾아 주세요. 그러면 꼭 맛 평가나 조언을 해주곤 하는데요. 예전엔 그런 말들이 고까웠는데, 제 경애가 넓어지니 한마디 한마디가 감사하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는 ‘모두가 맛 스승’이라는 마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손님들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죠.”



 



―. 방송 출연을 거절하셨다던데, 이유가 있나요?

“근래 손님들에게서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 만두 오래오래 먹고 싶어요. 사장님 부디 건강하세요’라고요. 제게는 손님들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최고의 인정이자 훈장입니다. 더군다나 맛을 완성하는 것엔 한계가 없기에, 제가 최고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앞으로도 ‘진짜의 맛’을 내기 위해 손님을 스승 삼아 더욱 노력할 계획입니다.”



 



―. 빚고 싶은 꿈이 더 있다고요.

“예순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늘 ‘저는 마흔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아직 바꿔내고 싶은 인간혁명의 과제와 이루고 싶은 만두혁명의 미래가 남았거든요. 마흔은 청춘으로 닦아 놓은 길을 열어가는 나이잖아요. 가정에서는 끊임없이 인간혁명에 도전해 누님과 아내, 그리고 두 딸과 다져 놓은 행복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사회에서는 기술 전수나 후계 육성 등으로 더욱더 실증을 내 스승을 선양하고 학회를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실로 ‘귀하고 값진’ 음식이 맞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만두 하나에 헤아릴 수 없는 진심과 노력, 정성이라는 육즙이 가득 담겨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지금도‘행복’이라는 반죽으로 ‘진짜의 맛’을 빚기 위해 노력하는 김영달 씨. 그의 ‘피’ 터지는 도전 뒤로 더 건강한 만두, 더 맛있는 만두, 더 행복한 만두가 쪄지길 바란다.



 



· 춘천권 지부장



전다혜(dhjeon@) | 화광신문 : 18/11/30 12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