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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교학

 

  • [어본존] - 어본존관 수지즉관심

  • 관리자

  •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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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즉관심

 

니치렌 대성인이 출현하시기 이전에는 법화경의 법리를 기본으로 하여 명상에 잠겨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보는 것이 성불을 위한 하나의 수행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명상 수행을 ‘관심’이라고 부릅니다. 천태대사는 자기 내면의 마음을 살펴봄으로써 그 마음에 십계가 호구되고 삼천의 제법, 즉 모든 현상, 작용이 구비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는 ‘관심의 수행’을 설했습니다. 그를 위해 ‘관념관법의 명상’ 같은 수행을 설했지만 실제로 보면 뛰어난 능력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아주 힘든 수행이었습니다. 게다가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쇠퇴하는 말법의 중생이 이처럼 힘든 수행을 견디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본존‘수지’가 성불을 위한 수행
그에 반해 니치렌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을 수지(신수)하고 제목을 봉창하는 것이 즉 관심이라고 설하셨습니다. 〈관심의 본존초〉에서는 “석존의 인행과덕의 이법은 묘호렌게쿄의 오자에 구족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를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어서 246쪽)고 설합니다. 석존이 성불을 위해 쌓은 수행(인행)과 그로 인해 얻게 된 공덕(과덕)이 모두 ‘묘호렌게쿄의 오자’, 즉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에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법의 중생은 이 어본존을 수지함으로써 석존이 수행으로 쌓은 인의 공덕과 불과의 공덕 모두 물려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이처럼 대성인 불법에서는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을 수지하는 것이 그대로 성불의 근본 원인의 수행, 즉 관심이 됩니다. 이것을 ‘수지즉관심’이라고 하며 어본존을 ‘관심의 본존’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성불을 위한 수행은 명상의 수행이 아니라 어본존을 수지(신수)하고 제목을 봉창하는 일입니다.
말법의 관심이란, 즉 어본존에 대한 신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심의 본존’은 ‘신심의 본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치칸 상인은 “수지란 바르게 신심하고 봉창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수지’는 어본존을 믿고 창제에 면려하는 일입니다. 또 ‘창제’도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권해 봉창하도록 하는 자행화타에 걸친 창제여야 한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즉 진정한 수지는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신심’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성인은 어본존을 “법화홍통의 기치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어서 1243쪽)고 말씀하듯이, 광선유포를 위해, 민중구제를 위해 어본존을 도현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