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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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 공양!
교학관리자
2007.12.11
1,816
안녕하십니까? 교학 담당자입니다.
먼저,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질문해 주신 세부사항은 현장의 간부님께 지도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내용은 공양에 관련한 교학적인 내용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진심의 공양, 숙명을 전환한다! ***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의 제자단나가 되심은 그 공덕을 부처의 지혜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어서 1359쪽)
말법(末法)에 대성인을 존경하고 공양 드리며 문하로서 광포에 힘쓰는 그 공덕은 부처의 광대(廣大)한 지혜로도 헤아릴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기 쉬우므로 자칫하면 올바른 실천을 게을리하기 쉽다.
<니이케어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어쩌다가 인간으로 태어날 때에는 명문명리(名聞名利)의 바람은 심하여 불도수행(佛道修行)의 등불은 꺼지기 쉽도다. 무익(無益)한 일에는 재보(財寶)를 다 써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불법승(佛法僧)에게 약간의 공양을 하는 데에는 이를 귀찮게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니로다. 지옥의 사자(使者)가 분발하는 것이니 촌선척마(寸善尺魔)란 이것이니라.”(어서 440쪽)
범부는 세간의 풍조에 끌려 자칫 낭비를 하기 쉬워서 공양할 마음이 생기지 않기 쉽다고 지적하시고, 그것은 지옥의 사자가 다투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교시하신다.
“후세(後世)를 원한다면 저 설산동자와 같이 함이 바람직합니다. 참으로 자신이 가난하여 보시할 보물이 없으면, 자기 신명을 버려서 불법(佛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신명을 버려서 불법을 배울지어다.”(어서 1386쪽)
설산동자는 반게를 듣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지금 법화경의 일경(一經)을 들을 수 있는 나는 무엇을 가지고 그 은덕(恩德)에 보답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다.
현재 우리에게 비춰 말한다면, 신앙을 권유 받아 본존님을 배견할 수 있었으며,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리를 배우고 공덕을 받아 숙명전환의 법을 알게 됐다.
이 은덕에 무엇으로 보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은 “내 몸이 빈곤해 보시할 보물이 없다면 신명을 바쳐, 기회가 있다면 신명을 버리고 불법을 배우시오”라고 말씀하신다.
신명을 바치는 것은 광선유포의 대사상에 매진하는 것이며, 신명을 버리고 불법을 배우는 것이란 실천 속에서 몸으로 불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니치우 상인은 <화의초(化儀抄)>에서 공양은 모두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공양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의 뜻을 본불님 대성인께 전해드리는 심중(心中)이 중요하니라. 일지반전(一紙半錢)도 백관천관(百貫千貫)도 다소(多少)간에 뜻을 나타낸 것이니라. 나타내는 바의 뜻은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니라.”
공양하는 뜻을 본불님 대성인께 전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공양이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모두 그 사람의 뜻이 나타남이기 때문에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니치코 상인은 이 <화의초>의 글에 입각해서 공양의 다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주석(注釋)하고 있다.
“나타난 공양 물질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은 대개는 능시(能施)의 사람의 부력(富力) 정도에 따르는 것이니, 일국일성(一國一城)의 대명(大名) 또는 부한(富限)의 이름을 떨친 장자(長者)에게는 백관천관을 바친다 해도 아직 뜻이 두터운 것이 아니로다. 천한 나무꾼이나 만안(灣岸)의 어부에게는 일지반전을 바쳐도 뜻이 박함이 아니로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 많은 공양을 해도 반드시 신심이 두텁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 가난한 사람이 조금밖에 공양할 수 없다 해도 그것으로 신심이 약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소중한 것은 그 신심의 뜻이 두터운가 엷은가이며 신심의 발로에서 나온 공양이다.
본존님에 대한 믿음을 한층 더 깊게 해 진심어린 공양정신으로 ‘광포부원가입신청’에 스스로 참가해 광포 추진을 도모하자.
<불법설화>수달장자
먼 옛날 천축의 사위국에 수달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일곱번 부귀해지고 일곱번 빈궁해졌는데, 마지막 일곱번째 가난은 3일이나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창고에는 쌀이 5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다섯되를 해공(解空)제일의 수보리에게, 또 신통제일의 목련에게, 다문제일의 아난에게 마지막은 석존에게 모두 공양하였던 바, 그때 이전부터 있던 3백70개의 창고에 재보가 본래와 같이 가득차서 오랫동안 장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쳐 염부제 안에서 견줄자가 없었다고 한다.
■ 관련 스피치
‘마음’으로 정해진다!
사업에도 인생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한 예로 그 옛날 석존의 문하로 제일가는 대부호인 수달장자 부부의 인생행로도 결코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은 인생만은 아니었다. 일곱 번이나 가난을 맛보고 일곱 번 큰 부자가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특히 일곱 번째 가난에 처했을 때는 모두 다 도망치고 단지 부부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런 구렁텅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승으로 우러러보는 석존에게 성심성의를 다하고 대법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려고 했다. 가장 괴로울 때, 가장 강하고 깊은 신심으로 공양을 한 덕분에 수달장자 부부는 상황이 바뀌어 인도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가 되었고 머지않아 유명한 기원정사를 짓는 대경애로 되었다. 신심의 ‘마음’이야말로 소중하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 수달장자를 거울로 삼아 만사를 터득하세요”(어서 1574쪽, 통해)라고 가르치셨다.
<총현장회의(2002. 7. 26)>
먼저,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질문해 주신 세부사항은 현장의 간부님께 지도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내용은 공양에 관련한 교학적인 내용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진심의 공양, 숙명을 전환한다! ***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의 제자단나가 되심은 그 공덕을 부처의 지혜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어서 1359쪽)
말법(末法)에 대성인을 존경하고 공양 드리며 문하로서 광포에 힘쓰는 그 공덕은 부처의 광대(廣大)한 지혜로도 헤아릴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기 쉬우므로 자칫하면 올바른 실천을 게을리하기 쉽다.
<니이케어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어쩌다가 인간으로 태어날 때에는 명문명리(名聞名利)의 바람은 심하여 불도수행(佛道修行)의 등불은 꺼지기 쉽도다. 무익(無益)한 일에는 재보(財寶)를 다 써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불법승(佛法僧)에게 약간의 공양을 하는 데에는 이를 귀찮게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니로다. 지옥의 사자(使者)가 분발하는 것이니 촌선척마(寸善尺魔)란 이것이니라.”(어서 440쪽)
범부는 세간의 풍조에 끌려 자칫 낭비를 하기 쉬워서 공양할 마음이 생기지 않기 쉽다고 지적하시고, 그것은 지옥의 사자가 다투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교시하신다.
“후세(後世)를 원한다면 저 설산동자와 같이 함이 바람직합니다. 참으로 자신이 가난하여 보시할 보물이 없으면, 자기 신명을 버려서 불법(佛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신명을 버려서 불법을 배울지어다.”(어서 1386쪽)
설산동자는 반게를 듣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지금 법화경의 일경(一經)을 들을 수 있는 나는 무엇을 가지고 그 은덕(恩德)에 보답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다.
현재 우리에게 비춰 말한다면, 신앙을 권유 받아 본존님을 배견할 수 있었으며,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리를 배우고 공덕을 받아 숙명전환의 법을 알게 됐다.
이 은덕에 무엇으로 보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은 “내 몸이 빈곤해 보시할 보물이 없다면 신명을 바쳐, 기회가 있다면 신명을 버리고 불법을 배우시오”라고 말씀하신다.
신명을 바치는 것은 광선유포의 대사상에 매진하는 것이며, 신명을 버리고 불법을 배우는 것이란 실천 속에서 몸으로 불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니치우 상인은 <화의초(化儀抄)>에서 공양은 모두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공양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의 뜻을 본불님 대성인께 전해드리는 심중(心中)이 중요하니라. 일지반전(一紙半錢)도 백관천관(百貫千貫)도 다소(多少)간에 뜻을 나타낸 것이니라. 나타내는 바의 뜻은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니라.”
공양하는 뜻을 본불님 대성인께 전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공양이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모두 그 사람의 뜻이 나타남이기 때문에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니치코 상인은 이 <화의초>의 글에 입각해서 공양의 다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주석(注釋)하고 있다.
“나타난 공양 물질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은 대개는 능시(能施)의 사람의 부력(富力) 정도에 따르는 것이니, 일국일성(一國一城)의 대명(大名) 또는 부한(富限)의 이름을 떨친 장자(長者)에게는 백관천관을 바친다 해도 아직 뜻이 두터운 것이 아니로다. 천한 나무꾼이나 만안(灣岸)의 어부에게는 일지반전을 바쳐도 뜻이 박함이 아니로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 많은 공양을 해도 반드시 신심이 두텁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 가난한 사람이 조금밖에 공양할 수 없다 해도 그것으로 신심이 약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소중한 것은 그 신심의 뜻이 두터운가 엷은가이며 신심의 발로에서 나온 공양이다.
본존님에 대한 믿음을 한층 더 깊게 해 진심어린 공양정신으로 ‘광포부원가입신청’에 스스로 참가해 광포 추진을 도모하자.
<불법설화>수달장자
먼 옛날 천축의 사위국에 수달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일곱번 부귀해지고 일곱번 빈궁해졌는데, 마지막 일곱번째 가난은 3일이나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창고에는 쌀이 5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다섯되를 해공(解空)제일의 수보리에게, 또 신통제일의 목련에게, 다문제일의 아난에게 마지막은 석존에게 모두 공양하였던 바, 그때 이전부터 있던 3백70개의 창고에 재보가 본래와 같이 가득차서 오랫동안 장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쳐 염부제 안에서 견줄자가 없었다고 한다.
■ 관련 스피치
‘마음’으로 정해진다!
사업에도 인생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한 예로 그 옛날 석존의 문하로 제일가는 대부호인 수달장자 부부의 인생행로도 결코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은 인생만은 아니었다. 일곱 번이나 가난을 맛보고 일곱 번 큰 부자가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특히 일곱 번째 가난에 처했을 때는 모두 다 도망치고 단지 부부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런 구렁텅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승으로 우러러보는 석존에게 성심성의를 다하고 대법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려고 했다. 가장 괴로울 때, 가장 강하고 깊은 신심으로 공양을 한 덕분에 수달장자 부부는 상황이 바뀌어 인도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가 되었고 머지않아 유명한 기원정사를 짓는 대경애로 되었다. 신심의 ‘마음’이야말로 소중하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 수달장자를 거울로 삼아 만사를 터득하세요”(어서 1574쪽, 통해)라고 가르치셨다.
<총현장회의(2002.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