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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무관심(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무기력(무사안일)이 평화를 무너뜨린다
허경
2016-08-10
3,427
무관심(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무기력(무사안일)이 평화를 무너뜨린다
‘서로 돕는’ 삶의 자세가 소중
이케다 SGI 회장 - 평화란 조용하고 태평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악’과 감연히 투쟁한다. 비폭력으로 투쟁한다 - 그 행동 속에만 ‘평화’가 있다. 아니,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과 투쟁하는 마음’ 없이 전원이 무기력, 무관심 -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풍조가 만연할 때, 그 사회는 이미 ‘전쟁’이라는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졌다고 해도 좋다.
세키 - ‘무관심’에 대해 간사이여자중등부 평화총회(2000년 1월)에서 효고의 나가타 구(區)에 사는 여중등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의 일입니다. 근처에 사는 학회원이 자신도 큰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계속 격려해주러 왔다고 합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이젠 괜찮이요!”라고. 그 모습에 감동한 그 여학생은 ‘타인의 괴로움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괴로워하는 사람을 돕고자 올해(2000년) 1월에는 중학교 취주악부가 개최한 ‘지진피해 자선콘서트’에도 출연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제가 앞장서서 ‘서로 돕는 마음’의 소중함을 전하겠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평화’를 향한 첫걸음입니다!”라고 결의했습니다.
사노 - 그럼 질문했던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먼저 ‘무기력’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왜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
이케다 SGI 회장 -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입니다. ‘사고방식’입니다. 무엇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치관’입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상대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었습니다. 냉정히 판단해 볼 때,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게다가 모두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대부분의 국민은 전쟁을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찬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노, 세키 -…….
이케다 SGI 회장 - 물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면도 있겠지만 나는 전쟁을 막지 못한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명령에는 절대로 복종하도록 철저히 교육받았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삶의 자세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교육칙어’(1890)에서 설하는 정신으로 전원이 학교에서 암송해야만 했습니다.
교육칙어가 발표되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생이던 사람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58세였습니다. 그 자녀들이 대개 20세에서 30세.
즉 아버지와 아들 2대-전쟁에 나가는 병사도, 내보내는 부모도 전부 ‘교육칙어’로 교육받았습니다.
양(羊)같은 국민
이케다 SGI 회장 -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자신들의 운명까지도 ‘높은 사람들이 정해 준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는 점이다. 남에게 맡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높은 사람’이 생각해 준다. 그것을 조용히 따라가면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그런 권위, 권력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양’ 같은 국민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노 - 무서운 일이군요! 지금도 똑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키 - 그런데 그 당시 국가 지도자 가운데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이케다 SGI 회장 - 지도자나 지식인 가운데는 “왜 무모한 전쟁을 하는가”라며 몹시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결국 ‘반대’를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강한 ‘반대’ 주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은 그런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사람’ 이지만 ‘비겁자’로 불린다.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는 ‘애국자’인데도 ‘매국노’라고 비난 받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까지도 험한 일을 당한다.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면 어떤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말 그대로 ‘목숨을 버릴 각오’가 필요했다.
신념을 관철한 마키구치, 도다 선생님
이케다 SGI 회장 - 그래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은 절대로 지지 않았다. 군국주의 시대에 ‘자기 신념’을 끝가지 관철하셨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양 천 마리보다 사자 한 마리가 강하다”고 말씀하셨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은 사자입니다. 중등부 여러분은 사자의 자식입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비웃음을 살지라도, 욕설을 듣더라도, 단 혼자라도 그 길을 나아간다. 그런 여러분이 되어 주세요. 그런 ‘확고한 개인’이 민주주의의 토대입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주인이므로 주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 정세에도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고 예리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도 더욱 공부해야 한다.
(희망의 대화)
무기력(무사안일)이 평화를 무너뜨린다
‘서로 돕는’ 삶의 자세가 소중
이케다 SGI 회장 - 평화란 조용하고 태평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악’과 감연히 투쟁한다. 비폭력으로 투쟁한다 - 그 행동 속에만 ‘평화’가 있다. 아니,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과 투쟁하는 마음’ 없이 전원이 무기력, 무관심 -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풍조가 만연할 때, 그 사회는 이미 ‘전쟁’이라는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졌다고 해도 좋다.
세키 - ‘무관심’에 대해 간사이여자중등부 평화총회(2000년 1월)에서 효고의 나가타 구(區)에 사는 여중등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의 일입니다. 근처에 사는 학회원이 자신도 큰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계속 격려해주러 왔다고 합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이젠 괜찮이요!”라고. 그 모습에 감동한 그 여학생은 ‘타인의 괴로움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괴로워하는 사람을 돕고자 올해(2000년) 1월에는 중학교 취주악부가 개최한 ‘지진피해 자선콘서트’에도 출연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제가 앞장서서 ‘서로 돕는 마음’의 소중함을 전하겠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평화’를 향한 첫걸음입니다!”라고 결의했습니다.
사노 - 그럼 질문했던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먼저 ‘무기력’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왜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
이케다 SGI 회장 -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입니다. ‘사고방식’입니다. 무엇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치관’입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상대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었습니다. 냉정히 판단해 볼 때,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게다가 모두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대부분의 국민은 전쟁을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찬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노, 세키 -…….
이케다 SGI 회장 - 물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면도 있겠지만 나는 전쟁을 막지 못한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명령에는 절대로 복종하도록 철저히 교육받았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삶의 자세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교육칙어’(1890)에서 설하는 정신으로 전원이 학교에서 암송해야만 했습니다.
교육칙어가 발표되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생이던 사람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58세였습니다. 그 자녀들이 대개 20세에서 30세.
즉 아버지와 아들 2대-전쟁에 나가는 병사도, 내보내는 부모도 전부 ‘교육칙어’로 교육받았습니다.
양(羊)같은 국민
이케다 SGI 회장 -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자신들의 운명까지도 ‘높은 사람들이 정해 준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는 점이다. 남에게 맡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높은 사람’이 생각해 준다. 그것을 조용히 따라가면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그런 권위, 권력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양’ 같은 국민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노 - 무서운 일이군요! 지금도 똑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키 - 그런데 그 당시 국가 지도자 가운데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이케다 SGI 회장 - 지도자나 지식인 가운데는 “왜 무모한 전쟁을 하는가”라며 몹시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결국 ‘반대’를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강한 ‘반대’ 주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은 그런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사람’ 이지만 ‘비겁자’로 불린다.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는 ‘애국자’인데도 ‘매국노’라고 비난 받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까지도 험한 일을 당한다.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면 어떤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말 그대로 ‘목숨을 버릴 각오’가 필요했다.
신념을 관철한 마키구치, 도다 선생님
이케다 SGI 회장 - 그래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은 절대로 지지 않았다. 군국주의 시대에 ‘자기 신념’을 끝가지 관철하셨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양 천 마리보다 사자 한 마리가 강하다”고 말씀하셨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은 사자입니다. 중등부 여러분은 사자의 자식입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비웃음을 살지라도, 욕설을 듣더라도, 단 혼자라도 그 길을 나아간다. 그런 여러분이 되어 주세요. 그런 ‘확고한 개인’이 민주주의의 토대입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주인이므로 주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 정세에도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고 예리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도 더욱 공부해야 한다.
(희망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