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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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 ..지면 안돼..
최준원
2004-07-20
9,326
서울제3방면 마포권 도화지역 신수지부 지부장 최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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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료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아주 진한 감명을
받으면서 읽었던 부인부 체험담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 작년쯤에 대부분의 멤버님들이 접하셨을줄로
생각되는 체험담입니다만, 혹시라도 못 읽어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고, 이미 읽어보셨던 분들은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더욱 새로운 감명으로 다가오리라 싶어서
다시 올려드립니다.
다시 읽어봐도 변함없이 진한 감동을 주는 체험담입니다.
60 세가 다 되신 나이에 지부부인부장으로 명랑하게
활동하고 계신 일본의 부인부 '혼마 노부코'님의
체험담인데, 타이틀이 "지면 안돼"로 되어 있습니다.
분량은 A4 용지로 5쪽 반 정도이며,
마치 제가 체험담을 발표하는 기분으로
아내 앞에서 크게 소리내어 읽어보았는데
15분 에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 보십시오.
별도의 화일로 받을실 분을 위해 따로
한글97 로 작성된 문서화일도 올렸습니다.
다운 받아놓으시고 언제든 필요하시면
인쇄하여 보시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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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안돼!"
-- 일본 와카야마(和歌山) 혼마 노부코-
저는 가족이나 지부의 여러분으로부터 「요시모토 상사(商社)의 부인부장」이라고 불리는 혼마 노부코라고 합니다. 현재 저는 보험회사의 간사이 영업과장으로 아홉 살 연하이며, 잘 생기고 착실하며 상냥한 남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지구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남편은 매주 토요일이면, 제가 일요일에 쉴 수 있도록 슈퍼마켓에서 장을 가득히 봐 가지고 와서 TV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제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전부 남편이 해 준 선물입니다. 남편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여성상은?」이라고 물으면 「야마다 이스즈, 쿄마치코, 혼마 노부코」라고 저에게 신경을 쓰는지, 연상의 이름을 댑니다. 저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렇게 자상한 남편과 결혼한지 올해로 20년째입니다.
지금의 남편에 대해서 최고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월급쟁이 남편이 네 명의 자식을 기르면서 100만엔(한국돈 → 1200만원 정도) 이상의 공양을 10년간 계속 해 온 사실입니다. 저도 올해가 7번째의 100만엔 공양이 됩니다.
지금 이렇게 행복한 저에게도 자살을 몇 번씩이나 생각했을 정도로 괴롭고 슬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나빠서 행복한 청춘시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스무살이 되던 해,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하고 결혼한 저의 남편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노름으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빚만 남겨놓고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고 말았습니다. 친정으로 돌아온 저는 그 때가 임신 3개월이였습니다. 그렇게 약한 몸으로 출산은 무리라고, 부모님도, 의사도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기가 생기면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산을 결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아는 분으로부터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확신있는 절복을 받아, 1960년 2월 12일 순수하게 입신했습니다.
근행과 창제를 면려하는 속에서 고통스럽던 심장발작도 없어지고, 얼굴이나 손발이 붓는 것도 없어지면서 임신 6개월이 되던 때 장녀를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본존님은 굉장하구나!" 여태까지 염불, 진언, 성장의 집, 크리스트교등 사람들이 좋다는 것은 뭐든지 해 온 저로서는 본존님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음 속으로 기원했던 남편의 주소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빚에 쫓겨 가짜 이름을 쓰면서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 숨어 있었습니다.
신심을 절대 반대하는 양친과 친척들이 모여, "이상한 신심을 하니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지금 당장 학회를 그만 두고, 그런 남자하고는 이혼해라" "부모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학회에 가서 먹여살려 달라고 해"라고 매일 협박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달빛에 본존님을 비춰보면서 딸을 끌어안고 마루 구석에서 아침까지 제목을 올리곤 했습니다. 절복을 해 주신 분이 "무엇이든지 지도를 받으세요."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2개월 된 딸을 등에 업고 간사이 본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지도를 해 주신 분이 시로키 지도장님이였습니다. 「남편과 헤어지는 것은 간단하지만, 당신은 아직 젊으니까 또 결혼을 하겠지요. 숙명전환을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더 나쁜 남편을 만날거예요.
남편이 있는 곳이 지옥이라도 그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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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료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아주 진한 감명을
받으면서 읽었던 부인부 체험담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 작년쯤에 대부분의 멤버님들이 접하셨을줄로
생각되는 체험담입니다만, 혹시라도 못 읽어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고, 이미 읽어보셨던 분들은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더욱 새로운 감명으로 다가오리라 싶어서
다시 올려드립니다.
다시 읽어봐도 변함없이 진한 감동을 주는 체험담입니다.
60 세가 다 되신 나이에 지부부인부장으로 명랑하게
활동하고 계신 일본의 부인부 '혼마 노부코'님의
체험담인데, 타이틀이 "지면 안돼"로 되어 있습니다.
분량은 A4 용지로 5쪽 반 정도이며,
마치 제가 체험담을 발표하는 기분으로
아내 앞에서 크게 소리내어 읽어보았는데
15분 에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 보십시오.
별도의 화일로 받을실 분을 위해 따로
한글97 로 작성된 문서화일도 올렸습니다.
다운 받아놓으시고 언제든 필요하시면
인쇄하여 보시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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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안돼!"
-- 일본 와카야마(和歌山) 혼마 노부코-
저는 가족이나 지부의 여러분으로부터 「요시모토 상사(商社)의 부인부장」이라고 불리는 혼마 노부코라고 합니다. 현재 저는 보험회사의 간사이 영업과장으로 아홉 살 연하이며, 잘 생기고 착실하며 상냥한 남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지구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남편은 매주 토요일이면, 제가 일요일에 쉴 수 있도록 슈퍼마켓에서 장을 가득히 봐 가지고 와서 TV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제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전부 남편이 해 준 선물입니다. 남편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여성상은?」이라고 물으면 「야마다 이스즈, 쿄마치코, 혼마 노부코」라고 저에게 신경을 쓰는지, 연상의 이름을 댑니다. 저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렇게 자상한 남편과 결혼한지 올해로 20년째입니다.
지금의 남편에 대해서 최고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월급쟁이 남편이 네 명의 자식을 기르면서 100만엔(한국돈 → 1200만원 정도) 이상의 공양을 10년간 계속 해 온 사실입니다. 저도 올해가 7번째의 100만엔 공양이 됩니다.
지금 이렇게 행복한 저에게도 자살을 몇 번씩이나 생각했을 정도로 괴롭고 슬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이 나빠서 행복한 청춘시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스무살이 되던 해, 행복하게 해 준다고 약속하고 결혼한 저의 남편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노름으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빚만 남겨놓고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고 말았습니다. 친정으로 돌아온 저는 그 때가 임신 3개월이였습니다. 그렇게 약한 몸으로 출산은 무리라고, 부모님도, 의사도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기가 생기면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산을 결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아는 분으로부터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확신있는 절복을 받아, 1960년 2월 12일 순수하게 입신했습니다.
근행과 창제를 면려하는 속에서 고통스럽던 심장발작도 없어지고, 얼굴이나 손발이 붓는 것도 없어지면서 임신 6개월이 되던 때 장녀를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본존님은 굉장하구나!" 여태까지 염불, 진언, 성장의 집, 크리스트교등 사람들이 좋다는 것은 뭐든지 해 온 저로서는 본존님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음 속으로 기원했던 남편의 주소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빚에 쫓겨 가짜 이름을 쓰면서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 숨어 있었습니다.
신심을 절대 반대하는 양친과 친척들이 모여, "이상한 신심을 하니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지금 당장 학회를 그만 두고, 그런 남자하고는 이혼해라" "부모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학회에 가서 먹여살려 달라고 해"라고 매일 협박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달빛에 본존님을 비춰보면서 딸을 끌어안고 마루 구석에서 아침까지 제목을 올리곤 했습니다. 절복을 해 주신 분이 "무엇이든지 지도를 받으세요."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2개월 된 딸을 등에 업고 간사이 본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지도를 해 주신 분이 시로키 지도장님이였습니다. 「남편과 헤어지는 것은 간단하지만, 당신은 아직 젊으니까 또 결혼을 하겠지요. 숙명전환을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더 나쁜 남편을 만날거예요.
남편이 있는 곳이 지옥이라도 그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