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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좌담회 어서 <소야전답서>(성불용심초) 2024년 8월 좌담회 어서 <소야전답서>(성불용심초)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6년 8월 3일, 대성인이 55세에 미노부에서 써서 시모우사 지방의 중심 문하인 소야 교신, 또는 그 가문의 누군가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대성인은 어서 첫머리에서 성불을 위한 길은 ‘경지(境智)의 이법(二法)’을 심득하는 데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경전에 씌어 있는 경지(境地) 즉 경애에는 깊고 얕음이 있으며, 거기에 담긴 지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법화경은 깊은 경지와 충만한 지혜를 설했기에, 경(境)과 지(智)가 합치해 즉신성불도 가능해집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에서 밝힌 ‘경지의 이법’이 구체적으로는 남묘호렌게쿄라고 제시하셨습니다.
이어서 성불을 위한 근본법, 다시 말해 불종인 묘법을 가르쳐준 ‘근원의 스승’을 잊으면 성불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추어 그릇된 스승은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승려들이 불법의 도리를 몰라 스승을 멸시하고 단나에게 아첨한다며, “법화경의 적을 보고도 책하지 않으면 무간지옥은 의심할 바 없다.” “방법을 책하지 않으면 성불을 원해도 이룰 수 없다.”고 엄하게 단언하셨습니다.
끝으로 법화경 경문 등을 인용해 ‘본종(本從)의 스승’을 따르는 것이 바로 성불을 위한 핵심이라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부처의 진의를 잊은 말법의 사람들을 훈계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당해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는 대자비로 어떠한 난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구제를 위해 싸우겠다고 결의하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이 법문을 니치렌이 설했기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유배를 당해 목숨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씨앗을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다.
[어구 해설]
<충언은 귀에 거슬림>은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심 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기에 충고를 받은 사람이 좋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포인트]
이 어문에는 니치렌 대성인이 어떠한 대난에도 물러서지 않는 대자비의 정신이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누가 근본의 스승인지 잊으면 성불의 길에서 어긋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해, 석존을 업신여기고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부처의 진의인 법화경을 설해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잘못 택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종파가 저지른 방법을 강하게 책했습니다.
그러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편견과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심하게 미움을 받고, ‘다쓰노구치법난’과 ‘사도유배’와 같은 목숨을 위협받는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대성인은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구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민중을 구하겠다는 어본불의 대자비로 가득한 생명이 용솟음치는 선언입니다.
대성인은 이렇게 불석식명으로 관철한 광포의 실천을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만인성불을 밝힌 하종의 실천을 비유하신 말입니다.
법화경의 진수인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원인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이 지닌 ‘마음의 밭’에 성불의 ‘씨앗’을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하면 상대의 생명에 있는 불성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의 환희를 말하면 벗의 생명에 ‘부처의 씨앗’이 반드시 심어진다.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우할 필요는 없다. 불종은 때를 초월해 행복의 꽃을 피워 화락의 정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묘법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다. 가장 존귀한 부처의 일에 긍지를 갖고, 한사람 한사람과 맺은 연을 소중히 키우자!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며 어본불에게 직결하는 불연의 확대를 현명하고 명랑하게!”
우리가 실천하는 불법대화야말로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착실한 한 걸음이고, 우정을 넓히는 존귀한 실천입니다. 진심과 끈기 있는 대화로 우리 지역에 ‘자타 함께 행복’을 확대합시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소야전답서>입니다.
이 어서는 1276년 8월 3일, 대성인이 55세에 미노부에서 써서 시모우사 지방의 중심 문하인 소야 교신, 또는 그 가문의 누군가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대성인은 어서 첫머리에서 성불을 위한 길은 ‘경지(境智)의 이법(二法)’을 심득하는 데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경전에 씌어 있는 경지(境地) 즉 경애에는 깊고 얕음이 있으며, 거기에 담긴 지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법화경은 깊은 경지와 충만한 지혜를 설했기에, 경(境)과 지(智)가 합치해 즉신성불도 가능해집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에서 밝힌 ‘경지의 이법’이 구체적으로는 남묘호렌게쿄라고 제시하셨습니다.
이어서 성불을 위한 근본법, 다시 말해 불종인 묘법을 가르쳐준 ‘근원의 스승’을 잊으면 성불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세간과 불법의 도리에 비추어 그릇된 스승은 버리고 올바른 스승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법의 승려들이 불법의 도리를 몰라 스승을 멸시하고 단나에게 아첨한다며, “법화경의 적을 보고도 책하지 않으면 무간지옥은 의심할 바 없다.” “방법을 책하지 않으면 성불을 원해도 이룰 수 없다.”고 엄하게 단언하셨습니다.
끝으로 법화경 경문 등을 인용해 ‘본종(本從)의 스승’을 따르는 것이 바로 성불을 위한 핵심이라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부처의 진의를 잊은 말법의 사람들을 훈계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당해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는 대자비로 어떠한 난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구제를 위해 싸우겠다고 결의하며 이 어서를 끝맺으셨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056쪽 13행 ~ 15행)
이 법문을 니치렌이 말하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림이 도리이기에 유죄되어 생명에도 미치었느니라.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이 법문을 니치렌이 설했기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유배를 당해 목숨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 법화경은 씨앗과 같고, 부처는 씨앗을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다.
[어구 해설]
<충언은 귀에 거슬림>은 공자의 언행 등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심 어린 충고는 결점이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기에 충고를 받은 사람이 좋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포인트]
이 어문에는 니치렌 대성인이 어떠한 대난에도 물러서지 않는 대자비의 정신이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누가 근본의 스승인지 잊으면 성불의 길에서 어긋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미타불이나 대일여래를 신봉해, 석존을 업신여기고 법화경을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이 법문’, 다시 말해 부처의 진의인 법화경을 설해 근본으로 삼아야 할 스승을 잘못 택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종파가 저지른 방법을 강하게 책했습니다.
그러므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도리대로, 편견과 사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심하게 미움을 받고, ‘다쓰노구치법난’과 ‘사도유배’와 같은 목숨을 위협받는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대성인은 “그러나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구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민중을 구하겠다는 어본불의 대자비로 가득한 생명이 용솟음치는 선언입니다.
대성인은 이렇게 불석식명으로 관철한 광포의 실천을 “법화경은 종자와 같고, 부처는 심는 사람과 같으며, 중생은 밭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만인성불을 밝힌 하종의 실천을 비유하신 말입니다.
법화경의 진수인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근원인 ‘불종’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심는 사람’이 되어 중생이 지닌 ‘마음의 밭’에 성불의 ‘씨앗’을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묘법을 말하면 상대의 생명에 있는 불성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의 환희를 말하면 벗의 생명에 ‘부처의 씨앗’이 반드시 심어진다.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우할 필요는 없다. 불종은 때를 초월해 행복의 꽃을 피워 화락의 정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묘법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다. 가장 존귀한 부처의 일에 긍지를 갖고, 한사람 한사람과 맺은 연을 소중히 키우자!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라며 어본불에게 직결하는 불연의 확대를 현명하고 명랑하게!”
우리가 실천하는 불법대화야말로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착실한 한 걸음이고, 우정을 넓히는 존귀한 실천입니다. 진심과 끈기 있는 대화로 우리 지역에 ‘자타 함께 행복’을 확대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