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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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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심 씨 - 춤사위에 깃든 광포 열정 환희·행복으로 승화!
김춘심 씨 - 춤사위에 깃든 광포 열정 환희・행복으로 승화!
・강서권 화곡지부 婦지구지도원

강서권 婦지도부로 구성한 무용팀서 10년째 활동
무용으로 피어난 금빛 인생 다시 태어나도 무용할 터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국SGI 강서문화회관은 매주 아리따운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된다.

한복의 고운 자태와 이와 어우러진 부드럽고 멋들어진 춤사위.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인생의 달인과 같은 환희 충만한 얼굴. 그야말로 노령에 핀 금빛 인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까지 10년째 활동하는 강서권 부인부 지도부의 ‘한국 고전 무용팀’ 중심자로서, 7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단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김춘심씨는 춤 사랑을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다시 태어나도, 또 다시 무용하고 있을 겁니다.”

김씨의 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춤사위가 취미나 흥미를 넘어 전문가 못지 않은 맵시를 지녔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학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춤으로 기쁨을 선사하고, 8년전에는 구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용대회에 팀이 나가 수상도 했다. 김씨 또한 그렇게 춤을 추며 인생의 참맛과 신심(信心)의 환희를 한껏 만끽한다.

또 평소 보이는 그 단아한 마음가짐과 몸가짐, 그리고 확고한 신심은 춤과 더불어 김씨를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한마디로 마음씨, 솜씨, 맵시를 다 갖추신 분이세요”라고 말하는 홍성림(화곡지부 부인부장)씨는 “학회 내 어르신으로서 언제나 조용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세요. 음식 솜씨도 소문이 자자하고 화광신문에 별미도 소개하셨어요. 무엇보다 부부가 보이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예절의 귀감이 될 뿐 아니라 지역사회 모범으로 꼽힌답니다”라고 덧붙인다.

또 민종임(지구부인부장)씨도 평소 지켜본 김씨에 대해 “오로지 신심 근본이세요. 회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싶으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시죠. 또 1%의 부족함도 없는 부부 간의 사랑은 언제나 저희들에게 진한 감동을 준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김씨가 처음 고전무용과 만난 것은 여고시절. 그 당시에는 무용이 너무나도 좋아 우리춤에 흠뻑 젖어 큰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오랜 세월 가슴 한켠에 늘 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안은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열정을 때때로 표현할 때가 있었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야유회 등에서 장기자랑을 할 때면 다른 사람들처럼 노래를 선보이기보다 언제나 감춰진 춤 자락을 펼쳐 보이곤 했다. 그때마다 터지는 사람들의 탄성은 한결같이 무용에 대한 열정을 매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그러다 김씨는 60세를 넘어 비로소 그 꿈을 크게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났다. 권 내에서 그의 춤 솜씨를 광포를 위해 써보라며 권 내 지도부로 구성한 무용팀이 결성된 것이다.

“그때가 1997년, 제 나이 64세 되던 해였어요. 어떻게 그날의 기쁨을 잊겠어요. 제게 있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날이었는데요. ‘광포를 위해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라는 마음으로 춤과 신심에 더욱 성의를 다했어요.”

비록 그 시작은 쉽지 않았어도 넘치는 기쁨과 열정으로 모든 곤란을 하나하나 극복했다. 60~70대 지도부에다 모두 춤은 처음이었기에 몸 따로 마음 따로 한 동작을 열 번 스무 번 반복을 거듭해야 조금 완성되는 정도였다. 도저히 못하겠다며 그만두는 지도부도 있었지만 김씨의 끊임없는 격려 속에서 신심과 춤, 생활과 건강에서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 후 건강이 좋지 않던 어느 지도부는 무용을 시작한 뒤 더욱 건강해졌고, 함께 가게를 하느라 아내의 춤 연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어느 장년부는 공연 초대를 받고 참석한 뒤 부인이 무용하는 내내 가슴 찡했다며 지금은 최고의 후원자로 바뀌었다.

또 스스로 음악 선정, 소품, 메이크업 준비뿐 아니라 춤 한동작 한동작을 고민하며 기원에 기원을 거듭해 만든 춤으로 공연을 성공해 내고 나면 “아!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고 자신의 가능성과 신심의 힘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본존님의 불력・법력에 더욱 보은하겠다는 결의, 무용으로 광포하는 사명자로서 긍지와 진지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97년 10월 첫 공연을 시작으로 늘 초심을 잊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며 춤사위에 힘쓰는 김씨와 지도부들은 이제 부채춤, 어우동, 꽃타령, 계절타령, 한강수타령, 화관무 등 팀내 프로그램까지 갖추었다. 이젠 음악이 흐르면 얼굴 표정, 손발 동작이 절로 나오는 실력꾼이 됐다.

1973년 친여동생의 3년에 걸친 권유에 시어머니와 같은 날 입회한 뒤 조금의 흔들림 없이 신심을 관철한 김씨는 학회 부인부로 단련 받으며 자신과 가정에 커다란 행복을 구축했다. 남편은 지금도 건강하게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2남1녀 역시 훌륭히 성장해 모두 가정을 꾸리고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 일로를 걷고 있다. 이중 딸은 어머니가 못다한 춤의 꿈을 이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무용가로 활동한다.

춤을 통한 환희와 행복을 모든 이와 나누고 싶다는 김씨의 잔잔한 미소는, 지금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인생의 꽃과도 같다.



<염지혜 서울제7 강서지국 통신원>



이상도(sdlee@hknews.co.kr) | 화광신문 : 07/11/23 758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