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덕산공방 대표·대구광역시 서각협회 수석부회장 남홍근씨
덕산공방 대표・대구광역시 서각협회 수석부회장 남홍근씨
・대구제4방면 중앙권장
전통서각, 사람이 근본되는 문화로 승화시킨다!
대구시에 있는 어느 포근하고 아담한 작업공간. 덕산공방이라 이름 붙인 이곳 사방의 벽은 수많은 글자로 장식되고, 남홍근(55)씨는 세심한 작업으로 비지땀을 흘린다.
“요즘은 전통의 맥을 잇는 곳조차 상업적 이윤만을 생각하는 큰 간판을 사용해 사람의 심성을 거칠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서각(書刻)을 생업으로 하면서 올해 6월 창립한 대구광역시 서각협회 수석부회장으로도 활동하는 남씨는 서각이 지닌 문화적 측면을 이렇게 얘기한다.
“획일화되고 화려한 간판은 사람의 마음을 삭막하게 합니다. 반면 사람의 정성이 깃든 서각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에 여유가 배어 나오게 하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남씨는 현재 대구 일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서각가로서, 그의 글을 새겨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문에 매일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남씨는 조금 늦은 나이에 서각에 몸담았다.
“1995년 무렵 큰 갈림길에 섰습니다. 안경업과 도장업을 같이 했는데, 안경업은 적성에 안 맞고 컴퓨터 도장이 도입되면서 업종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때 단호하게 전통서각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서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예보다 더 각광받을 것이고 예술의 한 분야로 일반 사람들도 선호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여 당시 대구에서 서예와 서각으로 명성이 높던 사람을 찾아 7개월을 배운 뒤 공방을 열었다. 그러나 서각에 대한 인식부족과 제작 특성상 인맥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는 현실에서 기나긴 고전(苦戰)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 성훈을 되뇌고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읽으며 창제에 도전했다.
오히려 자신을 더욱 계발하는 단련의 시간으로 삼아 서각에서 필수인 서예 실력을 더욱 높이고, 학회 활동도 성실히 실천해 회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희망을 전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날 무렵 그의 소문을 듣고 제법 큰 작품제작 의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이는 서각가로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의뢰인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요구하고 그 사항은 몇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그래도 남씨는 모든 의견에 귀 기울이며 정성과 열정을 다했다. 학회 활동에서 익힌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마음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그 노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져 그의 존재는 조금씩 입을 타고 넓혀졌다.
“서각 작품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인품도 함께 평가 받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만심을 갖는다면 의뢰인은 외면하고 맙니다.”
보통 문중이나 향교, 사당 등 전통을 중히 여기는 곳에서 제작문의가 들어오는 만큼 주문은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겸손함과 성실함,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다.
화려하거나 유별난 작품이 아니라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의뢰인이 가장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힘썼다.
그렇게 그의 성품과 실력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제작주문량이 밀려 있다.
전통서각을 주로 하는 그의 작품은 서원, 향교, 종친회 등에서 주로 주문하는데, 기문(記文)의 경우 작은 글씨로 한판에 5백~6백 자의 한자(漢字)를 새겨야 하는 만큼 그 작업은 오랜 집중력이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그 중 현판(懸板)은 가장 큰 보람을 준다고. 사당이나 향교 등 모든 건축과정이 끝난 뒤 마지막에 현판을 걸면서 비로소 건물은 이름을 갖기 때문이다.
또 가정에서 가훈을 새겨달라고 의뢰하기도 하는데, 액자 속 글은 한번 읽고 지나치기 쉽지만 서각은 보는 이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하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효과가 좋다는 이유에서다.
요즘은 실력 있는 글쓰기 솜씨를 한껏 살려 캘리그래퍼(예쁜 손 글씨)로도 활동한다. 그림을 그리는 듯한 붓글씨를 보고 출판, 광고, 인쇄업계에서 연락을 해 오는 것이다.
특히 그의 가슴 속에 남는 작품은 스승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새긴 일이다.
“청년시절부터 학회에서 단련받은 그대로, 학회에서도 전통서각에서도 사람이 근본이 되는 문화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원국 대구제4 대명지국 통신원>
서각이란 나무나 돌 등에 칼로 글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그 유래는 고대 갑골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우리나라의 경우 8세기경 세계최고(世界最古)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 팔만대장경, 절이나 정자 등의 현판과 주련(柱聯)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전통서각, 현대서각 등으로 나뉘어 예술이나 상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 | 화광신문 : 07/11/16 757호 발췌
덕산공방 대표・대구광역시 서각협회 수석부회장 남홍근씨
・대구제4방면 중앙권장
전통서각, 사람이 근본되는 문화로 승화시킨다!
대구시에 있는 어느 포근하고 아담한 작업공간. 덕산공방이라 이름 붙인 이곳 사방의 벽은 수많은 글자로 장식되고, 남홍근(55)씨는 세심한 작업으로 비지땀을 흘린다.
“요즘은 전통의 맥을 잇는 곳조차 상업적 이윤만을 생각하는 큰 간판을 사용해 사람의 심성을 거칠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서각(書刻)을 생업으로 하면서 올해 6월 창립한 대구광역시 서각협회 수석부회장으로도 활동하는 남씨는 서각이 지닌 문화적 측면을 이렇게 얘기한다.
“획일화되고 화려한 간판은 사람의 마음을 삭막하게 합니다. 반면 사람의 정성이 깃든 서각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에 여유가 배어 나오게 하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남씨는 현재 대구 일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서각가로서, 그의 글을 새겨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문에 매일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남씨는 조금 늦은 나이에 서각에 몸담았다.
“1995년 무렵 큰 갈림길에 섰습니다. 안경업과 도장업을 같이 했는데, 안경업은 적성에 안 맞고 컴퓨터 도장이 도입되면서 업종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때 단호하게 전통서각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서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예보다 더 각광받을 것이고 예술의 한 분야로 일반 사람들도 선호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여 당시 대구에서 서예와 서각으로 명성이 높던 사람을 찾아 7개월을 배운 뒤 공방을 열었다. 그러나 서각에 대한 인식부족과 제작 특성상 인맥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는 현실에서 기나긴 고전(苦戰)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 성훈을 되뇌고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읽으며 창제에 도전했다.
오히려 자신을 더욱 계발하는 단련의 시간으로 삼아 서각에서 필수인 서예 실력을 더욱 높이고, 학회 활동도 성실히 실천해 회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희망을 전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날 무렵 그의 소문을 듣고 제법 큰 작품제작 의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이는 서각가로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의뢰인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요구하고 그 사항은 몇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그래도 남씨는 모든 의견에 귀 기울이며 정성과 열정을 다했다. 학회 활동에서 익힌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마음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그 노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져 그의 존재는 조금씩 입을 타고 넓혀졌다.
“서각 작품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인품도 함께 평가 받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만심을 갖는다면 의뢰인은 외면하고 맙니다.”
보통 문중이나 향교, 사당 등 전통을 중히 여기는 곳에서 제작문의가 들어오는 만큼 주문은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겸손함과 성실함,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다.
화려하거나 유별난 작품이 아니라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의뢰인이 가장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힘썼다.
그렇게 그의 성품과 실력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제작주문량이 밀려 있다.
전통서각을 주로 하는 그의 작품은 서원, 향교, 종친회 등에서 주로 주문하는데, 기문(記文)의 경우 작은 글씨로 한판에 5백~6백 자의 한자(漢字)를 새겨야 하는 만큼 그 작업은 오랜 집중력이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그 중 현판(懸板)은 가장 큰 보람을 준다고. 사당이나 향교 등 모든 건축과정이 끝난 뒤 마지막에 현판을 걸면서 비로소 건물은 이름을 갖기 때문이다.
또 가정에서 가훈을 새겨달라고 의뢰하기도 하는데, 액자 속 글은 한번 읽고 지나치기 쉽지만 서각은 보는 이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하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효과가 좋다는 이유에서다.
요즘은 실력 있는 글쓰기 솜씨를 한껏 살려 캘리그래퍼(예쁜 손 글씨)로도 활동한다. 그림을 그리는 듯한 붓글씨를 보고 출판, 광고, 인쇄업계에서 연락을 해 오는 것이다.
특히 그의 가슴 속에 남는 작품은 스승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새긴 일이다.
“청년시절부터 학회에서 단련받은 그대로, 학회에서도 전통서각에서도 사람이 근본이 되는 문화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원국 대구제4 대명지국 통신원>
서각이란 나무나 돌 등에 칼로 글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그 유래는 고대 갑골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우리나라의 경우 8세기경 세계최고(世界最古)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 팔만대장경, 절이나 정자 등의 현판과 주련(柱聯)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전통서각, 현대서각 등으로 나뉘어 예술이나 상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 | 화광신문 : 07/11/16 75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