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샘표스페이스 책임 큐레이터 문예진씨
샘표스페이스 책임 큐레이터 문예진씨
・종로권 광화문지부 女지구리더

미술 대중화 선도로 인간사회 소통의 장 만든다!

재미있는 온라인 미술방송국 ‘닷라인’ 대표로 활동
“유망한 작가 발굴 지원! 평화로운 사회 만들고파”

최근 독특한 형식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미술방송국에 누리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어린이방송에 나올 법한 인형탈을 쓰고 등장하는 진행자며, 출연자와 나누는 입담도 가볍다 못해 유머스러울 정도. 그렇다고 내용없이 재미만을 추구하거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이 빠지는 일도 없다.

지금까지 정형화되고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좀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사람들을 미술 세계로 안내하는 미술방송국 ‘닷라인’(http://dot-line.tv)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는 일반인에게 어렵기만 한 미술을 좀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한 젊은 여성의 열정에 의해 탄생했다. ‘몰라’라는 예명으로 미술방송국 대표로 활동하면서, 현재 샘표스페이스 책임 큐레이터로 일하는 문예진씨다.

문예진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미술방송국 '닷라인'의 진행자이자 마스코트 격인 인형 '꼬맹이'와 함께. 재미있고 독특한 형식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하는 이 온라인 방송은 '모든 사람과 미술을 나누고 싶다'는 문예진씨의 열정에서 탄생했다.

“미술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철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더 쉽고 재미있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어요. 언젠가는 미술이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일상의 화두가 되길 희망하면서요.”

이렇게 일반인이 미술에 더욱 친근하면서도 또 깊이 다가서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술 전문가로서 역량이 바탕이 된다. 한편으로 문씨는 미술의 이러한 대중적인 면과 더불어 미술이 사회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진지한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힘은 매우 커 깊은 철학과 이념을 지닌 미술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뒤흔들고 인간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씨의 이러한 생각은 기획에서 전시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책임지고 학자 입장에서 수많은 작품을 연구하고 재해석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큐레이터로서 일하는 과정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해 말 샘표스페이스로 옮긴 뒤 몇 차례 연 전시회만 봐도 그 바탕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서 불거지는 갖가지 인간상을 표현한 ‘수상한 외줄타기’. 인간의 이면에 숨겨진 실상을 드러내는 ‘백조의 물밑작업’. 일상의 현실감을 세 가지 드라마로 표현한 ‘드라마 트루기’. 집단 속에서 존재 가치를 잃어가는 인간부재의 실상을 그려낸 ‘고의적 입장’.

때론 재미있고 흥미롭게, 때론 진지하고 강렬하게 다채로운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가서지만, 그 숱한 변화 속에서도 일관되게 축을 이루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평화롭게 서로 미워하지 않고, 또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소중히 해야만 집단도 평화롭게 번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어릴 때부터 가슴에 새긴 니치렌 불법(日蓮佛法)과 이케다(池田) SGI 회장의 철학이 바탕이 되고 있어요.”

문씨는 6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신심을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으며 미술계에서 마음껏 활약할 날을 그리며 희망에 찬 꿈도 키웠다. 그런데 대학 입시 때부터 그의 길은 생각지 못한 곳으로 향했다. 목표로 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미대 졸업을 앞두고 준비하던 프랑스 유학도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에겐 신심이 있었다. 신심은 언제나 무한한 용기와 희망의 원천이었다. 당장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최고로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심의 힘이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에 용기를 얻으며 한발 한발 착실하게 나아갔다.

그 과정 속에 문씨는 어느 유명 갤러리 큐레이터로 발탁됐다. 단순한 갤러리 지킴이가 아니라 기획에서 전시, 재정확보, 작품 보존 관리, 홍보 등 일체를 책임지는 것이었다. 이는 통상적으로 5~6년이 걸리는 과정을 훌쩍 뛰어넘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보다 넓은 미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변독위약(變毒爲藥)의 엄연한 공덕을 실감했다.

그런 만큼 그는 열정적으로 일했다. 경험도 없이 시작한 일이라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어려움에 맞닥뜨렸지만 오히려 더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익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또 1~2년 사이 문씨가 직접 기획한 전시만 해도 10여 편. 그에 대한 평도 매우 좋아 문씨의 이름은 이내 미술계에 알려졌고 실력 있는 큐레이터로서 입지를 굳히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는 쏟아지는 일에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고, 견디기 힘든 인간관계나 ‘나 정도 실력이면’이라는 오만이 여지없이 좌절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주위에는 아낌없이 격려해 주는 학회원이 있었고, 마음 속에는 스승이라는 존재와 광선유포라는 큰 목표가 있었다.

문씨는 장래의 꿈을 향해 더욱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방송국도 더 발전시키고 큐레이터로서 활약의 폭도 더욱 넓히고 싶다는 희망과 열정에 가슴이 부푼다.

“장래에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많이 발굴해 그들이 마음껏 활동하도록 지원하고 싶어요. 그들의 활약으로 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그래서 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이상도(sdlee@hknews.co.kr) | 화광신문 : 07/10/19 753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