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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동주 항공기술연구원

꿈을 향한 끝없는 비상, 그의 비행은 지금부터다!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이 질문에 ‘꿈’이라고 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말이다.

이동주 씨도 그랬다. 높게 드리워진 현실의 그림자는 빛나는 꿈을 앗아갔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꺼내들진 못했지만, 가슴속에 안고 있던 ‘답’이 무엇인지. 그래서 모든 것을 내던져봤다. 그리고 쟁취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그 꿈을.





출근하는 이동주 씨의 발걸음도, 마음도 가볍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벅찬 일을 매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합니다.”



─. 축하한다. 인생의 한 ‘문턱’을 넘은 기분이 어떤가.

“하늘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된 꿈이 이렇게 현실이 되니 참 기쁘더라고요. 늦게 시작해서 어렵게 꿈을 이룬 만큼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어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죠.”



─. 조종사, 승무원 등 알려진 직업에 비해 ‘항공기술연구원’은 생소한 직업이다.

“네, 그렇죠? 보통 항공사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공항에서 일한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저는 항공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연구개발의 전반을 담당하는 ‘체계종합팀’ 소속입니다.”



─.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항공기 연구개발은 여러 분야가 참여하는 ‘체계 활동’입니다. 구조·공력·중량 등 항공학 관련 분야뿐 아니라, 기계·전기·전자·재료 등 전문 분야가 통합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지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주요 단계별 목표를 위해 항공기의 연구개발이 진행되도록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어렸을 때부터 항공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

“사촌형이 운동장에서 고무동력 비행기를 날린다고 하면 부리나케 뛰어나갈 정도였어요. 전투기,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설레곤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모형 비행기를 만드는 동아리에 가입하기도 했죠. 대회도 많이 나갔습니다. 매번 꼴찌만 했지만요.”



─. ‘라이트 형제’에게도 늘 실패는 따라다녔다. 비행에 성공한 적은 없었나.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던 적은 있었어요. 한 대회를 앞두고 전날 연습 삼아 비행기를 날려봤는데 역시나 땅으로 내리꽂혔죠. 밤새도록 날개를 고치고는 처음으로 스스로 기원을 해봤어요. 당장 대회에 나가는데 걱정이라며. 그런데 대회 당일, 어제까지 땅으로 바로 곤두박질치던 비행기가 바람을 타더니 하늘로 솟구치는 거예요. 그 대회에서 2등을 했죠. 덕분에 대학 진학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항공대 항공전자과에 입학 후,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비행교육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연달아 낙방했다고. 크게 낙심한 이 씨는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미국의 한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귀국길에 오른 이 씨.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시작했다.



─. 도너츠 가게를 운영하는데 뛰어들었다고. 특이한 행보다.

“미국에서 돌아오니, 여러 가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진로에 대해 상쾌하게 결론을 내리지도 못해 학교에 복학도 하지 않고, 무작정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도피였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되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혔습니다. 주위에서 늦은 나이에 뭐하는 짓이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어요.”



─. 도너츠 매장 ‘대표’의 생활은 어땠나.

“매장을 열고 바라던 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결혼도 하고요. 2년 정도까지는 즐거웠어요. 소년소녀부나 미래부 부원회 때 간식도 지원해줄 수 있고. ‘나는 이렇게 광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매장이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가장으로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하니 고민이 컸어요. 현실에 안주할수록 꿈은 멀어졌죠.”



─.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꿈을 향해 새롭게 도전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아이 때문이었어요. 곧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정말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후회 없이 살아보자’고 다짐했어요. 2014년, 항공사 입사를 원단목표로 정하고 기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뱃속의 아이가 ‘대동맥판막협착증’이라는 심장질환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아빠로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 씨를 잡아준 것은 아내와 언제나 묵묵히 기원해주는 어머니였다.

여러 우려와는 달리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을 보며 이 씨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 하지만 공인된 영어성적조차 없었다고 들었다.

“네, 토익 점수 하나 없었죠. 어쩌면 무모했죠. 매장의 추가 계약도 하지 않았기에 반드시 합격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뒤늦게 복학해 대학을 다니며, 수업이 끝나면 학회 활동, 밤에는 매장을 정리하는 생활이 이어졌어요. 중간중간에는 스터디 그룹에 나가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정보를 공유했죠. 병행과의 싸움이었어요. 귀가해서 항공기와 관련된 항공전자 분야를 공부하고, 밤새 논문을 찾아가며 면접에 대비했어요.”



서류 합격 후, 4차 전형. 최종합격까지의 관문은 멀기만 했다. 송곳 같이 예리한 질문은 비켜갔지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도너츠 매장 운영’이라는 이력. 하지만 기원 근본으로 도전하며 이를 장점으로 어필했고 드디어 2015년 1월, 꿈꾸던 항공사로 첫 출근을 하게 됐다.



─. 조금 돌아온 듯 보이지만, 어쨌든 꿈을 이룬 ‘한 사람’이 됐다.

“가족이 없었다면 그리고 늘 응원을 보내주는 학회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예전에는 ‘이동주’로서의 삶만 고민하면 됐는데, 아들 덕분에 많은 것을 꿈꾸고 도전하게 됐어요. 다시 여기에서 안주하면 안 되겠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고, ‘가치 창조’를 가슴에 품고 더 큰 세계로 나가보고 싶은 꿈도 있고요.”



‘꿈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꿈만 좇는 바보처럼 보여도 좋을 것이다.’ 805번 실패 끝에 첫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가 한 말이다.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행복하다. 하지만 꿈을 이룬 이동주 씨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 그것이 그가 ‘꿈만 좇는 바보’처럼 보여도 좋은 이유다.



·금천권 지역남자부장







김경화(kimkh@) | 화광신문 : 15/11/20 1140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