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깃든 디자인으로 소통을 꿈꾼다
모든 감각이 손끝에 모인다. 머릿속 나만의 독특한 영감이 손끝을 따라 그려져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완성된 디자인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누군가에겐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7년 차에 접어든 시각디자이너 서지현 씨. 인사차 건넨 명함을 받고 “이런 명함을 만드는 일이 바로 제가 하는 일이에요”라며 호방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해맑고 눈부신 하늘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에 날리는 해운대에서의 어느 날. 매 순간 새로움을 디자인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시각디자이너 서지현 씨. 그의 하루하루는 다양한 잉크로 알록달록 물들여진다.
─. 시각디자이너, 참 멋진 타이틀이다.
“멋지죠. 다양한 정보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작업이니까요. 시각디자인은 광고나 책, 캐릭터, 컴퓨터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하게 나뉘는데 저는 주로 명함, 현수막, 간판, 팸플릿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출력, 아크릴 제조까지 하고 있어요. 기업 이미지인 CI(Corporate Identity)나 브랜드 이미지 BI(Brand Identity) 작업을 하기도 해요.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이미지를 도안하고 표현하는 직업이 시각디자이너예요.”
당연하게 생각했다. 길을 걸으면 흔히 눈에 띄는 것이 곳곳마다 걸린 간판이고 메뉴판이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창조되고 디자인돼 완성되는 과정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디자인이 세상에 걸리는 기분이 궁금했다.
─. 자신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은 어떤가.
“그 순간의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한 작품 한 작품 다 소중하지만 처음 맡은 일이 기억에 남네요. 에스테틱 광고였어요. 명함과 팸플릿처럼 작은 사이즈의 디자인과는 다르거든요. 힘들게 완성한 제 디자인이 세상에 걸릴 때는 짜릿하더라고요. 매일 그곳을 지나는데 아직도 걸려 있어요. 종종 제 작품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하면서 뿌듯합니다. 사실 요즘엔 창업하면 1년도 안 되어 문 닫는 곳이 많잖아요. 제가 디자인한 곳들만큼은 장수하길 바라죠.”
─. 디자이너를 꿈꾸던 때로 돌아가보자.
“고등학교 때 미술학과에 다녔지만 저에겐 대학이라는 단어는 없었어요. 그때 미래부 담당이던 여자부 선배가 대학만큼은 꼭 도전해 보자고 격려해 줬거든요. 그래서 결심하고 들어간 곳이 공예학과에요. 대학 입학은 했지만 적성에 안 맞았어요. 이왕 하는 거 좋아하는 공부를 해보자고 마음먹고 자퇴 후 다시 입학한 곳이 시각디자인학과였죠. 학비 내기가 벅찰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 방황도 많이 했어요. 정신차려보니 몇 개월이 무의미하게 흘러간 거예요. 그때부터 포트폴리오를 안고 무작정 회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장 출근하고 싶다고 했어요. 부족함 투성이의 포트폴리오였지만 지금의 회사에선 제 열정을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죠.”
하지만 포트폴리오 외엔 이력이 전무했던 그였기에 신뢰받으며 대부분의 일을 도맡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쉬이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불이 물을 끓게 하듯,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던 상황은 그의 열정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 디자이너로 자리잡기까지 만만치 않았겠다.
“힘들었어요. 일이 많은 만큼 실수도 잦았거든요. 매일 주말도 없이 야근했어요. 거래처와 갈등도 많았죠. 서로 소통에 오해가 생겨서 힘들게 디자인한 걸 엎은 적도 많았고요. 막상 디자인하면 ‘원하던 색깔이 아니다’ ‘이 정도밖에 못 하냐’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디자인은 색깔이 중요하거든요.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의 색깔과 디자인을 출력했을 때의 색깔은 확연히 달라요. 인쇄 시스템에서는 CMYK라는 시안(cyan), 마젠타(magenta), 노랑(yellow), 검정(black) 색상을 사용하는데 모니터에서는 RGB라는 적, 녹, 청 색상을 써요. 답은 하나에요. 경험으로 부딪치며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보이는 색은 출력하면 저런 색이 되구나!’라고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을 도표로 만들어 기록해 뒀어요. 제 재산이죠.
회사 사정도 좋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는데, 불현듯 ‘내 행복만 바랐구나. 사장님과 실장님이 행복해져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정말 진지하게 두 분을 기원했죠. 점차 거래처에서 일도 많이 들어오고 자연스레 월급도 인상됐어요.”
─. 큰 프로젝트도 많이 맡았다고.
“얼마 전 기장군 죽성리에 오픈한 3층짜리 카페에 들어가는 모든 시각적인 디자인을 진행했죠.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인데 카페 분위기와 디자인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카페를 보고 마음에 들어 직접 찾아와 디자인을 의뢰한 분도 많아요. 양산시립박물관, 복천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의 디자인팀과 협력해 출력을 맡았고요. 부산 송상현광장에도 출력과 아크릴 제조를 도왔죠. 현재 카페부터 박물관, 브랜드 헤어숍 등 꾸준하게 맡고 있는 협력업체가 10개 정도 됩니다.”
7년 차 디자이너인 그에겐 매 순간이 디자인이다. 회사에서는 신뢰받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퇴근 후에는 자신에게 요청 온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학회 속에서도 디자인 관련 작업이라면 뭐든지 발 벗고 나선다. 힘든 내색 없이 오히려 유쾌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도 여전히 탁 트인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작품에 어떻게 마음을 담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기원하고 노력한다고.
─. 자신만의 색깔이 깃든 디자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소통이죠. 입사 초에 여러 차례 깨지고 부딪혀보니 알겠더라고요. 학회에서도 동고(同苦)의 마음을 배우잖아요. 디자인 역시도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옮기기 위해선 꾸준한 소통이 필요해요. 상대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거래처의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마음의 소리를 듣고 원하는 그대로를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똑같은 디자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것만큼은 제가 자부할 수 있어요.”
─. 더 욕심을 낸다면.
“기분 좋아지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시각디자인은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에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전달력이 있어야 해요. 감각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담긴 디자인, 보면 기분 좋아지는 디자인을 해야죠.”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한 번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청춘 시절. 매일 잉크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하루에도 수차례 종이에 손을 베기도 하지만 ‘따뜻함’과 ‘소통’이라는 명쾌한 디자인 철학을 품고 서지현 씨가 그리고 있는 청춘은 어떤 일곱 색깔 무지개보다도 아름답다.
·해운대권 지부여자부장
강혜진(hjkang@) | 화광신문 : 15/05/29 1119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