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최아주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 ‘언어’로 마음 잇다
9년 동안 일해온 교직원 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군가가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라면 보람은 더 크겠죠.”

이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청년의 열정을 불태우는 최아주 씨.
청년은 아름답다. 도전하는 청년은 더 아름답다.
안정적인 직장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최아주(수영권 지역여자부장) 씨.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그의 해맑은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말에서 도전하는 청년이 왜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문학을 전공한 최아주 씨. 대학을 졸업할 무렵 중국 대학에서 1년 6개월간 한국어를 강의한 경험도 있었던 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직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지난해 7월, 9년 동안 일해온 교직원 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진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꿈을 현실에서 펼칠 수 있는 일, 인생의 스승인 이케다 SGI 회장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아주 씨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돼버린 지난해 7월을 전후로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되짚어 본다.
─. 9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대학교에서 교육 행정업무를 3년 정도 했을 때부터 일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판에 박힌 듯한 학사 일정과 반복되는 업무에 싫증도 났고, 학생들의 요청에 응하는 수동적인 삶이었기에 요청이 없으면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나 곰곰이 되돌아보았어요.
문득 예전에 중국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거구나 싶었죠. 내가 능동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겁다는 결론을 내렸죠.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
급여가 이전 직장에 비하면 훨씬 적으니까 저부터 고민이 되었죠. 하지만 부모님은 “네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오히려 격려해 주셨죠. 지금 생각해도 저희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문화 가족이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일이죠. 현재 부산 영도구와 중구에 있는 다문화센터에서 중국,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가슴 뛰는 일이라고 했는데
한국에 정착한 대부분의 이주 외국인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떠밀려 한국으로 흘러든 경우가 많아요. ‘가르치는 일’에 대한 저의 꿈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펼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댈 곳이 상대적으로 별로 없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들을 향한 제 마음이 오늘의 저를 이끈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보람은 더 큰 것이겠죠. 보람이 큰 만큼 제 가슴은 더욱 설레고 따뜻해졌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세계를 무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던 저에게 딱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실에 모인 다양한 교육생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곳이 세계의 축소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저에게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 첫 수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죠.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습니다. 엄청 떨렸죠. 의욕은 넘쳤지만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마음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별개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준비한 교육자료를 모두 전해주지 못해 아쉽기도 했고 혹시 사투리를 쓰지는 않았는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노력 덕분인지 첫 수업은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저의 장점이 빛을 본거죠. 수업이 끝나고 거리낌 없이 제게 다가와 질문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언어는 각 나라의 문화가 녹아 있는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와 문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단순히 언어만 가르치는 것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을 직접 준비해서 수업시간에 함께 먹기도 하고 가 볼 만한 곳이 있으면 수업과는 별개로 제가 시간을 내서 교육생들과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에 갇혀 몸과 마음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줄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겁니다. 밖에는 교실 안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밖에는 무수히 많다는 걸 실감했죠. 생활과 밀접한 경험을 함께 해보니 교육효과가 교실 수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어요.
그리고 교육생 중에서 수업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수업 시작 30분전 또는 수업 종료 후 무료로 과외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빨리 한국에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하게 되었죠. 제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니까요.
─. 지금 행복한가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침마다 ‘오늘 하루도 서로 마음이 교류되는 수업, 반응이 좋은 수업을 하자’고 다짐합니다. 그 다짐대로 저의 모든 것을 수업에 쏟아부어 수업을 진행하죠. 배움의 즐거움으로 눈을 반짝이던 학생들이 떠난 텅 빈 교실에 저 혼자 남았을 때. 예전 직장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이 따뜻하게 가슴속에서 피어오릅니다.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전력질주했다고 나 자신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하다 보면 행복이 물밀듯이 차오르죠.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최아주 씨는 아주 당당하고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이주 외국인의 시선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최 씨. 언어를 가르치지만 생소한 한국땅에서 느낄 이주 외국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독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언어가 없으면 마음을 전달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언어는 마음을 잇는 시작점일 뿐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폭의 그림에 비유한다면 그의 그림은 아직 밑그림 단계일지도 모른다. 그 밑그림 위에 어떤 색이 입혀져 한 폭의 명화가 탄생할지 자못 기대된다.

이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청년의 열정을 불태우는 최아주 씨.
청년은 아름답다. 도전하는 청년은 더 아름답다.
안정적인 직장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최아주(수영권 지역여자부장) 씨.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그의 해맑은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말에서 도전하는 청년이 왜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문학을 전공한 최아주 씨. 대학을 졸업할 무렵 중국 대학에서 1년 6개월간 한국어를 강의한 경험도 있었던 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직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지난해 7월, 9년 동안 일해온 교직원 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진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꿈을 현실에서 펼칠 수 있는 일, 인생의 스승인 이케다 SGI 회장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아주 씨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돼버린 지난해 7월을 전후로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되짚어 본다.
─. 9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대학교에서 교육 행정업무를 3년 정도 했을 때부터 일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판에 박힌 듯한 학사 일정과 반복되는 업무에 싫증도 났고, 학생들의 요청에 응하는 수동적인 삶이었기에 요청이 없으면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나 곰곰이 되돌아보았어요.
문득 예전에 중국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거구나 싶었죠. 내가 능동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겁다는 결론을 내렸죠.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
급여가 이전 직장에 비하면 훨씬 적으니까 저부터 고민이 되었죠. 하지만 부모님은 “네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오히려 격려해 주셨죠. 지금 생각해도 저희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문화 가족이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일이죠. 현재 부산 영도구와 중구에 있는 다문화센터에서 중국,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가슴 뛰는 일이라고 했는데
한국에 정착한 대부분의 이주 외국인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떠밀려 한국으로 흘러든 경우가 많아요. ‘가르치는 일’에 대한 저의 꿈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펼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댈 곳이 상대적으로 별로 없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들을 향한 제 마음이 오늘의 저를 이끈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보람은 더 큰 것이겠죠. 보람이 큰 만큼 제 가슴은 더욱 설레고 따뜻해졌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세계를 무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던 저에게 딱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실에 모인 다양한 교육생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곳이 세계의 축소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저에게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 첫 수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죠.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습니다. 엄청 떨렸죠. 의욕은 넘쳤지만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마음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별개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준비한 교육자료를 모두 전해주지 못해 아쉽기도 했고 혹시 사투리를 쓰지는 않았는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노력 덕분인지 첫 수업은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저의 장점이 빛을 본거죠. 수업이 끝나고 거리낌 없이 제게 다가와 질문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언어는 각 나라의 문화가 녹아 있는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와 문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단순히 언어만 가르치는 것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을 직접 준비해서 수업시간에 함께 먹기도 하고 가 볼 만한 곳이 있으면 수업과는 별개로 제가 시간을 내서 교육생들과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에 갇혀 몸과 마음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줄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겁니다. 밖에는 교실 안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밖에는 무수히 많다는 걸 실감했죠. 생활과 밀접한 경험을 함께 해보니 교육효과가 교실 수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어요.
그리고 교육생 중에서 수업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수업 시작 30분전 또는 수업 종료 후 무료로 과외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빨리 한국에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하게 되었죠. 제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니까요.
─. 지금 행복한가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침마다 ‘오늘 하루도 서로 마음이 교류되는 수업, 반응이 좋은 수업을 하자’고 다짐합니다. 그 다짐대로 저의 모든 것을 수업에 쏟아부어 수업을 진행하죠. 배움의 즐거움으로 눈을 반짝이던 학생들이 떠난 텅 빈 교실에 저 혼자 남았을 때. 예전 직장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이 따뜻하게 가슴속에서 피어오릅니다.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전력질주했다고 나 자신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하다 보면 행복이 물밀듯이 차오르죠.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최아주 씨는 아주 당당하고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이주 외국인의 시선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최 씨. 언어를 가르치지만 생소한 한국땅에서 느낄 이주 외국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독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언어가 없으면 마음을 전달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언어는 마음을 잇는 시작점일 뿐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폭의 그림에 비유한다면 그의 그림은 아직 밑그림 단계일지도 모른다. 그 밑그림 위에 어떤 색이 입혀져 한 폭의 명화가 탄생할지 자못 기대된다.
hoon@(김기훈) | 화광신문 : 15/01/01 1099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