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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공예가 음인숙 씨

꾸준히 창작하며 자신에게 지지않는 사람으로



 


문을 열자 낮게 깔린 라디오 소리가 스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눈으로 주위를 훔치니 투박한 기계와 공구들이 좌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방문한 ‘공방’이란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던 순간, “어머, 잘 찾아 오셨네요” 하며반겨주는 음인숙(광명권 신광지부 반담) 씨. 이곳에서 음 씨는 공예가로서 두 손으로 은빛 꿈을 빚어가고 있다.





‘모두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는 음인숙 씨. 자신의 마음이 풍부해질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 이것이 음 씨의 마음이다.



은(銀)을 이용해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 세상에서 하나뿐인 장신구를 제작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톱질, 망치질, 땜질 등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라도 손길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난다고. 음 씨의 손에서 태어난 수공예품이 제각각 빛나는 매력을 품고 있는 이유다.

“은이 금보다 화려하지는 않죠. 또 다이아몬드만큼 반짝거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은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어요. 세월이 갈수록 더해지는 은은한 멋과 수수한 아름다움이죠. 그래서 주로 은을 이용해요.”

1997년 디자인대학원에서 실내 및 제품디자인을 전공하던 음 씨는 수업 중 교수님의 한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다. 방학 때마다 유럽을 다녀오는 교수님은 틈틈이 유럽의 금속공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이가 들면 나도 꼭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곤 하셨다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였지만, 음 씨는 그것을 계기로 금속공예에 관심이 생겨 문화센터를 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도면에 디자인만 해서 넘기면 끝이었던 디자인 일과는 다르게, 이건 제가 디자인 구상부터 시작해 동판에 톱질하고 망치질하고 땜을 해서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잖아요. 그런 성취감이 참 좋았어요.”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2006년 중고로 산 작업 책상과 땜 작업을 할 수 있는 토치와 기본 공구만을 가지고 집 근처 옥탑방을 얻어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제대로 갖추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거래처도 하나 없던 상태였지만 음 씨에게는 신심(信心)이 있었다.

더 좋은 작업환경과 거래처가 생길 수 있도록 기원하자 공예트렌드페어, 공예대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미술관과 아트샵 등과 연결됐다. 조금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작업에 필요한 기계와 공구를 하나둘씩 구입하여, 지금의 공방도 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작은 공구라도 저마다 사연이 있고 기원과 애정이 담긴 소중한 ‘친구’라고 음 씨는 말한다.

2011년에는 서울국제도자장신구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받아 실력을 두루 인정받으며, 재작년에는 경기도에서 사업지원금을 받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온라인 쇼핑몰도 열 수 있었다.





모처럼 공방을 찾은 오랜 벗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서로에게 어울리는 장신구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음 씨의 작품을 보고 자신의 업체에 디자이너로 와달라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때도, 또 디자인을 사고 싶다며 접촉하는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음 씨는 정중히 거절했다고.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됐었지만, 저는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개인 작업을 추구했어요. 그래도 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에 뿌듯하긴 했어요.”

언젠가 한번은 음 씨가 만든 귀걸이를 산 고객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몇 년 간 착용하다 한 쪽을 잃어버렸다며, 박물관에 직접 음 씨의 연락처를 문의했다고. 평소 정말로 아끼던 귀걸이였는데 잃어버려 속상한 마음을 살짝 토로하고는 ‘귀한 재능이 세월 더할수록 더욱 아름답게 꽃피우시길’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단다. 일하면서 가장 보람찰 때가 바로 이런 고객들의 반응을 볼 때라고.

“외국에서는 수공예의 가치가 정말 높다고 말씀하시면서 직접 공방을 찾아와주신 고객도 있었어요. 새로운 작업은 없는지 궁금해 하며 관심을 가져주시기도 하셨고요.

한번은 본인 건물에 빈자리가 있으니 작업실을 옮기라고 권유를 받기도 했어요. 이런 분들을 뵐 때마다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스스로가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음 씨는 자신이 만든 장신구로 타인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작업 하나하나에 마음을 더욱 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작업이지만 늘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하며 발전을 그린다. 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자신을 채찍질한다는데.

디자인 단계부터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하는 작업. 그렇기에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아도, 작업을 하지 않아도 뭐라고 입을 대는 사람은 없다.

이런 환경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을 터. 뭇사람들처럼 자칫 무력감에 빠지고자괴감에 괴로워했을 수도 있었지만, ‘닻’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신심이 있었기에 음 씨는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

‘예술’만을 숭모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업계의 몇몇 사람, 또 자신의 디자인을 몰래 베껴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음 씨는 타인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경애를 넓혀가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언제나 자신에게 이겨가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신 스승의 지도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지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지닌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장신구, 이 아이들은 제 빛으로 많은 사람을 밝혀주고 돋보이게 해준다. 그렇게 제 역할을 다하는 장신구를 만드는 공예가 음인숙 씨. 사람이 만드는 예술작품에는 자기 마음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예술가는 더욱이 마음을 연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윽하게 은빛 내려앉은 작품이 음 씨와 꽤 닮아있다.






김경화(kimkh@) | 화광신문 : 14/09/19 1085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