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앞으로 3년! 더욱 연구하고 발전하겠습니다!
제자의 꿈·미래 위해 먼저 다가가는 교수
“계속해서 강의 교재를 개발합니다!”
장준호(부천권 작동지부 남자부장) 교수는 새로운 강의 계획을 짜지 않으면 스스로 재미가 없어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지난 2012년 5월 지금의 대학에 교수가 된 이후, 누구도 강요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부러라도 재미있는 강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의 노력은 강의실 밖에서도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이뤄진다.
“처음에는 ‘내 공부할 것도 많은데 학생들 불러서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에 의무감으로 했어요.”
하지만 학회에서 배운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말에, 마음가짐을 바꿨다. 그러자 오히려 면담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방을 찾아주는 학생들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잘되지? 문제없지?’라고 상투적인 질문을 하면, 처음부터 ‘저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비록 자신이 책 한 권을 못 읽더라도,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서까지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한 학생이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학생들이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를 섬세하고 적극적으로 포착했다.
“그래도 저 때까지만 해도 학문을 연구하겠다는 꿈으로 대학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의 화두는 ‘우리는 왜 대학에 가야 하지?’ 입니다.”
그는 실업률 상승으로 인해 학생들이 안정된 직장을 빨리 가질 수 있는 학교를 선호하는 현상을 언급했다. 즉 실용적인 공부 외에 나머지 공부는 모두 불필요한 내용이 된 것이다.
또한, 대출을 많이 받아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다.
그런데 그가 재직하는 웅지세무대학교는 세무, 회계, 공인중개, 감리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특성화 대학교이기에,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한다.
또 학생들의 부모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부모의 직업과 생활이 학생들의 롤모델이 된 경우가 많다고.
“이곳의 학생들은 90% 이상이 원하는 일을 위해 왔고, 그 공부를 하고 있으니 행복해 하는 것 같아요. 다만 공부 과정이 힘들 뿐입니다.”
학생들의 목표가 확실하다 보니 지도하기도 편하다. 잘 안되는 부분들을 놓고, 보다 현명한 방향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격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이러한 특성화 교육의 아쉬운 점도 지적한다. 즉 지식의 인스턴트 화다.
“학생들이 뭔가를 빨리 이루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필독서나 양서를 읽기보다, 리뷰만 읽고 다 읽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지식도 인스턴트 식으로 습득하는 것 같아요.”
그는 수업시간에 볼만한 책이나 영화도 추천하지만, 자신의 호소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다른 난관은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국가고시를 준비중인 학생과 향후 공부일정에 대해 상담중인 장준호(오른쪽) 교수.
학생과 교수의 토론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교수법을 놓고 많이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식이죠. ‘우리(학생들)는 바쁘니, 교수님이 읽어서 그게 왜 그런지 답해주면 됩니다!’라고요.”
그가 교수법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학부를 포함하여 그의 주요 연구 전공은 ‘임진왜란’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전문적으로 강의할 기회는 없다. 왜냐면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국가고시 때 ‘한국사 시험을 어떻게 잘 보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공 연구와 가르치는 작업에서 혼란이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정리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전공 관련 분야가 나올 때는 심화해 주는 방법을 썼다. 그러자 그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강의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심화 강의를 듣고 학과를 사학과로 바꾸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의실 안팎에서 그의 진심과 노력이 외면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학기를 더해 갈수록 가치가 빛났다.
무관심하던 학생들도 이제는 스스로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지난 학기에는 학생들로부터 교수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교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가화락된 가정에서 자란 그는 군대를 전역하면서 신심에 눈 뜨기 시작했다. 수재(殊才) 소리를 들으며 대입을 준비했지만, 항상 결정적일 때 실력 발휘를 못 했다. 그는 그 이유가 ‘안되면 어쩌지?’라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에 있었다고 말한다.
한 번의 재수, 임용시험 낙방 등 실패와 좌절을 되풀이하는 속에 입대. 그때 어머니가 보낸 용기와 희망에 대한 편지가 그를 변화시켰다고 한다.
2004년 제대와 동시에 그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자. 둘째, 성공의 결과를 만들자’이다.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어서 1088쪽)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훈이 되었다. 이후 신심 근본으로 도전해 하나둘씩 명확한 결과를 만들었다.
원하는 곳에서의 석·박사과정과 교수 임용, 재작년 9년간 연애한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아버지 치료와 아내의 갑상선 암 수술 등 여러 가지 병고를 말끔히 이겨낸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불법대화를 한 우인이 얼마 전 입회카드를 작성하고 한국SGI 회원이 됐다고 한다.
스승이 제시한 황금의 3년 중 첫해가 어느새 반년이 지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목표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저의 목표는 ‘임진왜란을 알기 위해서는 장준호라는 사람의 책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석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교수임용과 결혼 등으로 연구에 집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지만, 그는 매 순간 가슴에 새긴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았다.
“매번 강의 때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지식 쌓기와 더불어 인문학적인 교양도 쌓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앞으로 3년간 제가 해야 할 큰 과제라고 봅니다.”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강의 개발은 물론 좋은 연구 성과를 내어서 노력하는 교수, 그리고 창의적인 교수의 모범이 되겠다고 말한다.
“스승이 말씀하신 ‘자신의 인생 나아가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창조 운동’을 생활에서 열심히 실천하겠습니다.”
오웅희(unghee@) | 화광신문 : 14/05/02 106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