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철학과 실천 한국SGI 회원은 SGI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하는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룸인테리어디자인 부대표 송상미 씨

“색깔 분명한 인테리어 회사 만들래요”



 



비전공자·젊은 나이임에도 ‘근성’으로 버텨

10여 년동안 다양한 계약 따내며 승승장구




“저는 일류이기 때문에 일류하고만 공 사하고 싶어요!” 송상미 씨가 늘 하는 말이다.

거기에 는 송 씨의 자신감이 녹아 들어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일류가 될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일할 테니 일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응해달라는 의미예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일 류가 될 것 같아요.” 송 씨가 운영하는 인테리어디자인회사는 디자인과 시공, 설계, 기획 등 회사 를 창업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관리한다.





"이 일이 정말 좋아요!" 송상미 씨는 평생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며 사는 게 꿈이다.



고급 타운하우스부터 미용실, 휘트니스 센터, 카페, 식당 등 디자인이 필요 한 모든 업체가 그의 고객이다.

“우리나라 건축문화는 건축 따로, 기 획 따로, 인테리어 따로기 때문에 완성 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동네 구멍가게를 열 때도 고려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죠. 타깃은 누구고, 위치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지, 주변 가게의 전략은 무엇인지에 따라 매장의 콘셉트가 결정돼야 합니다.”

이렇게 똑소리 나는 그녀가 사업을 시 작한 건 11년 전이다.

그녀 나이 겨우 26 살이었다. 1평 남짓 원룸에 달랑 책상 하나. 혼자 설계하고, 혼자 도면 그리고, 혼자 현장을 누볐다.

오랜 시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며 공부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인테리어 와는 1%도 관련 없는 법정학부를 전공 한 그녀는 오로지 돈을 벌겠다는 목표 로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우연히 모델하우스를 시공하는 거래 처 직원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결정적으로 젊은 분인데 돈을 굉장히 많이 버시더라고요.

‘그래, 이거다!’ 싶었죠.” 그날부터 야간에는 실내디자인학원에 다니고 주말에는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 을 찾아가 수업을 들었다.

가르쳐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서울이고 대구고 마다치 않고 쫓아다녔다.

전문적인 건축 과정을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보 다 2배, 3배는 더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었다. 그녀의 열정에 주변 사람들도 일부러 시간을 내 가르쳐줬다.

“평소에 어떤 인상을 보이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관리가 안돼서 인덕을 쌓지 못하면 결정적인 순간 도움을 구할 수가 없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아르바이트로 모델하우스 디스플레이를 하게 됐는데 ‘대박’이 난거예요.

반응이 정말 좋았죠. 그때 어찌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목이 돌아가지 않아 일주일 간 병원 신세를 지긴 했지만요.(웃음)”

한번 했다하면 끝을 보는 그녀의 근성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인테리어 회사 입사를 가능하게 했다.

3년간 회사에 다니며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그녀는 과감하게 퇴사한다.

“망해도 일찍 망해서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어차피 당시 제월급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내 월급만큼만 벌어도 손해 볼게 없었어요.”

비전공자에 나이 어린 여자.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대표에게 일감은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기회를 주십시오!” 어렸을때 갔던 안경원 사장님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기특하게 봤는지 지인을 소개해줬다.

그 지인은 현재 부산·울산· 경남지역 미용업계의 25%를 차지하는 H미용실의 대표였다.

“왠지 잘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대요. 원래 맡기기로 했던 업체에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저에게 인테리어를 맡겨주셨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어요.

매장이 50개로 늘어났으니 함께 성장한 거죠.”





송상미 씨가 시공중인 미용실을 방문해 자재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 대한 대답이 언 제나 감사로 돌아오지만은 않았다.

배신과 사기. 특히, 거래금액이 큰 건축분야였기에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은 비일비재로 일어났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에 좌절할 때 그녀에겐 신심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라는 도다 제2대 회장의 말씀대로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기원했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 1974년 신심을 만난 어머니의 기원으로 태어난 송씨다.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으로, 창제로 다져진 강한 생명력으로 눈앞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이제는 사람을 보는 안목도 많이 생겼다.

과거에 그녀에게 인테리어를 가르쳐줬던 선배들은 이제 그녀에게 다시 사업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밝은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더욱 철저하게 업무에 임하며 세세하게 알려주는 송상미(뒷쪽)씨.



“사실 요즘 대기업에서도 인테리어 사업에 손을 대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하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한 회사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의류 업계에 비유하자면 유니클로보다는 루이비통 같은 명품을 만드는 명장이 되고 싶어요.” 

고부가가치의 내실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철저하게 프로세스를 만든다.

직원들에게 업무 포지션을 확실히 줘서 원가절감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거기에 모든 결재를 투명하고 깔끔하게 진행해 거래처와도 두터운 신뢰를 쌓고 있다. “저는 이 일이 정말 좋아요. 예전에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 법이었는데 이제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 노인정이나 노인요양 시설 같은 곳도 멋지게 디자인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겠죠?”



·해운대권 婦회원  



박수인(suin@) | 화광신문 : 14/04/18 1065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