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디지털플러스 윤길환
신심 확신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로 실현!
윤길환 씨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의 병고로 인해 치료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투병생활로 인해 윤 씨의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됐다.
군 제대 후, 그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다. 사회 경험도 없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그는 젊은 패기를 가지고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워낙 대형 인터넷 쇼핑몰이 많다 보니 그의 쇼핑몰은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만큼 찾아오지 않았다.
“힘들게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엄청난 빚에 허덕이게 됐습니다. 패배감에 젖어 인생의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제게 불법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2010년, 그는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딱 1년만 신심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어떠한 확신에서인지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꼭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좌담회를 비롯해 각종 회합에 참석하며 불법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창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 점점 밝게 변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변한 자신이 놀랍기만 했다. 불법의 힘을 차츰 느껴 갈 즈음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그는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갈고닦은 웹 디자인 실력을 발휘해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다. 그룹장, 지구리더의 사명을 맡으며 일과 학회활동을 병행했다. 충만한 생명력을 발휘하니 홈페이지 제작 의뢰가 끊기지 않고 들어왔다. 거래처에서도 결제를 잘 해주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는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며 마음껏 광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주)디지털플러스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이 회사는 대법원, 법무부, 우정사업본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관리하는 IT 업종에서 손에 꼽히는 업체였다. 4년제 대졸자 이상이 채용의 기본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설사 서류심사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력서라도 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원 자격이 안 되는 데도 말이죠.”
결과는 서류심사 합격이었다. 더불어 1차 면접을 통과하며 그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함께 경쟁했던 사람들의 스펙이 매우 좋아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합격해서 불법을 증명하고 스승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자!’고 정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는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념을 놓치지 않고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창제에 도전했다. 다음날 오후, 경력직 정직원으로 합격통보를 받고, 지난해 9월부터 출근하며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념이 바뀌면 일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이케다 SGI 회장 지침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취업을 마디로 불법을 더욱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신심을 만나게 해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욱 사회와 학회에서 맹활약하겠습니다. 그리고 황금의 3년, 불법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남광주권 나주지부 부남자부장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4/01/24 1054호 발췌
윤길환 씨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의 병고로 인해 치료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투병생활로 인해 윤 씨의 집은 빚더미에 앉게 됐다.
군 제대 후, 그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다. 사회 경험도 없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그는 젊은 패기를 가지고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워낙 대형 인터넷 쇼핑몰이 많다 보니 그의 쇼핑몰은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만큼 찾아오지 않았다.
“힘들게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엄청난 빚에 허덕이게 됐습니다. 패배감에 젖어 인생의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제게 불법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2010년, 그는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딱 1년만 신심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어떠한 확신에서인지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꼭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좌담회를 비롯해 각종 회합에 참석하며 불법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창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 점점 밝게 변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변한 자신이 놀랍기만 했다. 불법의 힘을 차츰 느껴 갈 즈음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그는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갈고닦은 웹 디자인 실력을 발휘해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다. 그룹장, 지구리더의 사명을 맡으며 일과 학회활동을 병행했다. 충만한 생명력을 발휘하니 홈페이지 제작 의뢰가 끊기지 않고 들어왔다. 거래처에서도 결제를 잘 해주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는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며 마음껏 광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주)디지털플러스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이 회사는 대법원, 법무부, 우정사업본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관리하는 IT 업종에서 손에 꼽히는 업체였다. 4년제 대졸자 이상이 채용의 기본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설사 서류심사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력서라도 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원 자격이 안 되는 데도 말이죠.”
결과는 서류심사 합격이었다. 더불어 1차 면접을 통과하며 그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함께 경쟁했던 사람들의 스펙이 매우 좋아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합격해서 불법을 증명하고 스승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자!’고 정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는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념을 놓치지 않고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창제에 도전했다. 다음날 오후, 경력직 정직원으로 합격통보를 받고, 지난해 9월부터 출근하며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념이 바뀌면 일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이케다 SGI 회장 지침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취업을 마디로 불법을 더욱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신심을 만나게 해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욱 사회와 학회에서 맹활약하겠습니다. 그리고 황금의 3년, 불법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남광주권 나주지부 부남자부장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4/01/24 1054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