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승민 동해지방해양경찰청 해안치안상황실 경사
푸른 동해 지키는 듬직한 바다 파수꾼
한·중·일·러 4개국이 함께 일하는 곳
대립보다 공생의 바다가 되기를 꿈꾸며
오승민 씨는 태백시에 있는 동해지방해양경찰청 해상치안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경찰공무원이 된 이후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든 오 씨는 “보람된 일을 직업으로 가져서인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즐겁습니다”라고 말한다.
오 씨의 역할은 “해상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경비정 및 근무자에게 연결하고 급파해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범죄 사건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입니다. 해양 관련 사건사고시 122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이다. 오 씨의 기세 넘치고 막힘없는 대답에 동해의 해상이 더한층 안전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치안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임관 후 오 씨는 일반 경비정에서 3년, 해상에서 범죄예방 단속업무를 수행하는 형사기동정에 2년 근무했다. 당시의 임무는 음주 운항자도 단속하고, 불법으로 대게를 포획·유통·판매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는 일이었다. 또한 조업 중인 선박에 불이 났을 때 긴급 구조에 나서는 등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졌다.
그리고 초임 때 오 씨의 또 다른 임무는 동해안의 가장 큰 이슈인 독도 영해선을 지키는 일이었다. 이 또한 오 씨가 보람을 느꼈던 임무 중 하나라고 한다.
오 씨는 현장부서에서 시민들과 부딪치며 쌓은 힘든 경험과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현재 상황실로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라도 소홀함 없이 응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경찰관의 임무가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보니, 오 씨가 상황을 1초라도 늦게 전파할 경우 사람들이 사망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자를 후송시키는 등 긴급상황이 종료된 후 사건 경위를 조사하다 보면 1~2초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릴 뻔한 사건도 있었다. 특히 사고가 다발하는 여름철에는 더욱더 주의를 기울인다.
몸도 마음도 위풍당당한 오 씨이지만 21~22살 시절에는 깊은 방황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3 때 책만 보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되지 않아 상위권에 있던 성적이 급속도로 떨어졌으며 재수를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신심(信心)을 했었지만, 수능시험 실패는 어린 오 씨에게 큰 충격이었다. 신심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귀찮아 진 오 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떠한 인생을 살 것인가!’ 하고 오 씨의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한 지인이 군복무로 의무경찰에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 순간 오 씨에게 경찰공무원이라는 새로운 꿈이 떠올랐다. 군복무 중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오 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틈틈이 공부를 지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제대를 했을 때, 가정형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편 기울어져 가는 집안 상황은 오 씨가 신심 근본으로 일어설 수 있게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결과는 지금까지 없었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처럼, 승부사 기질이 있는 오 씨는 학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일류가 되겠다는 포부로 학회 남자부로서 활동도 해가며, 도서관에서 공부를 10시간 이상 거뜬히 지속했다.
“한참 공부하다 보니 순간 깨달았죠. 고3 때 집중이 안되던 병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을요!”
결국 오 씨는 1차부터 5차까지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2004년 12월 해양경찰공무원 공채 최종합격을 이뤄냈다. 이후 이듬해 4월 경찰공무원 임용을 받고 근무지도 고향인 동해로 발령났다. 그는 “‘정말 이곳이 내가 평생 사명을 해야 할 곳이구나’ 라고 자각했습니다”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던 그때의 소감을 전했다.
사실 오 씨는 해양경찰은 물론 경기도 쪽으로 육상경찰에도 지원했다고 한다. “육상 경찰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수영을 잘 못했습니다 하하!” 해양경찰에 지원할 때 수영테스트는 없지만, 합격을 한 이상 오 씨는 해양에서 인명구조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수영 훈련을 했다. 한번 하면 끝까지 해내는 승부사 기질 덕분에 오 씨는 수영 실력이 수준급이 됐으며 지금도 매일 수영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오 씨는 얼마 전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피해를 보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모든 사고가 그렇지만 물의 괴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공포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 씨는 삶을 달리한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생존자들이 앞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또한 오 씨가 최근 경험한 사고 중, 한일중간수역(독도 인근)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어선이 실종한 사고를 언급했다. 당시 사고 지점이 일본해상과도 가까워서 오 씨가 근무하는 해상치안상황실은 일본해상보안청에 순시선을 파견해 달라는 긴급 협조 요청을 보냈다. 조업 중에 선원이 그물에 걸려 바다에 빠져 실종되고, 배는 난파됐는데, 적극적인 한일협동구조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오 씨는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며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인종·국적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의 어민들이 함께 일하는 동해를 보며 “대립보다도 조화, 분열보다도 결합, ‘나’보다도 ‘우리’를 기조(基調)로 인간끼리 또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서로 지탱하면서, 모두 함께 번영해 가자” 라는 스승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더욱 깊이 납득한다.
배에 보면 조난 시에 보낼 수 있는 신호가 있다. 조난 신호를 발신하면 위성이 수신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으로 재발신하게 되어 있다. 동해의 경우, 한·중·일·러 4개국이 업무협조가 되어 있다고 한다.
오 씨는 이러한 공생의 관계가 좀더 넓고 깊게 각국 사람들 마음속에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염원을 담아, 오 씨는 영어를 포함해 새롭게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번 해봐야죠.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니! 영어·러시아어 프리토킹(free talking)을 목표로 전진하겠습니다!”
방황의 시간을, 인생의 사명을 찾는 시간으로 바꿔낸 오 씨의 도전이 새롭게 시작된다.
·태백권 남자부장
오웅희(unghee@) | 화광신문 : 13/11/29 1047호 발췌
한·중·일·러 4개국이 함께 일하는 곳
대립보다 공생의 바다가 되기를 꿈꾸며
오승민 씨는 태백시에 있는 동해지방해양경찰청 해상치안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경찰공무원이 된 이후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든 오 씨는 “보람된 일을 직업으로 가져서인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즐겁습니다”라고 말한다.
오 씨의 역할은 “해상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경비정 및 근무자에게 연결하고 급파해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범죄 사건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입니다. 해양 관련 사건사고시 122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이다. 오 씨의 기세 넘치고 막힘없는 대답에 동해의 해상이 더한층 안전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치안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임관 후 오 씨는 일반 경비정에서 3년, 해상에서 범죄예방 단속업무를 수행하는 형사기동정에 2년 근무했다. 당시의 임무는 음주 운항자도 단속하고, 불법으로 대게를 포획·유통·판매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는 일이었다. 또한 조업 중인 선박에 불이 났을 때 긴급 구조에 나서는 등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졌다.
그리고 초임 때 오 씨의 또 다른 임무는 동해안의 가장 큰 이슈인 독도 영해선을 지키는 일이었다. 이 또한 오 씨가 보람을 느꼈던 임무 중 하나라고 한다.
오 씨는 현장부서에서 시민들과 부딪치며 쌓은 힘든 경험과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현재 상황실로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라도 소홀함 없이 응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경찰관의 임무가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보니, 오 씨가 상황을 1초라도 늦게 전파할 경우 사람들이 사망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자를 후송시키는 등 긴급상황이 종료된 후 사건 경위를 조사하다 보면 1~2초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릴 뻔한 사건도 있었다. 특히 사고가 다발하는 여름철에는 더욱더 주의를 기울인다.
몸도 마음도 위풍당당한 오 씨이지만 21~22살 시절에는 깊은 방황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3 때 책만 보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되지 않아 상위권에 있던 성적이 급속도로 떨어졌으며 재수를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신심(信心)을 했었지만, 수능시험 실패는 어린 오 씨에게 큰 충격이었다. 신심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귀찮아 진 오 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떠한 인생을 살 것인가!’ 하고 오 씨의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한 지인이 군복무로 의무경찰에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 순간 오 씨에게 경찰공무원이라는 새로운 꿈이 떠올랐다. 군복무 중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오 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틈틈이 공부를 지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제대를 했을 때, 가정형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편 기울어져 가는 집안 상황은 오 씨가 신심 근본으로 일어설 수 있게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결과는 지금까지 없었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처럼, 승부사 기질이 있는 오 씨는 학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일류가 되겠다는 포부로 학회 남자부로서 활동도 해가며, 도서관에서 공부를 10시간 이상 거뜬히 지속했다.
“한참 공부하다 보니 순간 깨달았죠. 고3 때 집중이 안되던 병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을요!”
결국 오 씨는 1차부터 5차까지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2004년 12월 해양경찰공무원 공채 최종합격을 이뤄냈다. 이후 이듬해 4월 경찰공무원 임용을 받고 근무지도 고향인 동해로 발령났다. 그는 “‘정말 이곳이 내가 평생 사명을 해야 할 곳이구나’ 라고 자각했습니다”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던 그때의 소감을 전했다.
사실 오 씨는 해양경찰은 물론 경기도 쪽으로 육상경찰에도 지원했다고 한다. “육상 경찰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수영을 잘 못했습니다 하하!” 해양경찰에 지원할 때 수영테스트는 없지만, 합격을 한 이상 오 씨는 해양에서 인명구조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수영 훈련을 했다. 한번 하면 끝까지 해내는 승부사 기질 덕분에 오 씨는 수영 실력이 수준급이 됐으며 지금도 매일 수영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오 씨는 얼마 전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피해를 보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모든 사고가 그렇지만 물의 괴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공포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 씨는 삶을 달리한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생존자들이 앞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또한 오 씨가 최근 경험한 사고 중, 한일중간수역(독도 인근)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어선이 실종한 사고를 언급했다. 당시 사고 지점이 일본해상과도 가까워서 오 씨가 근무하는 해상치안상황실은 일본해상보안청에 순시선을 파견해 달라는 긴급 협조 요청을 보냈다. 조업 중에 선원이 그물에 걸려 바다에 빠져 실종되고, 배는 난파됐는데, 적극적인 한일협동구조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오 씨는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며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인종·국적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의 어민들이 함께 일하는 동해를 보며 “대립보다도 조화, 분열보다도 결합, ‘나’보다도 ‘우리’를 기조(基調)로 인간끼리 또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서로 지탱하면서, 모두 함께 번영해 가자” 라는 스승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더욱 깊이 납득한다.
배에 보면 조난 시에 보낼 수 있는 신호가 있다. 조난 신호를 발신하면 위성이 수신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으로 재발신하게 되어 있다. 동해의 경우, 한·중·일·러 4개국이 업무협조가 되어 있다고 한다.
오 씨는 이러한 공생의 관계가 좀더 넓고 깊게 각국 사람들 마음속에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염원을 담아, 오 씨는 영어를 포함해 새롭게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번 해봐야죠.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니! 영어·러시아어 프리토킹(free talking)을 목표로 전진하겠습니다!”
방황의 시간을, 인생의 사명을 찾는 시간으로 바꿔낸 오 씨의 도전이 새롭게 시작된다.
·태백권 남자부장
오웅희(unghee@) | 화광신문 : 13/11/29 104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