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방과후수업 바둑교사·바둑전문방송 캐스터 정다운
확신의 신심으로 도전! 바둑교사·캐스터 꿈 이뤄
우리말에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꾼이 두 신선이 두는 바둑에 정신이 팔려 구경하다가 그만 도낏자루가 썩을 만큼의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것. 정작 바둑을 ‘두는’ 사람도 아니고 ‘보는’ 사람까지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에는 ‘바둑’의 넘치는 즐거움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바둑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정다운 씨. 정 씨는 현재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의 바둑교사로, 또 바둑전문방송의 캐스터로 활약 중이다.
“9살 때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때는 바둑을 두는 게 마냥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정 씨는 중학생 시절 바둑선수로 생활하며 바둑기사로서의 꿈을 키워왔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바둑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고 한다. 한번 한번의 대국마다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엄한 승부의 세계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고.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자동차 회사에 취업하면서 어렸을 때 소중히 품었던 꿈과는 더욱 멀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입사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회사는 녹록하지 않았고, 업무 특성상 잦은 회식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가 ‘왜 좋은 재능을 썩히고 있느냐’는 말에 번쩍하고 ‘바둑’이 떠올랐어요.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그게 바둑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됐어요.”
이후 정 씨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 위해 매주 토요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의 바둑보조교사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꿈을 펼치기 위해 하루하루 조금씩 남는 시간의 빈틈을 잘 활용하여 바둑교사를 채용하는 초등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방과 후에 바둑수업이 있는 학교도 적을뿐더러, 경험이 적은 저에겐 그야말로 ‘도전’이었어요. 수십 곳을 지원해도 서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정 씨는 학회에서 단련받은 대로 ‘긍정’의 힘을 믿고, 기원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신심(信心)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나는 된다!’는 확고한 일념을 세우고 충실한 기원을 쏟고 있던 정 씨는 지난해 9월, 바둑부가 신설된 초등학교에서 드디어 바둑교사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지도자 경험도 전혀 없는 저에게 기회가 온 것을 보고, 바둑계의 다른 친구들은 정말 운이 좋다고 했어요. 전부 기원 덕분인데 말이죠.”
첫 시작이 어렵지 물꼬가 터진 이후에는 술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올해 청년대회를 앞두고 합창 프로그램에 임하며 바둑캐스터로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마음에 창제에 도전, 바라던 대로 지난 4월부터는 바둑리그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 캐스터로도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제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천은 바로 신심이었어요. 고민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창제를 통해 풍부해진 생명력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바둑에 얽힌 격언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바로 바둑을 인생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앞에 놓인 바둑 한 수 한 수에 최선을 다하며 ‘묘수’보다는 ‘정수’를 두며 승부를 만들어온 정다운 씨. 그녀의 다음 한 수가 자못 기대된다.
·관악권 당곡지부 女지구리더
김경화(kimkh@) | 화광신문 : 13/11/22 1046호 발췌
우리말에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꾼이 두 신선이 두는 바둑에 정신이 팔려 구경하다가 그만 도낏자루가 썩을 만큼의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것. 정작 바둑을 ‘두는’ 사람도 아니고 ‘보는’ 사람까지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에는 ‘바둑’의 넘치는 즐거움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바둑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정다운 씨. 정 씨는 현재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의 바둑교사로, 또 바둑전문방송의 캐스터로 활약 중이다.
“9살 때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때는 바둑을 두는 게 마냥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정 씨는 중학생 시절 바둑선수로 생활하며 바둑기사로서의 꿈을 키워왔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바둑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고 한다. 한번 한번의 대국마다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엄한 승부의 세계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고.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자동차 회사에 취업하면서 어렸을 때 소중히 품었던 꿈과는 더욱 멀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입사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회사는 녹록하지 않았고, 업무 특성상 잦은 회식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가 ‘왜 좋은 재능을 썩히고 있느냐’는 말에 번쩍하고 ‘바둑’이 떠올랐어요.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그게 바둑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됐어요.”
이후 정 씨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 위해 매주 토요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의 바둑보조교사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꿈을 펼치기 위해 하루하루 조금씩 남는 시간의 빈틈을 잘 활용하여 바둑교사를 채용하는 초등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방과 후에 바둑수업이 있는 학교도 적을뿐더러, 경험이 적은 저에겐 그야말로 ‘도전’이었어요. 수십 곳을 지원해도 서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정 씨는 학회에서 단련받은 대로 ‘긍정’의 힘을 믿고, 기원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신심(信心)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나는 된다!’는 확고한 일념을 세우고 충실한 기원을 쏟고 있던 정 씨는 지난해 9월, 바둑부가 신설된 초등학교에서 드디어 바둑교사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지도자 경험도 전혀 없는 저에게 기회가 온 것을 보고, 바둑계의 다른 친구들은 정말 운이 좋다고 했어요. 전부 기원 덕분인데 말이죠.”
첫 시작이 어렵지 물꼬가 터진 이후에는 술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올해 청년대회를 앞두고 합창 프로그램에 임하며 바둑캐스터로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마음에 창제에 도전, 바라던 대로 지난 4월부터는 바둑리그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 캐스터로도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제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천은 바로 신심이었어요. 고민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창제를 통해 풍부해진 생명력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바둑에 얽힌 격언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바로 바둑을 인생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앞에 놓인 바둑 한 수 한 수에 최선을 다하며 ‘묘수’보다는 ‘정수’를 두며 승부를 만들어온 정다운 씨. 그녀의 다음 한 수가 자못 기대된다.
·관악권 당곡지부 女지구리더
김경화(kimkh@) | 화광신문 : 13/11/22 1046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