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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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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관세사무소 관세사 박호신씨
경향관세사무소 관세사 박호신씨
이론 실무 겸비한 일류인재로 불법서환 증명할 터!

풍부한 실무 인정 대학교수・학원 명강사로 활약
장래 북 개방되면 ‘신의주’ 무대로 광포 새 길 열터

서해로 열린 하늘길로 하루 평균 2백60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하루 승객 4만 명과 화물 4천 톤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박호신(37)씨는 세계와 미래를 향한 포부를 크게 키우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건물들. 그 한켠에 자리잡은 경향관세사무소에서 박씨는 관세사로 일한다.
관세사란 무역과 통관관련분야 전문인으로서 국가 시험 등을 거쳐 자격을 부여 받으며, 화주에게 위탁 받아 갖가지 수출입 업무를 전문적으로 대행한다.

예를 들면 갖가지 수출입 물품을 국제협약으로 정해 놓은 상품 분류 체계에 따라 분류해 세액을 계산하고, 관세법에 의한 수출입 또는 반송 신고나 이와 관련된 절차를 이행하는 일 등이다.
특히 국가 간 자유무역이 확대돼 관세가 낮아지면 이를 대신해 검역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관 절차를 세세하게 알지 못해 생각지 않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전문가인 관세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관세사는 또 국가 공인이므로 업체의 불법적인 물품 통관을 방지하고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해야 하는 의무도 지닌다.
올해 초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천여 명의 관세사가 있으며, 최근에는 촉망 받는 직업 중 하나로 보도돼 사람들의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관세사 사무소를 열면 실질적인 업무는 주로 사무원이 합니다. 그러나 관세사는 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지도, 감독할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밑바닥부터 업무를 아주 세세하게 알고 모두 할 줄 알아야 하죠. 또 전문성으로 실력을 인정 받아야 더욱 폭넓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항상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박씨는 몇 년 전부터 이와 관련한 대학 공부를 시작. 지난해 박사과정을 거쳐 올해 풍부한 실무경험과 실력을 인정받아 파격적으로 건국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로 발탁돼 강단에도 서고 있다.

박씨는 이밖에도 1997년 관세사 자격증을 취득한 때부터 무역과 관세사와 관련한 각종 책을 펴내는 한편 각종 고시 학원에서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불법(佛法) 철학과 인생의 스승인 이케다(池田) SGI회장, 또 한국SGI 남자부로서 단련 받은 힘이 있습니다.”

박씨는 1985년 고1 무렵 신장염으로 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수가 찼다. 너무 심각해 의사마저 포기한 상태. 그러나 어머니를 따라 창제하며 이를 물리친 것을 계기로 신심(信心)을 시작했다.
한창 공부할 때 비록 실천은 약했지만 가슴에는 니치렌 불법(日蓮佛法)의 위대함 만큼은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 뒤 1993년 김포세관에서 관세사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철저하게 실무를 배우며 관세사 시험을 준비한 박씨는, 1996년 1차, 1997년 2차 시험에 합격하며 관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런데 크게 열릴 것만 같던 박씨의 삶은 생각대로만 되지 않았다.
한때 학원가에서 명강사라고 인정받았지만 학원이 부도나 강사료를 못 받거나, 책을 참 잘 썼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서점에서 팔리는 것은 자신의 책을 베낀 다른 출판사 책이었다.

이러한 숙업에 헤맬 즈음 박씨는 남자부 격려에 힘입어 진실한 신심의 눈을 뜨고 보성회를 비롯한 학회 활동에 힘썼다.
명함에 ‘한국SGI 보성회’라는 문구까지 넣어 우인에게 이케다(池田) SGI회장과 학회를 당당하게 소개하며 불법의 위대함을 즐겁게 알렸다. 또 몇 년 전에는 영종도로 들어와 교통이 열악한 지역 여건에도 광포의 사명에 최선을 다했다.

그 속에서 박씨 자신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일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박씨 자신이 굳건하게 일어선 것은 물론 아내도 신심의 협력자가 됐다.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함께 개업한 뒤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던 사업체를 큰 손해없이 말끔하게 정리하고 더욱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도 만났다. 생각지 못한 겸임교수로 채용된 것도 이와 때를 같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씨가 거둔 결실들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더 큰 미래를 향한 과정일 뿐이다.
“제 꿈은 명성 있는 대학 교수도, 성공한 사업가도 아닙니다. 영종도 광포를 시작으로 장래 북한을 거쳐 아시아로 묘법(妙法)이 넓혀지는 불법서환(佛法西還)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북한, 중국의 관세와 무역과 관련된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일류 전문가가 되어, 장래 언젠가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길을 열 때 신의주로 활동무대를 옮겨 이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광포의 길을 새롭게 열고 싶습니다.”


・제물포권 영종지부 부남자부장


이상도(sdlee@hknews.co.kr) | 화광신문 : 06/10/27 706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