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청소년재단 연수개발팀 이주영 씨
수년간 꿈꿔왔던 일하며 하루하루가 행복
‘국제교류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이는 수 년 동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이주영 씨가 결코 놓지 않았던 확고한 꿈이었다. 그리고 이 씨는 지금 그토록 꿈꾸던 일을 마음껏 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청소년 재단에서 다문화, 탈북자 중 9~24세의 법적 청소년을 지원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문화·탈북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절대 놓고 싶지 않았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요!”
길었던 7년 동안의 대학생활. 그리고 이어진 대학 연구소와 국가 연구원, 대학교 교직원 등의 비정규직 생활. 훌륭한 상사와 동료를 만나 견문도 크게 넓힐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바뀌어 마음에 묵직한 돌을 얹어 놓은 듯했다.
그래서 지난해 2월,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의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더 이상 나의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매지 말고, 스승의 구상과 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정규직 직장을 구하자’라는 다부진 각오로 취업 도전을 시작했다.
물론 굉장한 기세로 도전하는 속에 평소 꿈꿔왔던 국제교류업무를 할 수 있는 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에도 지원해봤지만 번번히 낙방하는 등 전진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좌절을 맛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혼자서는 처음의 각오를 끝까지 지속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마다 곁에서 ‘끝까지, 될 때까지 기원해 봅시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학회의 선배 간부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2월 간담포교전과 3월 청년대회, 그리고 7월 한국이케다화양회 5기생대회까지 제 각오를 다잡을 수 있는 도전의 마디들이 물샐틈없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의 다짐을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실패마저도 학회의 단련을 통해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며 분투를 거듭하는 속에 드디어 이 씨에게 청소년 지원기관 정규직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에 임한 끝에 5기생대회를 3일 앞두고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의 무대였기 때문에 즐겁고 환희 차게 업무에 임하고 있고, 그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익혔던 일들이 현재 업무를 진행하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어요. 덕분에 지난해 직원근무평가에서 입사 5개월밖에 안 되는 제가 20명의 직원 중 1등이라는 평가를 받아 연봉이 인상되는 승리의 결과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인생의 노트 한 장을 넘겨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한 이주영 씨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우선 학회 속에서 단련 받으며 체득한 긍정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직장 동료들과도 나누고 싶고, 제가 맡은 업무의 전문성을 키워 성과를 내며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될 결심입니다. 더 나아가서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또 다른 발판이 되어 훗날 국제기구에서 활약하는 날이 올 때까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나날이 성장해야죠!”
·용산권 지역여자부장
장선아(sajang@) | 화광신문 : 13/03/22 1013호 발췌
‘국제교류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이는 수 년 동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이주영 씨가 결코 놓지 않았던 확고한 꿈이었다. 그리고 이 씨는 지금 그토록 꿈꾸던 일을 마음껏 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청소년 재단에서 다문화, 탈북자 중 9~24세의 법적 청소년을 지원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문화·탈북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절대 놓고 싶지 않았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요!”
길었던 7년 동안의 대학생활. 그리고 이어진 대학 연구소와 국가 연구원, 대학교 교직원 등의 비정규직 생활. 훌륭한 상사와 동료를 만나 견문도 크게 넓힐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바뀌어 마음에 묵직한 돌을 얹어 놓은 듯했다.
그래서 지난해 2월,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의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더 이상 나의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매지 말고, 스승의 구상과 내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정규직 직장을 구하자’라는 다부진 각오로 취업 도전을 시작했다.
물론 굉장한 기세로 도전하는 속에 평소 꿈꿔왔던 국제교류업무를 할 수 있는 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에도 지원해봤지만 번번히 낙방하는 등 전진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좌절을 맛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혼자서는 처음의 각오를 끝까지 지속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마다 곁에서 ‘끝까지, 될 때까지 기원해 봅시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학회의 선배 간부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2월 간담포교전과 3월 청년대회, 그리고 7월 한국이케다화양회 5기생대회까지 제 각오를 다잡을 수 있는 도전의 마디들이 물샐틈없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의 다짐을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실패마저도 학회의 단련을 통해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며 분투를 거듭하는 속에 드디어 이 씨에게 청소년 지원기관 정규직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에 임한 끝에 5기생대회를 3일 앞두고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의 무대였기 때문에 즐겁고 환희 차게 업무에 임하고 있고, 그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익혔던 일들이 현재 업무를 진행하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어요. 덕분에 지난해 직원근무평가에서 입사 5개월밖에 안 되는 제가 20명의 직원 중 1등이라는 평가를 받아 연봉이 인상되는 승리의 결과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인생의 노트 한 장을 넘겨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한 이주영 씨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우선 학회 속에서 단련 받으며 체득한 긍정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직장 동료들과도 나누고 싶고, 제가 맡은 업무의 전문성을 키워 성과를 내며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될 결심입니다. 더 나아가서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또 다른 발판이 되어 훗날 국제기구에서 활약하는 날이 올 때까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나날이 성장해야죠!”
·용산권 지역여자부장
장선아(sajang@) | 화광신문 : 13/03/22 1013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