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박찬례 손가네 꼬리곰탕 대표
엄마가 만든 곰탕 맛…손님이 북적
고난의 때마다 신심근본으로 이겨내
변함 없는 광포 열정이 음식 맛 비결
소꼬리를 넣어 한참을 끓여 낸 진국 ‘꼬리곰탕’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국가대표 보양음식이다.
면역력이 저하되는 환절기에 어린이에게 좋고, 피로를 느끼는 수험생과 기운이 허해진 노인에게도 곰탕만한 것이 없다.
특히, 꼬리곰탕 주재료인 소꼬리는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골절,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
새벽 4시 30분.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 박찬례(67) 씨는 오늘 아침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가장 먼저 어제 찬물에 담근 소꼬리의 기름을 제거하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물을 끊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꼬리를 넣고 5분 정도 끊이고 나서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붓고 끊인다. 펄펄 끓는 국물에 떠 있는 기름을 걷어내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비로소 맛 좋은 ‘꼬리곰탕’이 완성된다.
“대충대충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제 몸이 피곤합니다. 우리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꼼꼼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에서 7년째 ‘손가네 꼬리곰탕’ 식당을 운영하는 박 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벽녘 조용했던 식당은 점심때가 되자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박 씨의 지극한 정성이 담긴 곰탕이 뚝배기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또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그가 직접 담근 김치는 이 식당의 별미이기도 하다.
“곰탕에 어울리는 김치와 깍두기를 담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소꼬리는 물론 새콤달콤한 김치를 만들고자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까다로운 재료 선택에 대해 장녀 손성미(수정권 고관지부 반담) 씨도 한마디 거든다.
“어머니는 손맛의 기본은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이라고 거듭 가르쳐 주세요. 파, 무, 배추, 소꼬리를 고르실 때 매의 눈으로 변하며 꼼꼼히 점검하시죠.”
박 씨는 꼼꼼하게 식당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제가 만든 곰탕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그러한 기원이 통했는지 단골손님들은 ‘엄마가 끊여주는 곰탕’으로 느껴진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손님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 광선유포를 위한 식당이라는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얼마 전 일이다. ‘행복드림지부총회’에 그동안 식당을 찾아온 단골손님들을 참석시켰다.
“‘신심즉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듯하고 인간성이 풍부해야 주변 사람에게 자신 있게 불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가 신심(信心)을 시작한 것은 1973년. 지독한 경제고로 창제를 시작했다.
초신의 공덕으로 그가 운영하던 호떡가게가 번창하게 됐다.
“동아중학교 앞에서 밀가루가 부족할 만큼 호떡이 잘 팔렸습니다. 남편의 건설업도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완전히 해결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운영하는 식당의 건물을 사게 됐다.
그는 모두가 어본존의 공덕임을 알고 늘 감사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던 2006년, 박 씨의 큰아들이 이혼하고 난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몸무게는 8kg 이상 빠지게 됐고,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그는 창제를 근본으로 다시 일어섰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기원한 순간부터 태양이 떠오른다. 희망의 기원이야말로 희망의 태양이다.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기원하고 극복해 경애를 열어간다. 이것이 니치렌불법의 번뇌즉보리의 궤도이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불법으로 지금의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손자와 손녀를 올바르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광포를 위해 살겠다고 굳게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품은 박 씨는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며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불법을 이야기했다.
장녀 손 씨는 “어머니는 힘들 때도,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신심으로 꿋꿋하게 인내하며 일에서도 학회의 사명에서도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광포의 열정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더욱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 지금부터다’라는 마음으로 힘차게 전진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며 자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수정권 고관지부 총합반담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2/11/23 998호 발췌
고난의 때마다 신심근본으로 이겨내
변함 없는 광포 열정이 음식 맛 비결
소꼬리를 넣어 한참을 끓여 낸 진국 ‘꼬리곰탕’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국가대표 보양음식이다.
면역력이 저하되는 환절기에 어린이에게 좋고, 피로를 느끼는 수험생과 기운이 허해진 노인에게도 곰탕만한 것이 없다.
특히, 꼬리곰탕 주재료인 소꼬리는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골절,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
새벽 4시 30분.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 박찬례(67) 씨는 오늘 아침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가장 먼저 어제 찬물에 담근 소꼬리의 기름을 제거하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물을 끊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꼬리를 넣고 5분 정도 끊이고 나서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붓고 끊인다. 펄펄 끓는 국물에 떠 있는 기름을 걷어내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비로소 맛 좋은 ‘꼬리곰탕’이 완성된다.
“대충대충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제 몸이 피곤합니다. 우리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꼼꼼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에서 7년째 ‘손가네 꼬리곰탕’ 식당을 운영하는 박 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벽녘 조용했던 식당은 점심때가 되자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박 씨의 지극한 정성이 담긴 곰탕이 뚝배기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또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그가 직접 담근 김치는 이 식당의 별미이기도 하다.
“곰탕에 어울리는 김치와 깍두기를 담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소꼬리는 물론 새콤달콤한 김치를 만들고자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까다로운 재료 선택에 대해 장녀 손성미(수정권 고관지부 반담) 씨도 한마디 거든다.
“어머니는 손맛의 기본은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이라고 거듭 가르쳐 주세요. 파, 무, 배추, 소꼬리를 고르실 때 매의 눈으로 변하며 꼼꼼히 점검하시죠.”
박 씨는 꼼꼼하게 식당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제가 만든 곰탕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그러한 기원이 통했는지 단골손님들은 ‘엄마가 끊여주는 곰탕’으로 느껴진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손님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 광선유포를 위한 식당이라는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얼마 전 일이다. ‘행복드림지부총회’에 그동안 식당을 찾아온 단골손님들을 참석시켰다.
“‘신심즉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듯하고 인간성이 풍부해야 주변 사람에게 자신 있게 불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가 신심(信心)을 시작한 것은 1973년. 지독한 경제고로 창제를 시작했다.
초신의 공덕으로 그가 운영하던 호떡가게가 번창하게 됐다.
“동아중학교 앞에서 밀가루가 부족할 만큼 호떡이 잘 팔렸습니다. 남편의 건설업도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완전히 해결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운영하는 식당의 건물을 사게 됐다.
그는 모두가 어본존의 공덕임을 알고 늘 감사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던 2006년, 박 씨의 큰아들이 이혼하고 난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몸무게는 8kg 이상 빠지게 됐고,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그는 창제를 근본으로 다시 일어섰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기원한 순간부터 태양이 떠오른다. 희망의 기원이야말로 희망의 태양이다.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기원하고 극복해 경애를 열어간다. 이것이 니치렌불법의 번뇌즉보리의 궤도이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불법으로 지금의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손자와 손녀를 올바르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광포를 위해 살겠다고 굳게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품은 박 씨는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며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불법을 이야기했다.
장녀 손 씨는 “어머니는 힘들 때도,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신심으로 꿋꿋하게 인내하며 일에서도 학회의 사명에서도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광포의 열정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더욱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 지금부터다’라는 마음으로 힘차게 전진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며 자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수정권 고관지부 총합반담
김기수(kimks@) | 화광신문 : 12/11/23 998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