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정연구센터 연구교수 유승민 씨
“교육자 되어 꿈ㆍ희망 심는 과학인 양성하고 싶어요!”
“꼭 공장같죠? 오늘 환상이 다 깨지실거예요.”
밝게 웃는 유승민 씨를 따라 들어선 곳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카이스트(KAIST: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과학기술원). 아직은 초봄의 캠퍼스라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하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자 이내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빽빽한 실험장비들 속에서 매서운 눈을 빛내며 연신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학생들. 명실공히 과학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메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71년 1월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을 전신으로, 1981년 1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통합되면서 탄생한 이곳은 오늘날 기술대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승민 씨는 이곳 카이스트 생명과학기술대학 내 생물공정연구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열정을 태우고 있다.
유 씨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분야는 ‘분자생물학적 기술을 이용한 질병진단 시스템 개발’이다. 흔히 우리가 들어본 DNA, RNA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자 염기서열에 담긴 유전정보를 이용해서 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몫이다. 정확한 조직의 병리적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조직을 분리하여 배양하고 확인하는 까다로운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것. 그러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함으로써 감염균에 대한 추적조사나, 환자의 유전정보 파손 및 돌연변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처럼 정확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이 시스템의 개발은 정말 중요한 과제다. 유 씨와 연구진은 병원과 연계하면서 실무에서 활용 가능한 장비와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듯 열정에 빠져 살아가는 그에게 신심은 어떤 의미일까?
“원동력이죠. 실제로 엄청난 원동력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뭐든지 그렇지만 언제나 잘 되는 경우는 없거든요. 실험같은 경우도 99% 실패하는 일이 다반삽니다. 미칠 것 같은 상황에도 끝까지 극복하고 견뎌야 불과 1% 안에서 성공이 좌우됩니다. 중간에서 포기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 신심은 굉장한 희망의 원천이 돼 줍니다.”
단호한 대답에 함부로 깨지기 어려운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이야기 속에서 그 확신이 얼마나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1% 가능성에서 ‘신심은 굉장한 희망의 원천’
석사·박사과정 조기에 마치는 반전 드라마 펼쳐
유 씨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이곳 대전에 내려온 것은 1999년. 그 전년에 일하던 병원 연구소로부터 카이스트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연을 맺은 교수가 제안해 주어 큰맘 먹고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할 것만 같았던 진학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해 두해 진학이 미뤄지더니 일반장학생 전형을 위해 옮긴 직장에서는 동료의 갈등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급기야 팀장의 모함으로 회사를 그만둘 위기까지 되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만 가득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릴 때부터 신심을 근본으로 성장했기에 언제나 창제와 활동으로 길을 열어 온 유 씨였다. 원인을 찾기 위해 창제를 거듭하는 가운데 그동안 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일념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심을 하면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와 일념이라는 것을 생명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마음이야말로 신심의 가장 큰 적임을 안 그는 일념 전체를 바꿨다. ‘반드시 된다. 반드시 하고 말겠습니다’라는 강한 일념이 유 씨의 생명을 채우자 상황은 믿을 수 없게 돌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를 팀장으로 승진시켜 주었고 그의 업무능력에 깊은 신뢰를 보내주게 됐다. 변화는 카이스트 대학원 면접에서도 느껴졌다. 면접관들은 “너 또 왔니? 너 대단하다”라며 핀잔 반, 칭찬 반으로 맞아주었지만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분위기는 그가 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너무 쉽게 느껴질 만큼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한에너지는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카이스트 생활이었지만 젊고 재기 넘치는 동료들에게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2년 걸리는 석사과정을 1년 반 만에 통과한 그는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박사과정조차 3년 반 만에 끝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면서 유승민 씨는 불법에서 말하는 ‘명익의 공덕’을 철저히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당장 일이 해결이 안 되면 앞이 막힌 듯 초조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반드시 변한다는 것. 이러한 확신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사명 활동을 해 나가는 데도 큰 힘이 된다는 유 씨는 좌담회 때면 동료나 우인들과 참석하기도 한다.
한 번은 같이 일하던 박사를 좌담회에 참석시킨 일이 있었다. 선뜻 이야기를 못 꺼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가 신심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좌담회에서 레크리에이션도 하며 순수하게 참석하던 그 박사는 최고 조건으로 해외연구소에 나가게 됐다.
“제가 볼 때는 틀림없이 공덕인데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하하.”
유승민 씨의 꿈은 교육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지성의 요람에 인성이 사라진 요즘. 학생들은 바쁜 교육과 연구 일정을 소화하느라 극단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이런 그들에게 단순한 연구뿐만 아니라 꿈과 인생의 희망을 심어주어 올바른 과학인으로 길러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당찬 포부다.
배시시 미소 짓는 유승민 씨의 모습에 순간순간을 진금의 시간으로 채워 가는 기쁨이 느껴졌다.
·서대전권 유성지부 반담
김태헌(uncle@hknews.co.kr) | 화광신문 : 12/03/16 964호 발췌
“꼭 공장같죠? 오늘 환상이 다 깨지실거예요.”
밝게 웃는 유승민 씨를 따라 들어선 곳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카이스트(KAIST: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과학기술원). 아직은 초봄의 캠퍼스라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하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자 이내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빽빽한 실험장비들 속에서 매서운 눈을 빛내며 연신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학생들. 명실공히 과학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메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71년 1월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을 전신으로, 1981년 1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통합되면서 탄생한 이곳은 오늘날 기술대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승민 씨는 이곳 카이스트 생명과학기술대학 내 생물공정연구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열정을 태우고 있다.
유 씨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분야는 ‘분자생물학적 기술을 이용한 질병진단 시스템 개발’이다. 흔히 우리가 들어본 DNA, RNA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자 염기서열에 담긴 유전정보를 이용해서 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몫이다. 정확한 조직의 병리적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조직을 분리하여 배양하고 확인하는 까다로운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것. 그러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함으로써 감염균에 대한 추적조사나, 환자의 유전정보 파손 및 돌연변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처럼 정확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이 시스템의 개발은 정말 중요한 과제다. 유 씨와 연구진은 병원과 연계하면서 실무에서 활용 가능한 장비와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듯 열정에 빠져 살아가는 그에게 신심은 어떤 의미일까?
“원동력이죠. 실제로 엄청난 원동력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뭐든지 그렇지만 언제나 잘 되는 경우는 없거든요. 실험같은 경우도 99% 실패하는 일이 다반삽니다. 미칠 것 같은 상황에도 끝까지 극복하고 견뎌야 불과 1% 안에서 성공이 좌우됩니다. 중간에서 포기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 신심은 굉장한 희망의 원천이 돼 줍니다.”
단호한 대답에 함부로 깨지기 어려운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이야기 속에서 그 확신이 얼마나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1% 가능성에서 ‘신심은 굉장한 희망의 원천’
석사·박사과정 조기에 마치는 반전 드라마 펼쳐
유 씨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이곳 대전에 내려온 것은 1999년. 그 전년에 일하던 병원 연구소로부터 카이스트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연을 맺은 교수가 제안해 주어 큰맘 먹고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할 것만 같았던 진학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해 두해 진학이 미뤄지더니 일반장학생 전형을 위해 옮긴 직장에서는 동료의 갈등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급기야 팀장의 모함으로 회사를 그만둘 위기까지 되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만 가득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릴 때부터 신심을 근본으로 성장했기에 언제나 창제와 활동으로 길을 열어 온 유 씨였다. 원인을 찾기 위해 창제를 거듭하는 가운데 그동안 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일념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심을 하면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와 일념이라는 것을 생명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마음이야말로 신심의 가장 큰 적임을 안 그는 일념 전체를 바꿨다. ‘반드시 된다. 반드시 하고 말겠습니다’라는 강한 일념이 유 씨의 생명을 채우자 상황은 믿을 수 없게 돌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를 팀장으로 승진시켜 주었고 그의 업무능력에 깊은 신뢰를 보내주게 됐다. 변화는 카이스트 대학원 면접에서도 느껴졌다. 면접관들은 “너 또 왔니? 너 대단하다”라며 핀잔 반, 칭찬 반으로 맞아주었지만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분위기는 그가 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너무 쉽게 느껴질 만큼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한에너지는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카이스트 생활이었지만 젊고 재기 넘치는 동료들에게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2년 걸리는 석사과정을 1년 반 만에 통과한 그는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박사과정조차 3년 반 만에 끝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면서 유승민 씨는 불법에서 말하는 ‘명익의 공덕’을 철저히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당장 일이 해결이 안 되면 앞이 막힌 듯 초조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반드시 변한다는 것. 이러한 확신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사명 활동을 해 나가는 데도 큰 힘이 된다는 유 씨는 좌담회 때면 동료나 우인들과 참석하기도 한다.
한 번은 같이 일하던 박사를 좌담회에 참석시킨 일이 있었다. 선뜻 이야기를 못 꺼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가 신심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좌담회에서 레크리에이션도 하며 순수하게 참석하던 그 박사는 최고 조건으로 해외연구소에 나가게 됐다.
“제가 볼 때는 틀림없이 공덕인데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하하.”
유승민 씨의 꿈은 교육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지성의 요람에 인성이 사라진 요즘. 학생들은 바쁜 교육과 연구 일정을 소화하느라 극단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이런 그들에게 단순한 연구뿐만 아니라 꿈과 인생의 희망을 심어주어 올바른 과학인으로 길러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당찬 포부다.
배시시 미소 짓는 유승민 씨의 모습에 순간순간을 진금의 시간으로 채워 가는 기쁨이 느껴졌다.
·서대전권 유성지부 반담
김태헌(uncle@hknews.co.kr) | 화광신문 : 12/03/16 964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