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박종희 씨
환자의 고통 보듬고 함께나누며 행복 찾아줘
''도전은 행복'' 이타의 삶 위해 ''치료분야'' 도전!
마음에도 반창고를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을 놓을 만큼 힘들고 상처 받은 순간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하게 된다. 박종희 씨는 다양한 삶의 생채기로 아픈 이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며 희망의 길을 찾아주는 마법사다.
경북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안녕하세요.” 박 씨가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그는 이곳에서 정신적, 인지적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심리적 원인을 진단하는 임상심리사로 일한다.
흔히 심리치료사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심리치료사에 반해, 임상심리사는 먼저 그들이 가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주로 정신과에서 일하고, 최근 학교, 병무청, 법원, 교도소와 같은 관공서나 개인 상담센터, 기업 인사 담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박 씨는 자신을 환자가 마음의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휴지통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휴지통이 가득 차서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런 휴지통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최고의 긍정 에너지로만 충전할 수 있는 신심활동은 제게 활력충전소랍니다.”
사실 박 씨가 이렇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버거운 도전으로 채워졌던 그의 인생에서 신심이 항상 승리의 원천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녀가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정치경제학부였다. 꿈 많던 중학교 시절 이케다 SGI 회장의 ‘청춘대화’를 읽으며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도맡아 해주던 때부터 심리학을 꿈꿔온 그였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 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원치 않은 선택에 의욕이 있을 리 없었고, 신심과도 멀어진 박 씨는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늘 꿈꾸던,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던 중 늘 제자 한명 한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케다 SGI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박 씨. 그는 기숙사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창제를 다시 시작했고, 교내 좌담회 활동을 하며 신심 근본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대하던 부모님의 응원 속에 심리학으로 전과하는 첫발을 이뤄냈다.
하지만 도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며 더 이상 부모님의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결의한 박 씨의 생활은 험난했다. 하루 한 끼만 먹기 일쑤였고, 매일 4시간 이상의 통학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언제나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행복하게 공부하는 가운데 학과장의 추천으로 조교에 발탁되었다. 가난한 고학생이던 자신이 어려움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으로 변하는 체험 속에서 박 씨는 불법의 불가사의함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 나가던 중 임상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개인이 경험하는 부적응적 문제와 그러한 문제를 가진 개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의 성질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진단하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그녀는 더욱 거세게 도전을 일으켜 갔다.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의욕에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들도 힘들다는 정신보건요원 수련과정을 대학원생 자격으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자네는 아직 석사과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우리 병원에 지원했나? 여기는 다들 석사 졸업생들인데…”라는 면접관에게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인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가는 길에는 막힘은 없다’라고…” 그리고 며칠 후 22: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수석합격을 차지한 박 씨.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결과였다.
그렇게 시작된 수련기간.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승리하기 위해 불법(佛法)이 있다. 어디서 승리하는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승리해야 한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새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박 씨는 자격시험도 합격하고 임상심리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 이곳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에 와서 그녀의 열정은 더욱 불탔다. 임상심리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 성실히 일했고, 전임자보다 몇배의 수익을 올리며 연봉이 상승되고 사립대학 교직원이라는 신분도 보장되는 상황으로 바꿔냈다.
그리고 못다한 석사학위에 도전한 박 씨. 한번 한번의 도전에 언제나 모든 열정을 쏟아 온 그의 노력은 마침내 지난해 석사학위 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뇌신경심리학계의 세계적인 학술지 ‘Neuropsychologia’에 게재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박 씨는 이제 진단을 넘어서 치료 분야까지 도전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사명이 있는 곳의 여자부원들과 연대를 넓히며 직장과 학회 속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삶을 위해 하루하루 기쁘게 노력하고 있다는 그에게 ‘도전’은 ‘행복’과 같은 단어처럼 보였다.
지난해 계명대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순간이 어쩌면 우리가 가장 왕성하게 반짝이는 순간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우리는 늙어갑니다. 주어진 길을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길 바랍니다.”
타인의 행복을 찾아주는 자신의 길로써 보은의 인생을 살겠다는 박종희 씨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아마도 혼자만의 꿈이 아닌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보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병원 앞뜰의 꽃들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남구미권 구평지부여자부장
김태헌(uncle@hknews.co.kr) | 화광신문 : 11/11/18 949호 발췌
''도전은 행복'' 이타의 삶 위해 ''치료분야'' 도전!
마음에도 반창고를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을 놓을 만큼 힘들고 상처 받은 순간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하게 된다. 박종희 씨는 다양한 삶의 생채기로 아픈 이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며 희망의 길을 찾아주는 마법사다.
경북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안녕하세요.” 박 씨가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그는 이곳에서 정신적, 인지적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심리적 원인을 진단하는 임상심리사로 일한다.
흔히 심리치료사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심리치료사에 반해, 임상심리사는 먼저 그들이 가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주로 정신과에서 일하고, 최근 학교, 병무청, 법원, 교도소와 같은 관공서나 개인 상담센터, 기업 인사 담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박 씨는 자신을 환자가 마음의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휴지통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휴지통이 가득 차서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런 휴지통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최고의 긍정 에너지로만 충전할 수 있는 신심활동은 제게 활력충전소랍니다.”
사실 박 씨가 이렇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버거운 도전으로 채워졌던 그의 인생에서 신심이 항상 승리의 원천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녀가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정치경제학부였다. 꿈 많던 중학교 시절 이케다 SGI 회장의 ‘청춘대화’를 읽으며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도맡아 해주던 때부터 심리학을 꿈꿔온 그였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 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원치 않은 선택에 의욕이 있을 리 없었고, 신심과도 멀어진 박 씨는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늘 꿈꾸던,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던 중 늘 제자 한명 한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케다 SGI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박 씨. 그는 기숙사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창제를 다시 시작했고, 교내 좌담회 활동을 하며 신심 근본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대하던 부모님의 응원 속에 심리학으로 전과하는 첫발을 이뤄냈다.
하지만 도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며 더 이상 부모님의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결의한 박 씨의 생활은 험난했다. 하루 한 끼만 먹기 일쑤였고, 매일 4시간 이상의 통학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언제나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행복하게 공부하는 가운데 학과장의 추천으로 조교에 발탁되었다. 가난한 고학생이던 자신이 어려움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으로 변하는 체험 속에서 박 씨는 불법의 불가사의함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 나가던 중 임상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개인이 경험하는 부적응적 문제와 그러한 문제를 가진 개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의 성질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진단하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그녀는 더욱 거세게 도전을 일으켜 갔다.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의욕에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들도 힘들다는 정신보건요원 수련과정을 대학원생 자격으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자네는 아직 석사과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우리 병원에 지원했나? 여기는 다들 석사 졸업생들인데…”라는 면접관에게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인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가는 길에는 막힘은 없다’라고…” 그리고 며칠 후 22: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수석합격을 차지한 박 씨.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결과였다.
그렇게 시작된 수련기간.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승리하기 위해 불법(佛法)이 있다. 어디서 승리하는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승리해야 한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새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박 씨는 자격시험도 합격하고 임상심리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 이곳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에 와서 그녀의 열정은 더욱 불탔다. 임상심리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 성실히 일했고, 전임자보다 몇배의 수익을 올리며 연봉이 상승되고 사립대학 교직원이라는 신분도 보장되는 상황으로 바꿔냈다.
그리고 못다한 석사학위에 도전한 박 씨. 한번 한번의 도전에 언제나 모든 열정을 쏟아 온 그의 노력은 마침내 지난해 석사학위 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뇌신경심리학계의 세계적인 학술지 ‘Neuropsychologia’에 게재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박 씨는 이제 진단을 넘어서 치료 분야까지 도전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사명이 있는 곳의 여자부원들과 연대를 넓히며 직장과 학회 속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삶을 위해 하루하루 기쁘게 노력하고 있다는 그에게 ‘도전’은 ‘행복’과 같은 단어처럼 보였다.
지난해 계명대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순간이 어쩌면 우리가 가장 왕성하게 반짝이는 순간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우리는 늙어갑니다. 주어진 길을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길 바랍니다.”
타인의 행복을 찾아주는 자신의 길로써 보은의 인생을 살겠다는 박종희 씨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아마도 혼자만의 꿈이 아닌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보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병원 앞뜰의 꽃들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남구미권 구평지부여자부장
김태헌(uncle@hknews.co.kr) | 화광신문 : 11/11/18 949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