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덴소풍성㈜ 전기기술팀장 임호섭씨
덴소풍성㈜ 전기기술팀장 임호섭씨(창원권 용지지역 부지역장)
친환경분야 자동차부품 개발에 도전 성공확신!
1백개 제품개발 자동차 전기기술분야 일인자로
‘기원은…이뤄진다’ 확신 최고 기술개발에 전력
“자동차 전기장치는 인체의 신경계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자동차가 본래 가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산업의 선두주자인 덴소풍성㈜에서 17년동안 한 우물을 판 임호섭(44) 전기기술팀장은 자동차에서 전기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팀원 17명을 이끌고 전장제품을 설계・개발하며 회사 매출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그의 일상은 치열하다. 날마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보통 밤 10시까지 일한다. 제품 개발에 매달리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한 달에 국내외 출장이 열흘이나 된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를 오가며 1년동안 만나는 사람만도 3백 명이 넘는다. 한때 명함을 4종류나 갖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국비를 지원받은 3가지 제품을 포함해 1백 개 이상의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엔지니어다. 경력이나 실력 면에서 그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회사에서도 막히는 일만 생기면 그를 찾는 바람에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들 중 가장 애착을 갖는 제품은 지난 2004년 개발한 ‘고출력 경량화 발전기’다.
“기존 발전기에 비해 출력은 훨씬 높으면서도 크기가 작아요. 경쟁업체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기술이지요. 개발에만 꼬박 1년이 걸렸어요.”
그는 이 발전기를 개발하기 위해 팀원들과 일주일에 2, 3일씩 밤을 새웠다. 팀원들 중에는 집에서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팀장으로서 어떻게든 팀원들을 격려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개발은 멋지게 성공했고 팀원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회사에서는 이후 연간 자동차 60만대의 수요를 충족시키며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를 표창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먼저 기초부터 스스로 터득하며 쌓은 남다른 기술력이다. 1989년 공채 1기로 전기기술팀에 입사하니 기술을 배울 선배도 없었다. 처음에는 일본 제품을 베끼며 기초를 배웠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선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떤 업체라도 찾아갔다. 이렇게 17년 동안 한 분야에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은 덕분에 지금은 자동차 전기기술 분야에서 당당히 국내 일인자로 자부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는 솔선수범이다. 언젠가 팀원을 데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실험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이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팀원도 손을 쓰지 못해 난처해 하는 상황이었다. 순간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차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현대자동차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팀원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는 “위에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팀원들과 똑같이 밤새며 고생해야 팀이 단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와 7년간 일한 신경호 과장은 “팀장님은 워낙 추진력이 좋으셔서 남들이 안 된다는 제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팀원들에게도 워낙 잘 해주세요”라며 그를 평했다. 신 과장은 또 그에게서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일을 추진하는 지혜와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을 꼭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학회에서 가정방문을 하고 개인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학회에서 배운 그대로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대화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는 “기원은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깊이 확신한다.
입사 후 가장 어려웠던 때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던 1998년. 회사에서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이에 따라 그도 일주일에 4일씩 철야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때 아내 강선옥씨의 기원과 도움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요즘은 일어,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는 경험과 실력 면에서는 최고를 자부하지만, 역시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 기술과 품질로 세계 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부터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모토를 내걸고 달려온 그는 학회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며 힘든 여건에 지지 않고 도전한다. 회합조차 참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쁠 때가 많지만 어떻게든 회원들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움직이다.
“앞으로 친환경 분야인 하이브리드카나 수소자동차 부품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6/10/13 704호 발췌
덴소풍성㈜ 전기기술팀장 임호섭씨(창원권 용지지역 부지역장)
친환경분야 자동차부품 개발에 도전 성공확신!
1백개 제품개발 자동차 전기기술분야 일인자로
‘기원은…이뤄진다’ 확신 최고 기술개발에 전력
“자동차 전기장치는 인체의 신경계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자동차가 본래 가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산업의 선두주자인 덴소풍성㈜에서 17년동안 한 우물을 판 임호섭(44) 전기기술팀장은 자동차에서 전기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팀원 17명을 이끌고 전장제품을 설계・개발하며 회사 매출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그의 일상은 치열하다. 날마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보통 밤 10시까지 일한다. 제품 개발에 매달리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한 달에 국내외 출장이 열흘이나 된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를 오가며 1년동안 만나는 사람만도 3백 명이 넘는다. 한때 명함을 4종류나 갖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국비를 지원받은 3가지 제품을 포함해 1백 개 이상의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엔지니어다. 경력이나 실력 면에서 그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회사에서도 막히는 일만 생기면 그를 찾는 바람에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들 중 가장 애착을 갖는 제품은 지난 2004년 개발한 ‘고출력 경량화 발전기’다.
“기존 발전기에 비해 출력은 훨씬 높으면서도 크기가 작아요. 경쟁업체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기술이지요. 개발에만 꼬박 1년이 걸렸어요.”
그는 이 발전기를 개발하기 위해 팀원들과 일주일에 2, 3일씩 밤을 새웠다. 팀원들 중에는 집에서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팀장으로서 어떻게든 팀원들을 격려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개발은 멋지게 성공했고 팀원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회사에서는 이후 연간 자동차 60만대의 수요를 충족시키며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를 표창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먼저 기초부터 스스로 터득하며 쌓은 남다른 기술력이다. 1989년 공채 1기로 전기기술팀에 입사하니 기술을 배울 선배도 없었다. 처음에는 일본 제품을 베끼며 기초를 배웠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선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떤 업체라도 찾아갔다. 이렇게 17년 동안 한 분야에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은 덕분에 지금은 자동차 전기기술 분야에서 당당히 국내 일인자로 자부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는 솔선수범이다. 언젠가 팀원을 데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실험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이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팀원도 손을 쓰지 못해 난처해 하는 상황이었다. 순간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차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현대자동차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팀원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는 “위에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팀원들과 똑같이 밤새며 고생해야 팀이 단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와 7년간 일한 신경호 과장은 “팀장님은 워낙 추진력이 좋으셔서 남들이 안 된다는 제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팀원들에게도 워낙 잘 해주세요”라며 그를 평했다. 신 과장은 또 그에게서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일을 추진하는 지혜와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을 꼭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학회에서 가정방문을 하고 개인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학회에서 배운 그대로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대화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는 “기원은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깊이 확신한다.
입사 후 가장 어려웠던 때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던 1998년. 회사에서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이에 따라 그도 일주일에 4일씩 철야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때 아내 강선옥씨의 기원과 도움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요즘은 일어,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는 경험과 실력 면에서는 최고를 자부하지만, 역시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 기술과 품질로 세계 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부터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모토를 내걸고 달려온 그는 학회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며 힘든 여건에 지지 않고 도전한다. 회합조차 참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쁠 때가 많지만 어떻게든 회원들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움직이다.
“앞으로 친환경 분야인 하이브리드카나 수소자동차 부품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6/10/13 704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