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장애딛고 ‘공인중개사’로 맹활약 신심은 ‘행복인생’ 대도!
강성한 신심으로 인간승리 장애인에게 용기·희망을
묘법 위대함 증명하며 용기의 신심으로 행복 열어
나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고열에 시달리며 전신마비를 앓았다.
딸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부모님은 어린 나를 업고 전국을 백방으로 돌며 치료법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결국 장애를 갖게 됐다.
늘 집안에 갇혀 외롭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나를 가엾게 여긴 옆집 아주머니가 신심(信心)을 전했고 1977년 5월에 입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면 건강해진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순수하게 창제를 시작했다.
창제를 하기만 하면 이상하게 양쪽 다리가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때 마다 머리빗으로 긁어가면서도 창제를 지속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어느 날, 한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던 다리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다리가 전보다 부쩍 굵고 튼튼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 내 모습에 불법(佛法)의 위대한 힘을 느낀 어머니는 그 동안 의지해 왔던 무속신앙에서 벗어나 신심에 힘쓰기 시작했다.
신심을 하면서 전보다 몸이 많이 튼튼해졌지만 가장 기쁜 것은 마음이 견고해졌다는 점이다.
장애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관하는 것 대신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고, ‘어서(御書)’에서 온갖 고난을 꿋꿋이 이겨낸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강인한 의지를 배우며 마음을 단련했다. 덕분에 마음의 건강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하지만 전신마비의 후유증으로 얻은 장애는 일반 소아마비 장애보다 심각해 거동에 제약이 많았다. 결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모든 교육과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이 늘 아쉬웠던 터라 2007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같은 반 회원을 따라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생활과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공부라고는 집에서 책 읽는 것이 전부였던 내게 여러 가지 법률 용어는 낯설기만 했다.
손이 불편해 필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휠체어를 타고 학원을 오가는 것 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대 지지 않겠다. 내게는 신심이 있다”라고 다짐하며 매일 학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불편한 손을 쓰는 대신 녹음기를 사용해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집에서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고 또 들으며 2배, 3배 노력했다.
혹시나 나약한 자신과 타협해 신심을 놓칠까 싶어 더욱 착실히 근행창제를 실천하며 회합에도 모두 참석했다.
고생만 한다고 만류하면서도 어머니는 매일 내 곁에서 함께 창제해 주었다.
이윽고 한번의 불합격을 거쳐, 모의고사 전국 4등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2008년 10월 공인중개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뛸 듯이 기뻤다. 정말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법의 위대함을 뼛속 깊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2009년 6월에 공인중개업을 시작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계약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어서 1252쪽)라는 성훈을 떠올리며 더욱 창제에 면려했다.
회원에게 틈틈이 문자로 안부를 전하고 일요일에는 가정방문을 하며 광포 사명에도 매진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첫 계약을 성사시키고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께 용돈을 드렸다.
내가 드린 돈봉투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어머니의 모습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과 환희를 느꼈다.
“공부도 못 가르치고 해준 것이 없다”라고 늘 미안해 하며 나를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준 어머니. 딸의 몫까지 더욱 땀 흘리며 화광회 활동에 힘쓰는 어머니. 딸을 위해서 당신이 더 건강해야 한다며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 어머니에게 꿋꿋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이제 마음 놓으시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얼마 전 큰 거래가 성사돼 높은 수익을 내면서 내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하루하루를 감사의 창제로 채우던 중, 며칠 전 또 한번 숙명전환의 기회가 찾아왔다.
가슴에서 딱딱한 멍울이 잡혀 병원을 찾았는데 “아무리 커도 암이 아닌 혹이 있는 반면 작아도 악성 종양인 혹이 있는데 환자분의 혹은 악성 종양인 듯 합니다.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직 병으로 고통 받을 숙업이 남았다면 신심으로 바꾸면 된다. 반드시 신심의 실증을 만들겠다’며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기원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암이 아닌 단순한 혹입니다”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불법에 대한 확신을 더욱 깊게 다졌다.
이런 내 모습에 여러 가지 고난으로 힘들어 하던 친구도 입회를 결심해 불법의 승리철학을 배우며 열심히 신심에 면려하고 있다.
비록 장애의 몸이지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신심을 통해 배웠고, 평생 자신을 비관하며 살 숙명을 희망찬 인생으로 바꿀 수 있었음에 한 없이 감사하다.
내게 장애는 오히려 행운이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2배, 3배의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인생을 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 가족과 회원 그리고 인생의 스승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더욱 광포 사명에 충실히 도전하겠다. 특히 나를 위해 평생 헌신한 어머니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지는 것과 같다”(어서 1598쪽)라는 성훈을 되새기며 마음이 병들고 가난에 괴로워하는 이웃에게 행복해지는 신심을 전하고, 더욱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사회 속에서 승리의 실증을 만드는 행복여왕이 되겠다.
박찬남 강서권 발산지부 부반담
() | 화광신문 : 10/03/12 867호 발췌
묘법 위대함 증명하며 용기의 신심으로 행복 열어
나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고열에 시달리며 전신마비를 앓았다.
딸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부모님은 어린 나를 업고 전국을 백방으로 돌며 치료법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결국 장애를 갖게 됐다.
늘 집안에 갇혀 외롭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나를 가엾게 여긴 옆집 아주머니가 신심(信心)을 전했고 1977년 5월에 입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면 건강해진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순수하게 창제를 시작했다.
창제를 하기만 하면 이상하게 양쪽 다리가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때 마다 머리빗으로 긁어가면서도 창제를 지속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어느 날, 한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던 다리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다리가 전보다 부쩍 굵고 튼튼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 내 모습에 불법(佛法)의 위대한 힘을 느낀 어머니는 그 동안 의지해 왔던 무속신앙에서 벗어나 신심에 힘쓰기 시작했다.
신심을 하면서 전보다 몸이 많이 튼튼해졌지만 가장 기쁜 것은 마음이 견고해졌다는 점이다.
장애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관하는 것 대신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고, ‘어서(御書)’에서 온갖 고난을 꿋꿋이 이겨낸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강인한 의지를 배우며 마음을 단련했다. 덕분에 마음의 건강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하지만 전신마비의 후유증으로 얻은 장애는 일반 소아마비 장애보다 심각해 거동에 제약이 많았다. 결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모든 교육과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이 늘 아쉬웠던 터라 2007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같은 반 회원을 따라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생활과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공부라고는 집에서 책 읽는 것이 전부였던 내게 여러 가지 법률 용어는 낯설기만 했다.
손이 불편해 필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휠체어를 타고 학원을 오가는 것 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대 지지 않겠다. 내게는 신심이 있다”라고 다짐하며 매일 학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불편한 손을 쓰는 대신 녹음기를 사용해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집에서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고 또 들으며 2배, 3배 노력했다.
혹시나 나약한 자신과 타협해 신심을 놓칠까 싶어 더욱 착실히 근행창제를 실천하며 회합에도 모두 참석했다.
고생만 한다고 만류하면서도 어머니는 매일 내 곁에서 함께 창제해 주었다.
이윽고 한번의 불합격을 거쳐, 모의고사 전국 4등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2008년 10월 공인중개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뛸 듯이 기뻤다. 정말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법의 위대함을 뼛속 깊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2009년 6월에 공인중개업을 시작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계약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어서 1252쪽)라는 성훈을 떠올리며 더욱 창제에 면려했다.
회원에게 틈틈이 문자로 안부를 전하고 일요일에는 가정방문을 하며 광포 사명에도 매진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첫 계약을 성사시키고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께 용돈을 드렸다.
내가 드린 돈봉투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어머니의 모습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과 환희를 느꼈다.
“공부도 못 가르치고 해준 것이 없다”라고 늘 미안해 하며 나를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준 어머니. 딸의 몫까지 더욱 땀 흘리며 화광회 활동에 힘쓰는 어머니. 딸을 위해서 당신이 더 건강해야 한다며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 어머니에게 꿋꿋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이제 마음 놓으시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얼마 전 큰 거래가 성사돼 높은 수익을 내면서 내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하루하루를 감사의 창제로 채우던 중, 며칠 전 또 한번 숙명전환의 기회가 찾아왔다.
가슴에서 딱딱한 멍울이 잡혀 병원을 찾았는데 “아무리 커도 암이 아닌 혹이 있는 반면 작아도 악성 종양인 혹이 있는데 환자분의 혹은 악성 종양인 듯 합니다.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직 병으로 고통 받을 숙업이 남았다면 신심으로 바꾸면 된다. 반드시 신심의 실증을 만들겠다’며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기원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암이 아닌 단순한 혹입니다”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불법에 대한 확신을 더욱 깊게 다졌다.
이런 내 모습에 여러 가지 고난으로 힘들어 하던 친구도 입회를 결심해 불법의 승리철학을 배우며 열심히 신심에 면려하고 있다.
비록 장애의 몸이지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신심을 통해 배웠고, 평생 자신을 비관하며 살 숙명을 희망찬 인생으로 바꿀 수 있었음에 한 없이 감사하다.
내게 장애는 오히려 행운이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2배, 3배의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인생을 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 가족과 회원 그리고 인생의 스승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더욱 광포 사명에 충실히 도전하겠다. 특히 나를 위해 평생 헌신한 어머니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지는 것과 같다”(어서 1598쪽)라는 성훈을 되새기며 마음이 병들고 가난에 괴로워하는 이웃에게 행복해지는 신심을 전하고, 더욱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사회 속에서 승리의 실증을 만드는 행복여왕이 되겠다.
박찬남 강서권 발산지부 부반담
() | 화광신문 : 10/03/12 86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