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감독국 선임상담역 권동선씨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금융감독원은 각 금융기관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금융소비자에게는 신문고의 대상이다.
금융시장의 앞을 내다보고 폭넓은 시야로 금융기관을 감독하며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위치에 서서 억울함이나 불편사항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금융관련 전문가들의 집합소이자 많은 금융인들이 최종 종착점으로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숱한 역경 속에서도 결코 지는 법 없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눈 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스승의 마음을 실천하면서 꿈의 종착점, 금융감독원에 발을 들여놓은 이가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부터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감독국 선임상담역으로 근무중인 권동선씨.
현재 권씨가 주로 맡은 업무는 은행 전문 상담이며 금융소비자 상담도 함께 맡아 처리한다. 그 어떤 부서보다 시중 은행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불편사항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러 오는 고객을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까다로운 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권씨는 그 동안 사회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며 배운 전문 지식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불법 철학을 실천할 수 있기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고 말한다.
특히 이러한 밝고 긍정적인 업무 태도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안에서 일하는 청소 아줌마와 경비직원, 아르바이트생부터 간부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밝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권씨의 모습에 주위에서는 ‘발 넓은 사람, 인간성 풍부한 사람, 그리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에 대해 권씨는 “지난날 아픔이 다른 이의 마음을 더욱 잘 헤아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끝까지 배워라’ ‘끝까지 지지 마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지금 이렇게 사회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견고한 실력으로 쌓였습니다”고 말한다.
태양이 밝게 빛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다. 그림자가 가장 짙을 때 태양도 가장 빛난다. 둘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다. 권씨가 지금처럼 밝게 빛날 수 있는 것 역시 짙고도 짙은 괴로움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권씨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 잘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공부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환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에 합격을 하고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금융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1992년 은행에 입사해 2002년까지 10년을 근무했다. 그 기간 동안 지점과 본점을 두루 거치며 세금, 공과, 예금 상담 등 수신업무부터 외환과 카드 업무, 그리고 경력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다는 제예금계 업무까지 섭렵했다.
이렇게 권씨가 차곡차곡 실력을 쌓으며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급기야 의식을 잃는 지경까지 갔다. 모두가 말렸지만 권씨는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병수 발에 매달렸다.
어머니는 생사를 오가기를 수 차례. 지칠 법도 했지만 오히려 권씨는 일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돌보고 가족을 돌보며 어머니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고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무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병원 관계자 분들이 고마워 보은의 마음으로 불법대화도 실천했어요.”
또 권씨는 오랫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대학 공부도 틈틈이 해 졸업하는 등 자신의 꿈을 향해서도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병수발은 자그마치 7년이나 이어졌다.
어머니도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오랫동안 권씨의 발목을 붙잡았던 일체의 환경도 행복의 방향으로 전환되었지만 다시 사회에 나가 활약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의 무게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7년이라는 시간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권씨의 지지 않는 용기의 마음이 ‘도저히 무리다’고 했던 모두의 생각을 불식시켰다. 보란 듯이 은행에 취직, 사원으로 지원했음에도 과거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대리로 승진하고 수신책임자 업무까지 맡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물론 오랜 기간 현장 업무를 쉬었던 권씨에게 파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사발령이었기에 주위의 시기와 질투, 오해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권씨는 더욱 자신의 실력을 쌓고 한계를 부수는 채찍질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2년 여 동안 후회 없는 도전을 하고 은행을 퇴사했다. 그 뒤 우연한 기회에 금융감독원에서 처음으로 기존에는 각 은행사에서 직원을 파견했던 상담 업무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고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입사를 지원한 권씨는 퇴사 2개월이 채 안 되어 당당히 금융감독원에 입사하게 됐다.
권동선씨는 “돌이켜보면 모두가 반드시 나의 성장에 필요한 괴로움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장을 위해 앞으로 전진할수록 어려움도 나오겠지만 ‘대난이 오면 대선이 온다’는 성훈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의심하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가겠습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숙명으로 고통 받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승리의 결과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
·금천권 가산지부 총합지부여자부장
화광신문 : 11/05/13 924호 발췌
금융시장의 앞을 내다보고 폭넓은 시야로 금융기관을 감독하며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위치에 서서 억울함이나 불편사항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금융관련 전문가들의 집합소이자 많은 금융인들이 최종 종착점으로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숱한 역경 속에서도 결코 지는 법 없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눈 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스승의 마음을 실천하면서 꿈의 종착점, 금융감독원에 발을 들여놓은 이가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부터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감독국 선임상담역으로 근무중인 권동선씨.
현재 권씨가 주로 맡은 업무는 은행 전문 상담이며 금융소비자 상담도 함께 맡아 처리한다. 그 어떤 부서보다 시중 은행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불편사항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러 오는 고객을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까다로운 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권씨는 그 동안 사회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며 배운 전문 지식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불법 철학을 실천할 수 있기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고 말한다.
특히 이러한 밝고 긍정적인 업무 태도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안에서 일하는 청소 아줌마와 경비직원, 아르바이트생부터 간부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밝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권씨의 모습에 주위에서는 ‘발 넓은 사람, 인간성 풍부한 사람, 그리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에 대해 권씨는 “지난날 아픔이 다른 이의 마음을 더욱 잘 헤아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끝까지 배워라’ ‘끝까지 지지 마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지금 이렇게 사회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견고한 실력으로 쌓였습니다”고 말한다.
태양이 밝게 빛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다. 그림자가 가장 짙을 때 태양도 가장 빛난다. 둘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다. 권씨가 지금처럼 밝게 빛날 수 있는 것 역시 짙고도 짙은 괴로움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권씨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 잘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공부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환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에 합격을 하고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금융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1992년 은행에 입사해 2002년까지 10년을 근무했다. 그 기간 동안 지점과 본점을 두루 거치며 세금, 공과, 예금 상담 등 수신업무부터 외환과 카드 업무, 그리고 경력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다는 제예금계 업무까지 섭렵했다.
이렇게 권씨가 차곡차곡 실력을 쌓으며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급기야 의식을 잃는 지경까지 갔다. 모두가 말렸지만 권씨는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병수 발에 매달렸다.
어머니는 생사를 오가기를 수 차례. 지칠 법도 했지만 오히려 권씨는 일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돌보고 가족을 돌보며 어머니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고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무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병원 관계자 분들이 고마워 보은의 마음으로 불법대화도 실천했어요.”
또 권씨는 오랫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대학 공부도 틈틈이 해 졸업하는 등 자신의 꿈을 향해서도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병수발은 자그마치 7년이나 이어졌다.
어머니도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오랫동안 권씨의 발목을 붙잡았던 일체의 환경도 행복의 방향으로 전환되었지만 다시 사회에 나가 활약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의 무게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7년이라는 시간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권씨의 지지 않는 용기의 마음이 ‘도저히 무리다’고 했던 모두의 생각을 불식시켰다. 보란 듯이 은행에 취직, 사원으로 지원했음에도 과거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대리로 승진하고 수신책임자 업무까지 맡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물론 오랜 기간 현장 업무를 쉬었던 권씨에게 파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사발령이었기에 주위의 시기와 질투, 오해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권씨는 더욱 자신의 실력을 쌓고 한계를 부수는 채찍질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2년 여 동안 후회 없는 도전을 하고 은행을 퇴사했다. 그 뒤 우연한 기회에 금융감독원에서 처음으로 기존에는 각 은행사에서 직원을 파견했던 상담 업무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고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입사를 지원한 권씨는 퇴사 2개월이 채 안 되어 당당히 금융감독원에 입사하게 됐다.
권동선씨는 “돌이켜보면 모두가 반드시 나의 성장에 필요한 괴로움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장을 위해 앞으로 전진할수록 어려움도 나오겠지만 ‘대난이 오면 대선이 온다’는 성훈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의심하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가겠습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숙명으로 고통 받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승리의 결과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
·금천권 가산지부 총합지부여자부장
화광신문 : 11/05/13 924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