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프로골퍼 송재일씨
프로골퍼 송재일씨
험난한 과정 거쳐 당당히 프로골퍼로!
신심으로 승부・세계 제패 향해 도전
“막상 목표를 달성하니 힘들던 시기가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어요. 시합 내내 기원을 보내주신 부모님만 생각했어요.”
송재일(22・경희대)씨는 지난 8월 25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당당히 프로골퍼로 거듭난 감격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주최한 2006년 제2차 프로테스트에서 공동 8위를 차지했다. 이번 프로테스트에 참가한 선수 1천 명 중 고작 20명만 프로골퍼가 됐다. 경쟁률이 무려 50 대 1. 한국프로골프협회는 상・하반기 프로테스트로 연간 40명의 정회원을 선발한다. 게다가 지회별 예선을 통과해야만 본선에 참가할 수 있다.
그는 여느 때보다 충분히 기원하며 골프 연습에 몰입했다. 낮에는 무더위도 잊은 채 맹연습을 거듭했고, 저녁에는 남자부 ‘어서암송대회’에 참가했다. 학회 선배와 자주 대화하며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한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99년 1월 골프채를 잡았다. 중3 진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그때는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 무대에서 우승하며 국내에서도 한창 골프 붐이 일었다.
“태권도를 할 때는 쉽게 입상했고 배짱으로 하면 됐는데, 골프는 예민한 운동이었어요. 감정조절이 아주 중요해요. 처음에는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2년간 중고연맹전 예선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3월 처음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이후 하루에 9시간씩 골프 연습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가 쏟아지고 어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대회 입상 실적이 부족해 대학 진학을 미뤄야 했다.
그래도 계속 도전했다. 드디어 2004년 ‘3부투어’에 나가 전체 9위, 아마추어 2위를 차지해 세미프로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경희대학교 골프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앞으로 한국 최고가 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최고가 돼 인생의 스승인 이케다(池田)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가 되겠습니다.”
타이거 우즈처럼 실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으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성실한 선수가 되겠다는 그는, 올 가을 정규투어 대회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성권 지산지부 남자부 회원
장호정(hjjang@gknews.co.kr) | 화광신문 : 06/09/22 702호 발췌
프로골퍼 송재일씨
험난한 과정 거쳐 당당히 프로골퍼로!
신심으로 승부・세계 제패 향해 도전
“막상 목표를 달성하니 힘들던 시기가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어요. 시합 내내 기원을 보내주신 부모님만 생각했어요.”
송재일(22・경희대)씨는 지난 8월 25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당당히 프로골퍼로 거듭난 감격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주최한 2006년 제2차 프로테스트에서 공동 8위를 차지했다. 이번 프로테스트에 참가한 선수 1천 명 중 고작 20명만 프로골퍼가 됐다. 경쟁률이 무려 50 대 1. 한국프로골프협회는 상・하반기 프로테스트로 연간 40명의 정회원을 선발한다. 게다가 지회별 예선을 통과해야만 본선에 참가할 수 있다.
그는 여느 때보다 충분히 기원하며 골프 연습에 몰입했다. 낮에는 무더위도 잊은 채 맹연습을 거듭했고, 저녁에는 남자부 ‘어서암송대회’에 참가했다. 학회 선배와 자주 대화하며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한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99년 1월 골프채를 잡았다. 중3 진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그때는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 무대에서 우승하며 국내에서도 한창 골프 붐이 일었다.
“태권도를 할 때는 쉽게 입상했고 배짱으로 하면 됐는데, 골프는 예민한 운동이었어요. 감정조절이 아주 중요해요. 처음에는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2년간 중고연맹전 예선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3월 처음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이후 하루에 9시간씩 골프 연습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가 쏟아지고 어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대회 입상 실적이 부족해 대학 진학을 미뤄야 했다.
그래도 계속 도전했다. 드디어 2004년 ‘3부투어’에 나가 전체 9위, 아마추어 2위를 차지해 세미프로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경희대학교 골프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앞으로 한국 최고가 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최고가 돼 인생의 스승인 이케다(池田)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고가 되겠습니다.”
타이거 우즈처럼 실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으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성실한 선수가 되겠다는 그는, 올 가을 정규투어 대회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성권 지산지부 남자부 회원
장호정(hjjang@gknews.co.kr) | 화광신문 : 06/09/22 702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