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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창현 광선당 한약국 대표
성실·귀감의 ‘경동시장 모범 한약업사’

40년간 한약조제·성실 경영 입소문나 각종 표창받아

“생애 마지막까지 광포사명 다하는 것이 최고 소망”


한약은 본초학에서 연구된 개개의 약물을 일정한 규율에 따라 배합한 것으로 2000년 이상의 경험이 축적된 경험과학의 산물이다. 한약의 주목적은 우리의 신체가 음양의 조화를 찾도록 도와준다.

저 멀리 떨어져도 코끝을 자극하는 한약냄새가 풍기는 곳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이다.

수 백 가지의 한약재와 많은 한약 도매상이 즐비한 곳이다. 정겨운 시장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어귀에서 ‘광선당 한약국’라는 간판이 보인다.

경동시장의 명물이라 불릴 만한 이곳을 40여 년째 운영하는 이창현(65)씨. 상호이름도 ‘광선유포’의 앞 글자를 따서 짓게 됐다고.

비좁고 시끌벅적한 경동시장 골목에서 그의 한약국은 도드라진다. 안으로 들어서면 깨끗하게 정리된 한약재부터 한약을 달이는 기계까지 다양하다. 그곳에서 해바라기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는 수십년째 성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동시장은 한약으로 유명하죠. 40년 전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일을 배우며 이곳에서 자리를 잡게 됐죠.”

또 이씨는 평소 모범적인 생활로 타의 귀감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실한 경영 자세가 입 소문이 나게 되면서 구청장 표창 등 각종 표창장을 받고 명실공히 ‘경동시장 모범 한약업사’이다.

그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 일한다. 그는 약재실에 있는 수 십 가지 약재들을 빈틈없이 관리한다. 그는 한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훤하다. 40년간 숱한 사람들이 그에게 한약을 사먹고 건강을 되찾았다.

“아침저녁으로 ‘제가 지은 한약으로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게 해주십시오’라는 기원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력을 회복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한 한약국이라는 책임으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회를 지키면서 광선유포를 위해서 맡은 사명을 다합니다.”

한약국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장년부 새벗 총회’에 그 동안 한약국을 찾아온 단골 손님들을 하종해 십 여명을 참석시켰다.

“생활 즉 신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듯하고 인간성이 풍부해야 주변의 사람에게 자신있게 불법(佛法)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그가 신심을 시작한 것은 1980년. 지루성 피부염을 앓던 아내 황의순씨가 지인의 소개를 받고 창제를 시작했다.

초신의 공덕으로 병을 깨끗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이씨도 순수하게 입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씨는 한쪽 눈이 침침했다. 뿌옇게 보이는 날도 있었고 잘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별일 아니겠지…’ 라는 생각에 지나치다가 결국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아내 황씨는 “남편이 갑자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병원에 가니 각막이 이완된 것이 너무 오래돼 수술해도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라고 말한다.

이씨는 “중요한 것은 우선 기원한다는 것이다. 기원한 순간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기원한 순간부터 가슴속에 태양이 떠오른다. 희망의 기원이야 말로 희망의 태양이다.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기원하고 극복해 경애를 열어간다. 이것이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의 번뇌즉보리의 궤도이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불법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했다.

학회활동으로 사명을 완수해 꼭 병을 이겨낸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리고 병을 이겨 스승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겠다고 결의했다.

기원에 기원을 하며 수술도 하지 않고 약물치료로 시력이 돌아오게 되는 체험을 했고 오히려 지난날보다 선명하게 보이게 됐다고.

“그때 어본존이 제천선신이 절 지켜준다고 더욱 깊이 확신했습니다. 또 광포를 위해 살겠다고 굳게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품은 이씨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며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불법을 이야기했다. 아내 황씨도 남편과 함께 광포의 인생을 살고 있다.

황씨는 “남편은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신심으로 꿋꿋하게 인내하며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서도 학회의 사명에서도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마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이렇듯 신심 한길로 30년 인생을 산 이씨가 항상 가슴에 새겨둔 성훈이 있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어서 234쪽)라는 성훈대로 생애 마지막까지 광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다.

“어본존과 스승을 만나 인생의 길을 열었습니다. 학회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애 마지막까지 보답해야지요. 신심에는 은퇴가 없지 않습니까.”


·성동권 부지역장



김기수(kimks@hknews.co.kr) | 화광신문 : 10/06/04 879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