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김태학 쌍용정보통신(주) 기술지원팀장
전산 엔지니어 업계서 일류기술·관리능력으로 독보적 활약!
위기대처능력과 치밀한 분석력으로 업계 주도·양립신심으로 승리 인생 걸어
시스템 엔지니어는 시스템 엔지니어링(System Engineering)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로, 시스템 엔지니어링은 여러 조건을 만족시키며,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최적의 시스템 모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스템 엔지니어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크기와 기능이 각기 다른 여러 컴퓨터를 동시에 연결할 때, 이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설비체계를 갖춰 기술적으로 문제점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회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 학회와 스승의 이름을 더욱 빛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캠퍼스 안의 모든 컴퓨터 서버가 원활하게 작용해 이용자가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현재 ㈜쌍용정보통신 기술지원팀장으로 일하며 업계를 이끄는 일류기술과 탁월한 관리능력으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는 김태학씨. 근래 시스템 엔지니어업계에서 각광받는 이 회사에서 김씨의 활약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는 부경대학교 웹서비스 네트워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연구, 분석, 설계를 하고 통신장비가 더욱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문직 종사자다.
즉 부경대학교 학생과 직원들이 웹서비스를 이용할 때 장애나 바이러스 차단을 방지하는 일이다. 그가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6년 3월. 부경대학교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촉망 받는 엔지니어였다. 그가 만든 프로젝트 개발과 웹서비스기술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탄탄대로의 인생을 걸으며 고액 연봉과 기술로 남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졌다. 회사는 연구인력과 엔지니어인원을 대폭 줄였다.
“대학원을 꿈꾸며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던 때였어요. 자신감과 패기에 넘쳐 도전했는데….”
그에게 때이른 좌절이 찾아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모의 실수로 집이 압류 되고 은행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힘겹기만 했던 시간들을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봄날이 있는가 하면 고뇌의 시간도 있습니다. 싫어지는 일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재미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란만장한 인생의 드라마를 유유히 끝까지 연출할 수 있는 ‘강한자신’을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라는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심간에 새기며 창제에 창제를 거듭했다. 일념이 약해질 때 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학회활동에 더욱 매진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때의 상황을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학회에서 단련 받은 대로 어본존 앞에 앉아 창제하며 불법에서 배운 낙관적 사고방식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모범적인 생활로 타의 귀감이 되던 김씨를 눈 여겨 보던 지금의 사장이 전격 스카우트했다. 그의 위기대처능력과 치밀한 분석력을 가지고 부경대학교에서 원인 모를 서버장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원인을 밝히기 위해 뛰어들고 나니 고민이 많았어요. 보름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서버장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니 더욱 초조하더군요.”
한달이 넘도록 계속 부딪히자 길이 열렸다. 그 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로 드디어 서버 장애의 원인을 밝혔고, 보수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도 학교측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겠지…’라던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김씨의 능력을 신뢰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됐다.
그러나 학회활동과 병행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밀려오는 업무에 파묻혀 살다 보니 생활리듬은 침체되어 있었다.
특히 이 업계에서 업무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아 제일 늦게 퇴근하고 밤새 일하기 일쑤였다.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나만을 위한 행복은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즐거움의 시간은 짧고 괴로움의 시간은 길다. 자행화타의 마음으로 세계평화와 행복을 위해 괴로워하는 한 사람을 기원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라는 것을 느꼈다.
5년을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김씨는 그때부터 마음을 굳게 정했다. 자신을, 그리고 환경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광포의 서원에서 비롯됐다.
“끊임없이 헤매는 자신을 보면서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상경하던 당시 마음에 새긴 결의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든 광포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맹세를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김씨는 먼저 일상부터 일변시켰다. 학회활동에 맞추기 위해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 먼저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씨는 아래 직원의 모든 업무량을 합한 것보다 많으면서도 난이도가 높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래도 김씨의 업무는 저녁 6~7시가 되면 모두 완료 상태였다. 능동적인 자세로 임하며 사제를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와 어서(御書)는 이 모든 노고가 청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언제나 꿈과 정열을 지닌 청년이고 싶습니다. 광포를 위해 스승과 약속한 맹세를 완수하기 위해 생활을 혁명하는 남자부로 성장하겠습니다.”
·해운대권 부남자부장
김기수(kimks@hknews.co.kr) | 화광신문 : 10/05/14 876호 발췌
전산 엔지니어 업계서 일류기술·관리능력으로 독보적 활약!
위기대처능력과 치밀한 분석력으로 업계 주도·양립신심으로 승리 인생 걸어
시스템 엔지니어는 시스템 엔지니어링(System Engineering)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로, 시스템 엔지니어링은 여러 조건을 만족시키며,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최적의 시스템 모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스템 엔지니어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크기와 기능이 각기 다른 여러 컴퓨터를 동시에 연결할 때, 이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설비체계를 갖춰 기술적으로 문제점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회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 학회와 스승의 이름을 더욱 빛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캠퍼스 안의 모든 컴퓨터 서버가 원활하게 작용해 이용자가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현재 ㈜쌍용정보통신 기술지원팀장으로 일하며 업계를 이끄는 일류기술과 탁월한 관리능력으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는 김태학씨. 근래 시스템 엔지니어업계에서 각광받는 이 회사에서 김씨의 활약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는 부경대학교 웹서비스 네트워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연구, 분석, 설계를 하고 통신장비가 더욱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문직 종사자다.
즉 부경대학교 학생과 직원들이 웹서비스를 이용할 때 장애나 바이러스 차단을 방지하는 일이다. 그가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6년 3월. 부경대학교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촉망 받는 엔지니어였다. 그가 만든 프로젝트 개발과 웹서비스기술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탄탄대로의 인생을 걸으며 고액 연봉과 기술로 남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졌다. 회사는 연구인력과 엔지니어인원을 대폭 줄였다.
“대학원을 꿈꾸며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던 때였어요. 자신감과 패기에 넘쳐 도전했는데….”
그에게 때이른 좌절이 찾아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모의 실수로 집이 압류 되고 은행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힘겹기만 했던 시간들을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봄날이 있는가 하면 고뇌의 시간도 있습니다. 싫어지는 일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재미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란만장한 인생의 드라마를 유유히 끝까지 연출할 수 있는 ‘강한자신’을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라는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를 심간에 새기며 창제에 창제를 거듭했다. 일념이 약해질 때 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학회활동에 더욱 매진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때의 상황을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학회에서 단련 받은 대로 어본존 앞에 앉아 창제하며 불법에서 배운 낙관적 사고방식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모범적인 생활로 타의 귀감이 되던 김씨를 눈 여겨 보던 지금의 사장이 전격 스카우트했다. 그의 위기대처능력과 치밀한 분석력을 가지고 부경대학교에서 원인 모를 서버장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원인을 밝히기 위해 뛰어들고 나니 고민이 많았어요. 보름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서버장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니 더욱 초조하더군요.”
한달이 넘도록 계속 부딪히자 길이 열렸다. 그 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로 드디어 서버 장애의 원인을 밝혔고, 보수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도 학교측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겠지…’라던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김씨의 능력을 신뢰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됐다.
그러나 학회활동과 병행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밀려오는 업무에 파묻혀 살다 보니 생활리듬은 침체되어 있었다.
특히 이 업계에서 업무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아 제일 늦게 퇴근하고 밤새 일하기 일쑤였다.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나만을 위한 행복은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즐거움의 시간은 짧고 괴로움의 시간은 길다. 자행화타의 마음으로 세계평화와 행복을 위해 괴로워하는 한 사람을 기원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라는 것을 느꼈다.
5년을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김씨는 그때부터 마음을 굳게 정했다. 자신을, 그리고 환경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광포의 서원에서 비롯됐다.
“끊임없이 헤매는 자신을 보면서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상경하던 당시 마음에 새긴 결의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든 광포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맹세를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김씨는 먼저 일상부터 일변시켰다. 학회활동에 맞추기 위해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 먼저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씨는 아래 직원의 모든 업무량을 합한 것보다 많으면서도 난이도가 높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래도 김씨의 업무는 저녁 6~7시가 되면 모두 완료 상태였다. 능동적인 자세로 임하며 사제를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와 어서(御書)는 이 모든 노고가 청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언제나 꿈과 정열을 지닌 청년이고 싶습니다. 광포를 위해 스승과 약속한 맹세를 완수하기 위해 생활을 혁명하는 남자부로 성장하겠습니다.”
·해운대권 부남자부장
김기수(kimks@hknews.co.kr) | 화광신문 : 10/05/14 876호 발췌